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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年 "孝" 有關團體長 硏修 感懷 黃布 閔貞基 ●●○○●●◎ 孝行人彛 百行源 ●○●●●○◎ 禮忠亦是 出其門 ●○●●○○● 鳥猶反哺 花開實 ○●○○●●◎ 觀志安衷 木扎根 ●●●○○●● 竭力問康 民爲貴 ○○●●●○◎ 天經地義 族存尊 ●○●●○○● 祖宗報本 常傭道 ○●○○●●◎ 誠敬家謨 話後孫 효행의 인간의 도리는 백행의 근본으로서 예절과 충성도 역시 그 문에서 출발했다네 까마귀 반포하는 것은 꽃에 열매열리는 것이오뜻 살피고 안충하는 것은 나무에 뿌리내리는 것과 같다네 힘을 다해 문안드려 민의가 가장 귀하게 되고 세상은 천경지의인 것, 민족이 존경받도록 하세 조종이 보본이므로 일상으로 할 도리를 지켜서 성경의 가모를 세워 후손에게 일러나 주세 (七言律詩 仄起式 偏格, 元統: 源, 門, 根, 尊, 孫) (2023.8.30.(수)~8.31(목) 1박 2일간 한국효문화진흥원에서는 전국 효 유관단체장들을 불러 효문화 특강 및 세미나를 실시하였다. 나는 김익수 교수님께서 수차례 같이 가자는 말씀이 있어 그냥 따라 가보자는 대수롭지 않는 마음자세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가보니 많은 효 유관기관들이 참여하여 여러 가지 효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한 앞으로 서로 교류협력하는데 힘을 모아줄 것을 당부하면서, 아울러 우리 모두의 조직화, 활성화, 일원화, 통일화, 효문화진흥화 하는데 서로 합심화합해 통일로 나갈 것을 다짐하는 자리가 되었다. 전국 각지에 효문화 단체들이 참여했다. 최기복(충청효교육원장), 박희원(인천시효행장려지원센터장), 이용기(대전시효지도사협회장), 박상도(대전효인성교육원장), 김종두(한국효단체연합회 사무총장), 진철희(경기효인성진흥원 이사장), 고진우(효문화지원본부 부본부장), 최명희(효행수상자효도회 사무국장), 안병미(효행수상자효도회 대전효도회 사무국장), 김경화(대구경북효인성교육문화원장), 김시우(한국효학회장), 김익수(한국효문화연구원장), 서성해(효행청소년단 총재), 전진남(뿌리공원전국문중협의회장), 홍순권(효사관학교장), 박홍엽(충효예문화운동본부 총재 및 김용해, 원흥식, 송순점), 김명수(효와인성연구원), 소순갑(전북노인복지효문화연구원 총재), 김남권(서울HYO인성교육원), 정희찬(성산효인성교육연구소 이사장), 이태성(한국효도회 이사장), 최성남(실버타임즈 대표) 등 전국 24개 효 유관단체 대표 및 임원 28명이 참석하였다. 오늘은 마지막 여름의 무더위속 보슬 비를 맞으면서 우산을 들고서 우리나라의 가장 훌륭한 민족 전통적으로 계승해 내려온 “부모님에 대한 효”정신을 기리는 날로, 우리 마음속 깊이 내재한 효정신이 비속에 잘 성장했으면 풍부해졌으면 하는 날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였다. 효란 무엇인가? “부모님에 대한 효”정신에는 무엇이 있는가? 효도란 기르는 것이라 도(道)에 순종하며 인륜에 거역하지 않으니 이것을 일러 기른다고 말한다. 그런 때문에 효자가 부모를 섬기는 데는 세가지 길이 있다. 살아서는 봉양하고, 죽게되면 상을 치르고, 상을 마치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봉양할 때에는 그 순종하는 것을 보고, 상을 치룰 때는 그 슬퍼하는 것을 보며, 제사지낼 때는 그 공경하고 때가 맞는 것을 보는데, 이 세가지 도리를 다하는 것이 효자의 행실인 것이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는 요체를 찾고 본심을 보존하고 천성을 길러서 방종해지는 마음을 거둬들이기를 가르치고 있다. 사단(四端)의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고 해내기 힘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즉 내 마음으로 세상을 구하는 일이다. 맹자는 성선(性善)을 양지양능으로 보고, 사람이 이를 실천하면 모두 즐겁게 따르게 되는 것이니, 따라서 “그 양심을 실현되기 전에 자포자기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꾸준하게 노력해야 한다. 나의 마음을 실천하고, 더 나아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본받아 실천하게 하고, 모든 국민들이 본받아 실천하게 하는 평천하의 마음을 만드는 일이다. 특히, 맹자는 “노인이 비단 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는” 그런 평천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 하면서, “백성들이 가난해지면 본마음을 잃고 부자형제라도 오히려 길가는 사람과 같이 보게되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맹자 특유의 효문화관을 밝혀 덕치(德治)정치를 실행하여 전 가정에서의 정체성과 주체의식을 확립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왕도정치가 실현되는 천하라고 생각하였다. 