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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은 이제 은퇴…평화문제에 대해 글 쓸 것!
    "일본 정부나 국민이 충분히 사죄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 국가가 사죄해야 한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80)의 답변이다. 그는 1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소설 '익사'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 일본의 후진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번역돼 출간된 '익사'에 등장하는 우나이코는 17세 때 큰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임신한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곳도 하필이면 야스쿠니 신사다. 그는 일본 여성들이 천황제를 중심으로 한 남성들의 폭력에 쉽게 노출됐으며 종군위안부 문제도 따지고 보면 천황제를 기반으로 한 군국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에는 "국가가 벌인 전쟁에서 군인들을 위한 여성의 역할로서 부여된 게 위안부였다. 천황제, 남성중심 문화에서 오는 여성 차별 관점에서 봐도 이 소설은 위안부문제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을 차별하는 국민성이 있었고 이 때문에 식민지 여성을 동원하는 종군위안부도 존재했으며 그 과정에서 범죄적인 수단도 발생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민의 의식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오에는 사실과 허구가 가미된 자전적 소설 '익사'에서 여성 차별 등 일본 사회가 지닌 문제점의 근원을 '천황제'에서 찾는다. 주인공 조코의 아버지는 천황궁에서 자폭하려다 실패한다. 그의 테러 행위는 천황과 함께 장렬히 전사해 일본 정신을 지키겠다는 극우적 생각에 뿌리를 둔 일탈이었다. 오에는 "조코의 아버지 같은 아버지를 가졌던 나는 소설에서 '전쟁 이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자 했다. 일본인이 패전을 겪고 어떤 식으로 고민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당대까지 아울러 포함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오에는 1957년 등단했다. 60년 가까이 글로 밥을 먹고 살면서 아쿠타가와상,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노벨문학상 등 각종 상을 받았다. 일본 사회의 불안한 상황과 정치적 문제에 대한 비판, 천황제와 군국주의, 평화와 공존 등을 주제로 수많은 글을 발표했고, 국내외 여러 사회 문제에 참여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1·2·3기로 나눠서 설명했다. 1기는 전쟁에 관한 시기다. 전쟁을 거치면서 느끼고 봤던 폐허가 된 일본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 그는 이 시기 "사회적 담론을 반영하는 소설"들을 썼다. 2기는 장남 히카리가 "무서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서 탐색했던 사소설의 세계로 채워졌다. "태어날 때 아이는 청력도 시력도 생각하는 능력도 없었다. 앞으로 말도 못할 것이라는 말을 여러 의사에게 들었다. 나는 아이의 이름을 히카리(빛)로 지었다. 눈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아니 당시 내 최대한의 희망이었다. 그 희망을 담아 이름을 지었다." 아이와 부모의 성장과정을 담은 사소설의 시기를 지나 30대 후반 이후부터 작년까지는 사소설적인 경향을 담으면서도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도 포괄하는 객관적인 소설을 썼다. 2기의 내용을 이어가면서도 1기 적인 문제의식을 담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는 "나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3기에 속한 작품이다. 주제와 형식을 전부 담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60년 가까이 소설을 썼던 오에는 지난해 '만년 양식집'(晩年樣式集·내년 국내서 출간 예정)을 끝으로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여든인데, 소설을 끝내고 다른 걸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관심을 두는 평화문제와 일본인의 생활 문제 같은 것들이 될 것이다. 소설보다는 좀 더 명쾌하고 명료한 문장으로 써내려 나가겠다. 집회에 나가 발언하는 원고나 에세이가 많아질 것 같다. 소설적인 색채가 강한 사소설적인 에세이를 한둘 정도 더 쓸 수는 있다." 한편, 한국소설에 대해서는 "현대소설을 애독하고 높이 평가한다. 그중에서 황석영은 현대의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는 큰 소설을 쓴다. 개인의 내면을 그리면서도 사회로 이어지는 인간을 묘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훌륭하지만 그와는 조금 다르다"고 했다. buff27@yna.co.kr
    201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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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조선의 나전' 특별전
    나전(螺鈿)이란 전통 목공예품의 꾸밈 기법 중 하나로, 무늬대로 오려 낸 자개를 기물(器物) 표면에 붙이거나 박아 넣는 방식을 말한다. 한반도에서 이 기법은 늦어도 고려 초기에 등장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온다. 호림박물관 서울 강남 신사분관이 검은 옻칠 바탕에 새긴 자개의 영롱(玲瓏)함을 선보이는 특별전을 기획한다. 오는 14일 개막하는 이번 '조선의 나전-오색찬란' 전에는 나전을 필두로 화려한 채색을 강조해 여성의 공예품으로 사랑받은 화각(華角), 바다거북의 등껍질과 상어 가죽으로 제작한 대모(玳瑁), 그리고 어피(魚皮)라는 프레임을 통해 조선시대 화려한 공예문화를 조명하고자 한다. 나전모란당초문화살통 이에는 조선 후기 목공예품들이 집중적으로 선보인다. 호림박물관 소장품만이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숙명여자대학교박물관 등 다른 기관 소장품도 빌려온다. 이번 전시는 이들 공예품을 '木(목) 나전을 입히다'와 '木 색을 더하다'의 두 가지로 구분한다. '木 나전을 입히다' 섹션에서는 사군자(四君子), 화조(花鳥), 길상문자(吉祥文字), 장생(長生), 산수인물(山水人物) 등으로 나전 문양을 섬세하게 장식함으로써 마치 한 편의 회화 작품을 보는 것 같은 작품들을 모은다. 나아가 전시 방식도 단순 진열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감각의 디자인을 접목하고자 했다고 박물관은 강조한다. 조선시대 목공예품을 보면 배치되는 공간에 따라 장식의 성격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안방은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밝고 화사한 색을 선호하고 이에 따라 나전 문양 또한 한층 화려한 느낌이 드는 것이 많았다. 반면 사대부 학문 공간인 사랑방에는 화려한 장식 공예품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에 2부 '木 색을 더하다' 섹션에서는 나전뿐만 아니라 화각, 대모, 어피 등 다양한 소재의 목공예품을 남성과 여성 생활용품으로 구분해 전시한다. 대모나 어피는 이색적인 장식기법이지만 이들은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는 나전 장식의 보조로 활용됐다. 이번 전시는 오는 6월30일까지 계속된다. taeshik@yna.co.kr
    2015-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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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비와 이해의 정신으로 상대방 어려움 살펴주길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지난 1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티르에서 유엔 평화유지활동을 벌이는 동명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현지 종교 지도자들과 대화했다. 자승 스님이 지난해 11월 태풍 피해를 본 필리핀에서 우리 아라우 부대의 활동상을 본 일이 있는데 당시 경험이 동명부대 방문의 계기가 됐다. 자승 스님은 당시 아라우부대가 조계종 복지재단인 아름다운동행과 함께 필리핀에 초·중·고등학교를 재건하는 모습을 보고 해외에서 활동 중인 다른 부대의 활동상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고 소개했다. 2007년 처음 파병돼 올해로 파병 8주년을 맞은 동명부대는 우리나라의 유엔파병부대 중 유일한 전투부대다. 현재 함남규 대령(육사 45기)의 지휘 아래 15진이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 4월 16진 파견을 앞두고 있다. 군종교구장인 정우 스님과 문화사업단장인 진화 스님, 육군사관학교 군종실장인 함현준 법사(중령) 등과 함께 동명부대를 찾은 자승 스님은 "레바논인들이 파견된 다른 외국군보다 한국군을 선호하는 것은 동명부대가 충분히 현지 주민들과 교감하고 8년 동안 진심을 다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격려했다. 레바논 동명부대 방문한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티르<레바논>=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일(현지시각) 레바논 동명부대를 방문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왼쪽 세번째)이 동명부대 고정감시초소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동명부대 제공) 자승 스님 일행은 이어 동명부대가 책임지는 현지 마을 5곳 중 한 곳인 부르글리야 마을의 이슬람 사원(모스크)을 찾아 현지 이슬람 수니파 최고 지도자인 미드라르 합발, 부르글리야 시의 갈립 엘 다우드 시장과 종교와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승 스님은 이 자리에서 부르글리야시가 그동안 무단으로 시신 매장지로 사용해 왔던 토지 매입을 위해 동명부대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우 스님과 함께 토지 매입 비용의 절반인 4천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계종 방문단은 이어 부르글리야 시청을 찾아 부르글리야 지역의 여러 종교인과 만났다. 이 자리에는 부르글리야시의 다수파인 이슬람 수니파 최고지도자(무프티) 뿐만 아니라 시아파 성직자, 마론파 가톨릭(레바논의 가톨릭 종파) 대주교, 정교회 대주교 등 다양한 종교지도자와 압둘 무센 알 후세이니 티르연합시장(티르 지역 73개 시장의 대표자)이 참석했다. 알 후세이니 시장은 "동명부대가 티르 지역의 어떤 어려움에도 귀 기울여주고 최선을 다해줘 늘 감사한 마음"이라면서 "모든 동명부대원은 우리 가족과 같다"고 동명부대 활동에 고마움을 표했다. 