민위귀(民爲貴)의 세계로서 민본주의가 여기에서 싹이트기 시작하였다. 공자님께서도 이 세상을 구하는 덕목에 대하여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공자님께서 자로(子路), 증석(曾昔),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 등 제자들에게 세상이 너희들의 학덕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고 있는데, 만일에 어떤 사람이 너희들의 학덕을 알아준다면 그 때에는 어떻게 하겠는가(?)고 말씀하시니, 한 제자는 정치적 안정을 취해 삼년정도면 백성들을 용감하고 정의롭게 만들겠다고 하였으며, 또 한 제자는 삼년정도면 백성들이 부족함이 없도록 살수있을 만큼 경제적인 부흥을 이루겠다고 하였고, 또 다른 한 제자는 종묘의 제사와 제후의 회동시에 의복을 갈아입고 의식을 하는 보좌역으로서의 예의강국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였다. 이에 반하여 증석은, “늦은 봄날에 봄옷을 갖추어 입고, 노인들과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저 남쪽 기수(水)에서 목욕을 한 후, 기우제를 올리는 무우(舞雩)단 위에 바람쐬고 노래읊으며 돌아올 것이다.”고 대답함에 공자님께서 감동의 탄식을 하시고는 그의 대답이 바로 공자님 견해라고 말씀하셨다. 말하자면, 증점(曾點: 증석)의 학문은 인욕(人欲)이 다 없어진 천리(天理)가 유행하여 천리가 도처에 충만한 것으로서 조금도 결함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동정지제(動靜之際)에 종용(從容)함이, 평소 살아가는 자리에서 일용(日用)의 항상됨을 즐기는 데에 존재하는 것이다. 애초 자기를 버리고 남을 위하려는 뜻이 없었다. 그 가슴속에는 한가롭고 자연스러워서 곧 바로 천지만물과 더불어 위아래로 같이 흐르니, 각기 제 자리를 얻는 오묘한 이치가 은연중에 나타난 것이라고 하였다. 나머지 세 사람이 사물의 말엽적인 데에 구구하게 구애된 것에 비한다면 그러한 기상과 그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다. 즉시 곧 바로 남과 함께 일용을 즐기는데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효를 살펴보면, 안충(安衷: 부모님을 충심으로 편안하게 모시는 것), 쇄우(鎖憂: 부모님의 근심걱정을 막기위해 좋지않는 이야기는 귀에 들리지 않게 하는 것), 순지(順志: 부모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것), 양체(養體: 부모님의 몸을 설펴서 아프지 않게 봉양하는 것) 등등이 있다. 또한 그 실천방편으로는 효경 첫번째에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인 것으로 “나의 이 몸은(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는 뜻이다. 이 마음은 바로 이 몸을 다시 후손에게 물려주어 자손만대로 이어가게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참 현대의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젊은 청춘남여가 모두 이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또한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이라고 하여, “후세에 이름을 떨치어 부모님의 명예를 빛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 효도의 마지막이다.”고 하였다. 사람이 마땅히 자신의 도리를 다해 인류를 위해 공헌을 하여 후세에 이름을 떨치었다면 그 보무님이나 조상들의 명예를 빛나게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다. 우리가 시종(始終)을 알고 본말(本末)을 알게되면 그 대충은 짐작이 가는 일이다. 효와 연관되어 관계되지 않은 일이 하나도 없기에 효는 백행지원(百行之源)이라고 했던 것이다. 또한 효란 제사와 관련이 있다. 제사는 성의(誠意)가 위주가 되어야 한다. (예의를 존중하면 번영이 오고 예의를 모멸하면 패망이 온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사람을 효교육시키는 데도 예(禮)를 존중하고 의(義)를 귀하게 여겨야 인성중심의 도리를 세울 수 있다. 이러한 근본이치에 무관심이 오래 지속되다가 보면 대다수가 자존(自尊)망대(妄大)에 깊이 오염되어 결국 집에서는 조상과 부모를 우습게 여기고 사회에서는 질서와 존장을 하찮게 치부하며 보다 크게는 국가의 존망과 대중의 안위를 망각하고 자기 놀음이나 즐기면서 방종하는 패악의 무리들이 독버섯처럼 번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도를 과연 어떻게 습득하고 똑바로 깨우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효인 것이다. 효라는 것이 남을 위해 지키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보전하기 위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율곡선생이 11세 때에 부친이 위독(危篤)했을 때에는 외조부 사당에 가서 신(神)에게 맹세하며 늙고 불쌍한 아버지 목숨을 젊은 자신의 목숨을 바꿔가기 바란다고 간청하면서 기도드렸다. 다섯살 때에 어머니의 병(病)이 위독했을 때에도 외조부사당에 들어가서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려서 신(神)의 가호(加護)를 받았던 것처럼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음을 재인식하고 또다시 외조부 사당에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외조부님, 하느님, 신령님!! 저의 아버님은 나이도 많고 늙고 병(病)이 들었으니 젊고 영리한 제목숨과 바꾸어 잡아가세요(?) 저는 재주가 있으니 귀신도 섬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저를 대신 데려가세요.” 그의 효성이 지극함을 엿볼 수 있다. 죽기를 맹세하고 아버지 대신 목숨을 바꿔 달라는 극진한 요청에 귀신도 감동하였는지, 아버지 이원수 꿈에 백발이 성성한 신령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장한 아들을 두었소. 이 애(율곡)는 장차 조선의 대유학자(東國大儒)가 될테니 내일 아침에 날이 밝거든 ‘玉’字변에 ‘耳’字를 붙인 ‘이(珥)’字로 이름을 고치라고 당부하였다. 과연 ‘지성(至誠)이면 감신(感神)’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율곡의 어렸을 적의 이름은 용(龍)꿈을 꾸고서 낳은 아들이라고 하여 ‘현룡(見龍)’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이제부터는 이(珥)로 고치라는 것이다. 이튿날에 신령의 말씀대로 실행했더니 씻은 듯이 병이 완쾌되었다는 것이다. 율곡의 아버지는 가족을 모아 놓고 지난밤의 꿈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 아들 율곡이 공부만 열심히 하면 반드시 조선의 대유학자(東方大儒)가 될 수 있다는 큰 희망(大望)을 갖게 되었다. 그날부터 율곡가(栗谷家)의 가족들은 그 날(율곡이 동방의 대유학자가 되는 날)을 손꼽아 기대하면서 하루 하루를 희망(希望) 속에 즐겁게 살았다. 율곡은 부모에게 효되고 자신의 성장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였다. 13세에 ‘진사초시’에 장원급제 하였다. 이는 효가 가져온 최대 이변이요 놀라운 일이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삼국유사 효선(孝善)편에 있는 손순(孫順)의 효도(孝道)이야기이다. 손순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어머니를 날품을 팔아 곡식을 얻어 겨우 끼니를 때우고 있을 때, 손순의 어린 아들이 항상 어머니의 밥을 빼앗아 먹자 어머니에게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대비책을 내야겠다고 여긴 손순이 계략을 세워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아이는 또 얻을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모실수 없지 않소. 그런데 아이가 어머니 밥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굶주림이 얼마나 심하겠소. 이 아이를 땅에 묻어 어머니의 배가 고프지 않게 채워드리도록 해야겠소.”하고 동의를 구하니 그의 아내도 남편의 계책에 순순히 응하였다. 그래서 어느날 아들을 땅에 묻으려고 땅을 파는데 이상한 석종(石鐘)이 나왔다. 부부는 놀라 괴이하게 여겨 나무위에 걸고 한번 쳐보니 그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듣기에 무척 좋았다. 이에 아내가 말하였다. “이상한 물건을 얻은 것은 아마도 아이의 복인 것 같으니 묻어서는 안 되겠어요.” 남편도 그렇게 하기로 하여 그 석종을 들러메고 집으로 돌아와 들보에 매달고 몇 번을 쳤다. 그러자 대궐에서 그 소리를 들었는데 특히 흥덕왕이 듣고는 “서쪽 교외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맑고 고운 것이 보통 종소리와는 틀리니 빨리가서 조사를 해보라.” 왕의 사신이 손순의 집을 찾아와서 조사하고는 그 사유를 모두 왕에게 아뢰었다. 보고를 받은 왕은, “옛날 곽거(郭巨)가 아들을 땅에 묻으려하자 하늘이 금솥을 내려주었는데, 이번에는 아이를 묻으려하자 석종(石鐘)이 솟았으니, 곽거의 효도와 손순의 효도를 천지가 함께 살펴본 것이다.”