레바논 이슬람 수니파 지도자와 조계종 총무원장의 만남 (티르<레바논>=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일(현지시각) 레바논 동명부대 책임지역인 부그글리야시 모스크를 방문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왼쪽 두 번째)를 지역 이슬람 수니파 지도자가 맞이하고 있다. (동명부대 제공) 이날 저녁 동명부대 내 법당인 동명호국사에서는 동명부대원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법회를 열었다. 법회에는 동명부대원 외에도 레바논에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된 스리랑카 부대원이 들이 참석해 세계 평화와 레바논의 안정을 염원했다. 자승 스님은 법회에서 "최근 극단적 종교 정치적 성향이 있는 단체에 의해 세계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대화와 화합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곳에 자랑스러운 동명부대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자승 스님은 "자비의 정신으로 남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어려움을 잘 살펴봐 주길 바란다"라면서 "그 이해가 바로 이곳 중동에 또 다른 평화의 꽃씨를 남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zitrone@yna.co.kr
    2015-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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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출처 chttp://afe.daum.net/yogicflying?t__nil_cafemy=item 마음으로 그린 90년 전 한국과 한국인 ● 엘리자베스 키스 1887-1956 ‘Portrait of Miss Elizabeth Keith’ by Ito Shinsui, 1922 20세기 일본 화단의 대가로 꼽히는 이토 신수이(伊東深水, 1898-1972)가 그린 키스의 초상화 1919년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호기심 많은 한 영국 여인이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곧, 일제 식민 지배에서 신음하는 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과 풍습과 경관에 빠져들었고 깊은 애정으로 이를 그림과 글로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그림은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다가 2006년에야 재미동포 송영달 선생의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됩니다. 아마,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을 터인데, 1920~1940년대 무렵 옛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름답고 정밀하게 나타나 있는 그림들을 보면 경탄을 자아낼 것입니다. 도서관에 들렀다 우연히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란 책을 발견하고 놀라 마지않았던 라라와복래 또한 벅찬 감동으로 이 그림들을 소개합니다. 그림들은 인터넷 아트 갤러리인 hanga gallery(http://www.hanga.com)에서 스크랩했으며, 그림 설명은 주로 위 책에 실린 엘리자베스 키스의 육성을 그대로 옮겨 전합니다(큰따옴표로 처리). 무단 전재하여 저작권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이 책이 더욱 많은 독자들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이 아닌가 합니다. 책 소개는 글 말미에. Marriage Procession, Seoul_1921 혼례 행렬 이 그림은 혼례 행렬, 정확히 말하면 신부 행차입니다. 꽃가마가 아주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네요. 행렬 앞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신랑 집으로 가마를 인도하여 갑니다. 그 인도자는 백년해로를 뜻하는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있습니다.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가마 앞뒤에 있고, 동네 아이들이 구경삼아 따라가고, 빨래하던 아낙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데, 한 아낙은 길에다 물을 버리고 있네요. 뒤로 동대문이 보이는데, 다리는 청계천의 어느 다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East Gate, Seoul, Moonlight_1919 달빛 아래 서울 동대문 푸른 달빛 아래의 동대문(興仁之門). 이 그림에 보이는 돌담 표현은 목판화로는 하기 어려운 기법이라고 합니다. 키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23년 도쿄 대지진 때 목판 원본이 소실되었고, 이 그림은 키스의 저서 <동양의 창>에 실린 것인데, 현재 누가 실물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모른답니다. East Gate, Pyeng Yang, Korea_1925 평양의 동문 “1392년에 지은 평양 성곽 중 동쪽에 있는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서울에 있는 동대문만큼 웅장하지는 못하지만, 평양의 동문은 그 단순한 스타일과 함께 연륜의 은은함이 배어 있는 문이다. 에카르트는 한국의 건축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은 그 건축법을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그것은 한국의 상황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더욱 절제된 형태로 발전시켜 한국 특유의 건축문화를 만들어냈다.’ 평양의 동문은 바로 이런 한국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 Riverside, Pyeng Yang_1925 평양 강변 “대동강변의 이 정자는 약 150년 된 것이라고 하며, 그 주변 환경이 너무 완벽하여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아주 조심스럽게 정자 터로 선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워 때때로 여행객은 기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키스가 대동강변이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이곳은 모란봉ㆍ을밀대ㆍ부벽루가 있는 근처인 듯싶습니다. Wonsan_1919 원산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원산. 키스의 그림을 보니 과연 원산이 아름다운 곳임을 알겠습니다. 밤하늘의 별빛과 바다 위 배의 불빛이 기막힙니다~~ Korean Domestic Interior 한옥 내부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의 내부 풍경이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는데, 이 집의 가장은 사랑방이 아닌 대청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 한국에서는 남녀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며 부인이 식사를 날라다 준다. (...) 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방은 대문 가까이 있다.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는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길가에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은 마당이 있고 부유한 집은 안채 앞마당까지 해서 마당이 둘이다. (...) 한국 사람들은 방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방바닥은 노란 장판지로 덮여 있는데 항상 반짝반짝 닦아놓고 있다. 사랑방 나무기둥에는 ‘집에 연기가 자욱한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 써 있는데, 그것은 부엌에서 나는 연기를 가리킨다.” The Eating House 주막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밖으로 새어 나온다. 주막은 추운 겨울날 먼 거리를 걸어가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시골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집을 닮은 초라한 주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달을 쳐다보는 데 최고로 좋은 집>” The Hat Shop 모자 가게 “간판에 ‘높은 모자, 둥근 모자, 리본 달린 것, 세상 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라고 써 있다. 이 자그마한 모자 가게의 주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서 키가 큰 친구들까지도 가게 안에 다 들어오게 했다. 그들은 거기서 하루종일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눈다. 한국에서 모자는 중요하다. 학자는 특별한 모자, 그러니까 검은 말총으로 된 모자(갓)를 쓰는데, 오로지 중국 고전을 다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다. 총각은 약혼식에서 노란 짚으로 만든 둥그런 모자를 쓴다. 결혼식 날에는 한 사람이 빨간 모자를 쓰고 손에는 백년해로와 신의의 상징인 기러기를 들고 간다. 이런 옛 풍습은 한국에서 차차 없어져 가고 있다.” The School - Old Style 서당 풍경 “하늘 천, 따 지, 달 월, 사람 인. 후렴처럼 반복하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왔다. 여름 해는 따갑게 비치고 있었는데, 서울 성문에서 멀지 않은 그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서당 안을 슬쩍 들여다본 장면을 스케치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글을 외면서 그 소리에 맞추어 앞뒤로 몸을 흔들어댔다. 나이 많은 훈장은 실내용 모자를 쓰고 앉아서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마음속으로 아름다운 한시를 한 수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훈장은 조금도 학생들의 공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반장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감시하고 있다가 학생의 외는 소리가 끊긴다거나 조는 듯한 동작을 보이면 곧바로 등이고 어디고 내려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린 학생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글 읽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Temple Interior 절의 내부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이 사당은 전쟁의 신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노란색의 작은 지붕 밑에 나무로 깎은 시커먼 조각상은 약 3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 한국을 지켜주었다고 믿어지는 중국 장군의 영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사당은 이상한 모양의 조각상들로 꽉 차 있었고 내부는 어두컴컴하였다. 