라고 말한 뒤에 왕이 집 한 채와 해마다 벼 50섬을 주어 극진한 효성을 기렸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손순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그녀가 살었던 옛집에 절을 짓고 홍효사(弘孝寺)라 하고 석종(石鐘)을 두었는데, 그 석종을 얻은 자리를 완호평(完乎坪)이라고 했다. 그러나 후백제의 도적들이 이 종을 훔쳐갔다고 한다. 이와같이 전통적인 효사상이 구전되어 오고 있는데, 그 실증적인 예로서 각 지역에는 효자상, 효부상, 효자비상이 전국 곳곳에 남아있고, 어버이를 상대로 한 효성이 손손대대로 구전되어오고 있다. 이러한 효가치관이 옛날의 것이라 현대에 그대로 실천할 수는 없다 하더래도 어느정도 부모님을 충심으로 편안히 모시고 근심걱정을 덜게한다면 그것이 인간의 도리로서 지극한 미덕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의 효문화는 미래를 창도하는, 인간세계를 바로 세우고 도움을 주는, 개개인의 희원을 갈구하는, 고급스러운 양질의 우수한 문화로서의 절대적인 원리인 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로서 동방의 횃불로서 세계의 미래학자와 석학(碩學)들이 한결같이 한국인의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을 우주시대에 반드시 가지고 가야할 우수한 민족사상이라고 다시 강조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가의 흥운을 좌우하는 것이 인간의 도덕인데 이대로 가서는 파멸이 올 것이므로, 반드시 교육혁신(敎育革新)을 이루어야 한다. 이를 강력 주장하면서 이만 필을 거두고자 한다. 아참! 마지막으로 오늘 참 어려운 일을 당하였다. 서울의료원에 어머니께서 입원을 하였는데, 서울의료원에서는 몇가지 용품을 사가지고 오늘 4시~4시30분까지 오라는 급한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오늘 연수가 끝나자마자 조급하게 용품을 사러 갔다가 빌딩주차장에서 내가 부주의로 뒤빠꾸를 하다가 접촉사고가 났다. 내가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수 없다. 첫 번째, 까마득하니 그 접촉사고가 난일을 기억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 안이 어둑컴컴하여 사고가 나기 전에도 불안감이 엄습하여 와서 꼭 사고가 날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 나는 부닥쳤을 때, 벽에 부닥쳤는지 알고 재수없다 생각하고 그 빌딩을 나올려고 하였는데 그 광경을 지켜본 빌딩관리자가 다가와서 당사자와 연락을 취하고 가라고 하여 당황을 하였다. 두 번째, 내 차가 좋아서 접촉하기 전에 비상소리를 울려주는데도, 평상시에는 그 소리가 매우 시끄럽게 들리는데도, 이번 접촉사고시에는 이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세 번째는 그 사고가 매우 경미하여 나같은 경우에는 그져 스쳐지나가는 일로 치부할텐데, 그 상대자는 너무 중하게 새로산지 얼마되지 않았고 차가 좋은 제네시스 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냥 지나갈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사정을 해가며 내 처지를 이야기를 했다. 벌써 4번이나 많은 보험을 처리했으니 보험으로 가지말고 현금으로 줄테니 10만원에 또다시 20만원에 해결하자는 제안을 해봤으나, 그 빌딩 관리자가 안된다고 하면서 보험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어쩔수 없이 보험으로 처리하고 돌아왔지만, 지금의 세상이 참 어려운 세상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에는 틀림이 없다. 아마도 차가 좋지 않았다면 이러한 불상사가 없었을텐데, 참으로 좋은 차들 때문에 이런 고생을 다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나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경미한 부닥침에는 관대하게 처리해 줄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좋은 차를 가지고 다니려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인가(!)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잘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듯이 살아가는 법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필요한 것 같다. 이것도 효(孝)로 풀어가면 좋을 듯 하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예지를 키워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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