얇고 가벼운 치마를 입고 땅에 납작 엎드려 염불하는 여인들은 마치 깊고 어두운 숲 속에 떨어진 꽃잎처럼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사당은 지금도 동대문 인근에 있는 관제묘를 말합니다. 동묘라고도 하고 관운장을 모시고 있죠.] White Buddha, Korea_1925 흰 부처 이 그림의 흰 부처는 현재 서울 홍은동 보도각에 있는 백불(白佛)입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Kite Flying 연날리기 “서울은 연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이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각종 크기의 연을 파는데, 값도 싸서 어떤 것은 불과 일전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에 그려본 것은 전형적인 아이들의 연 날리는 모습이다.” A Game of Chess_1936 장기두기 “전형적인 한국 시골의 두 노인이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때로는 길가에 앉아서도 한다. 한국에는 놀이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여자들에겐 그네뛰기가 유일한 놀이이다. 그들은 우리 스코틀랜드 여자들보다 훨씬 높이 그네를 탄다. 그네 타는 여자들은 자리에 앉아서 타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탄다. 그네는 대개 소나무에 줄을 맨 것이지만, 때로는 벽돌로 세운 기둥에 매기도 한다. 그네는 이런저런 명절에 타기도 하지만 주로 봄에 타는 듯하다.” New Year's Shopping, Seoul_1921 새해 나들이 키스는 자신의 저서 <동양의 창>에 “정월 초하루인 설은 한국 최대의 명절이다. 이 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들이를 한다”라고 썼습니다. 광화문 해태 상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풍선을 가지고 놀고 있군요. 옛 우리의 세시풍경을 그린 귀중한 그림입니다. Young Korea_1920 한국의 어린이들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아이, 두루마기에 예쁜 꽃신을 남자아이들을 나란히 앉혀 놓고 그림을 그렸군요. 키스의 초기작 중 하나인데 이 그림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아이들이 설빔차림을 한 것 같군요. Two Korean Child_1925 두 명의 한국 아이들 “아이들의 의상은 그 디자인에 있어서 부모나 조부모가 입는 옷과 다를 바가 별로 없으나 색깔이 더 다양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분홍장미 색깔의 넓은 치마를 발목까지 내려오게 입고, 어린 남자아이들도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다. 조금 큰 남자아이들의 바지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통이 넓고 발목까지 온다. 갓난아기들의 저고리에는 색동 소매가 달려 있다.” Country Wedding Feast_1921 시골 결혼잔치 한국인의 풍습을 흥미를 가지고 관찰한 키스는 결혼식 장면을 여러 장 그렸습니다. 혹 그보다는 미혼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에 더 흥미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한번은 신부 행렬을 보려고 급히 따라가다가 물에 빠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는 아이 어른 다 합하면 2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흥겹게 잔치를 치르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Korean Bride_1938 한국의 신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다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부는 결혼식 날 발이 흙에 닿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가족이 들어다가 자리에 앉힌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뺨 양쪽과 이마에는 빨간 점을 찍었다. 입술에는 연지도 발랐다. 잔치가 벌어져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지만 신부는 자기 앞의 음식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과일즙을 입안에 넣어주기도 하지만 입술연지가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루종일 신부는 안방에 앉아서 마치 그림자처럼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디어내야 한다. 신부의 어머니도 손님들 접대하느라고 잔치 음식을 즐길 틈도 없이 지낸다. 반면에 신랑은 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신부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라는 키스의 표현이 재미있으면서 격세지감을 들게 합니다~~ Wedding Guest_1919 결혼식 하객 결혼식 하객으로 온 이 부인은 머리에 장식이 달린 조바위를 쓰고 단아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키스의 관찰입니다. "일본 여자들은 두 다리를 붙이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 여자들은 가부좌로 앉아서 피로하면 서슴지 않고 수시로 다리를 고쳐 앉는 게 풍습이다. 교회에 나온 한국 여자들을 그리다 보면, 다리를 고쳐 앉을 때마다 치마가 불쑥하게 들어올려졌다 내려앉았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광경이다.” Returning from the Funeral_1922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성 밖에 묻는 것이 법이라, 겨울 저녁 어두워진 후에 등불을 켜 든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성문의 현판에 ‘東大門’이라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서울은 아니로군요. 키스가 영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 영국 왕실에서 이 그림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The Widow_1919 과부 "온화하면서도 슬픈 얼굴을 한 이 부인은 한국 북부 출신의 여인이다. 한국에서는 남남북녀라 하여 북쪽의 여자를 더 쳐준다. 모델을 서려고 내 앞에 앉았던 그 당시,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였고 원한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인이었다. 이 과부는 남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처지가 못 되었다. 외아들은 일제에 끌려갔고 그녀는 언제 그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은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애국자였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다. 여자는 전통적이고 폭넓은 크림색 치마를 입었고 그 속에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저고리는 빳빳한 삼베였다. 북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풍습대로 머리에 두건을 두른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인데도 여자는 그런 두건을 쓰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숱이 많고 길었으며 그것을 땋아서 머리에 감아올리고 있었다.“ Embroidering, Korea_1921 자수놓기 긴 머리에 빨간 댕기를 하고 수를 놓고 있는 처녀. 혼기를 맞아 자신의 혼수 준비를 하는 걸까요. Woman Sewing 바느질하는 여자 “중류 가정의 한 여자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 그녀의 옆에는 바느질 그릇과 인두가 꽂혀 있는 놋화로가 놓여 있다. 한국 여자들은 세탁과 바느질을 아주 잘해서 아무리 더럽고 거칠었던 옷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세탁된다.” A Hamheung Housewife_1921 함흥의 어느 아낙네 “한반도 북쪽에 있는 함흥의 여자들은 서울 여자들보다 키도 크고 자세도 더 꼿꼿하다. 독특한 옷차림으로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닌다. 큰 두건 같은 머릿수건은 치마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여자를 대낮에 그렸다. 그녀는 땡볕도 개의치 않았을 뿐 아니라 머리에는 빨래를 담은 붉은 함지를 이고 있었는데도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옥가락지 두 개를 정성스럽게 끼고 있었다.” 이 그림과 다음의 ‘아침 수다’는 같은 소재의 그림입니다. A Morning Gossip, Hamheung, Korea_1921 아침 수다 "아침에 빨랫감을 이고 씻어야 할 요강을 들고 냇가로 나가던 여자와 다른 한 여자가 길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있다. (...) 머릿수건을 기술적으로 두르는 것이 풍습이며, 어떤 때는 치마나 아이들 옷으로 머리를 둘러싸기도 한다. 치마는 풍선처럼 넓게 퍼져 있고 저고리는 무척 짧다.“ From the Land of the Morning Calm_1939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사람 “중하층 계급에 속하는 한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추운 겨울이라 머리에는 털이 안으로 달린 남바위를 쓰고 그 위에 말총으로 만든 갓을 쓰고 있다. 하얀 무명옷에는 솜을 넣어 방한을 하고 있다.” The Country Scholar 시골 선비 “이 선비는 원산 사람이다. 그가 입고 있는 전통적인 선비 의상은 8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던 것이고 모자도 옛날식이다.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는 끝 부분이 백옥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복장과 잘 어울렸다. 선비는 그 부분이 잘 보이도록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의 옷고름은 연홍색 비단이고 옷은 엷은 옥색이었는데 까만 단하고 훌륭한 색깔의 조화를 이루었다. (...) 이 나이 많은 한국 선비와 얼굴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표정에서 좋은 가정교육, 자기 절제, 인자한 부드러움 등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의 매너는 은근하면서도 정중했다. 그는 속세의 근심을 떠나 별천지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Young Man in Red 홍복을 입은 청년 "이 청년은 자기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입궐할 때 입었던 관복을 입고 있다. 붉은색의 겉옷 밑에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고, 백색 옥돌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주머니를 달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패옥 소리가 낭랑했다. 거북이 등과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는 꼭 매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허리 위로 둥그렇게 두르도록 되어 있었다. 앞으로 내린 에이프런에는 금으로 된 단추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관직 등급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모자는 말총으로 만들어졌는데 금색 칠을 했고, 신발은 넓적하고 코끝이 뭉특해서 발이 작아 보인다.“ A Daughter of House of Min_1938 민씨 가문의 규수 “이 처녀는 지체 높은 집안의 규수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암살된 명성황후의 친척이다. 나는 그녀를 고풍스러운 병풍 앞에 세웠고 예쁜 신발을 그리고 싶어서 비록 실내지만 일부러 신발을 신게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에 외교사절로 파견된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이었다. 또 그는 내가 만난 최초의 한국 양반이었다. 그는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고 크림색의 얇은 천으로 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의 하얀 버선은 발에 아주 잘 맞았다. 만약 내가 시인이었더라면 그의 멋진 발을 노래하는 시를 지었으리라! (...) 훗날 나는, 결혼하여 어린 딸을 둔 이 여자를 다시 만났는데, 그 모녀에게서 그 아버지의 우아함이나 온화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영어를 잘하고 꽤 똑똑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좋은 배필을 만난 듯해 기뻤다.” 처녀의 아버지는 조선 말기 최초의 프랑스 공사였다는 것으로 보아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특권대사로 파견되었다가 1902년에 주불공사로 임명되어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한 1905년까지 공사로 활약한 민영찬으로 추정됩니다. 민영찬은 국권을 빼앗긴 것을 분히 여겨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동생입니다. The Gong Player_1927 좌고 연주자 이 악기는 조선 말기 화가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에도 보이는 좌고(座鼓)로 생각되는데, 좌고는 궁중음악 연주에 사용되는 북입니다. 보통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연주하거나 춤 반주를 할 때 좌고를 치는데, 앉은 채로 연주할 수 있도록 높이가 낮은 틀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칩니다. 좌고의 북통에는 용을 그리고, 북면에는 태극 무늬를 그려 넣습니다. The Flute Player_1927 대금 연주자 "이 사람은 과거 국악원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조선왕조가 망하여 궁중음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일본정부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잇다. 다행히도 나는 국악원 사람을 몇 명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전에 종묘제례 때 보았던 아주 희귀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다. 제일 보기 드문 악기는 다듬지 않은 옥같이 보이는 삼각형의 돌을 여러 개 나무틀에 걸어놓은 것이었다(편경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치면 전 음계의 음정을 낼 수가 있었고 소리가 아주 좋았다. 대개는 피리소리의 효과를 높이는 데 사용하였다. 또 오리 모양으로 만든 나무딱따기도 있었는데, 밝은 색깔의 옷을 입은 20여 명의 사람들이 전후좌우로 돌아가면서 소리를 냈다(박을 가리킵니다). 북의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각기 다른 소리를 냈는데 언제나 피리소리가 제일 고음이었고 또 제일 아름다웠다. 이 대금 연주자는 연주도 잘하지만 행동도 점잖아서 좋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과 마찬가지로 손이 잘생겼으며, 대금을 부는 사람의 섬세한 손놀림이 정말 보기 좋았다.“ Court Musicians, Korea_1938 궁중악사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 전통 한국음악의 정수인 궁중음악이 사라져갈 무렵, 키스는 궁중악사들을 애써 찾아 몇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아마 이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고종과 순종 재위 시에 궁중음악을 연주하던 마지막 궁중악사들로 생각됩니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엘리자베스 키스, 로버트슨 스콧 지음 l 송영달 옮김 l 책과함께 l 2006-02-06 무릇 책이란 돌려 읽고 놓아 주어야 할 때는 놓아 주어야 한다는 게 평소 라라와복래의 지론입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으니 바로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같은 책입니다. 누군가 이 책을 빌려달라고 하면 되돌아올 때까지 노심초사하게 될까봐 차라리 한 권 따로 사서 선물할지언정 선뜻 빌려주지 않을 것 같네요~~ 엘리자베스 키스와 로버트슨 스콧 자매의 <Old Korea>를 완역한 이 책은 키스의 그림과 여동생 스콧의 기행문으로 구성됐습니다. 이 책에 실린 키스의 그림은 비록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畵) 분위기가 나지만, 한국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과 풍광을 대단히 사실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묘사해내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큽니다. 마치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고 할까요? 이처럼 이 책은 화집으로서만이 아니라 당시 한국인들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그린 생활사 복원의 역할도 맡고 있으며, 이 책이 독자들을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키스의 여동생 스콧의 기행문은 1919년 3월에서 5월까지 3개월 동안 한국에 머무르면서 보고 들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스콧 역시 단순히 사람과 풍속, 풍경 등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일제 치하의 조선 현실을 상세하게 보고하는 한편 일제의 야만적 지배에 대한 분노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잠시 글을 소개합니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 배유안 지음 l 책과함께어린이 l 2008-12-05 “한국 여자들은 뼈대가 작으며 얼굴 표정은 부드럽다. 인내와 복종이 제2의 천성이 된 듯하다. 하지만 온순하기만 한 한국 여자들에게도 의외로 완고한 구석이 있다. 가령 이들에게 새로운 문물을 강요한다든지 오랫동안 쌓아온 그들의 생각이나 생활신조를 바꾸려 든다면, 차라리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들 허물어 옮기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른다. 그러므로 한국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선의 방법은 오직 한국 풍습을 존경하며 끈기와 친절로 대하는 것뿐이다.” "학교에서 루스라고 불리는 이 여학생은 반질거리는 까만 머리를 등 뒤로 땋아 내렸다. 기품이 고고한 얼굴이었고, 치아는 하얗고 뺨을 불그스레했으며 새까만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슬픈 표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환희에 넘친 표정이었다. 여학생은 왜 자기가 학교의 명령을 어기고 독립운동에 참가했는지 또 어떻게 체포되었는지 말했다. (…) 동정을 구하는 표정이라기보다는 승리한 자의 모습이었다." "한국인의 자질 중에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일본 경찰이 남자 죄수들을 끌고 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죄수들은 흑갈색의 옷에다 조개 모양의 삐죽한 짚으로 된 모자(용수를 가리킵니다)를 쓰고 짚신을 신은 채 줄줄이 엮여 끌려가고 있었다. (…)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 사람은 초라해 보였다." 이처럼 자매의 글과 그림은 한결같이 조선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고 있으며,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인간의 따듯함과 의젓함을 저버리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을 경탄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을 만나야 할 이유는 또 있습니다. 옮긴이 송영달 선생의 노고 때문입니다. 이 책은 전적으로 송영달 선생 혼자만의 노고로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1962년 유학길에 오르며 한국을 떠난 후 미국 이스트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정치학ㆍ행정학 교수로 30여 년간 근무한 후 은퇴했는데, 우연히 엘리자베스 키스를 발견하고 그때부터 자료를 수집한 그의 고군분투가 눈물겹습니다. 참, 같은 출판사에서 학생용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도 출간하였는데, 동화작가 배유안이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주제별로 나누어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내놓은 책으로 이 또한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20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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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의 앞날에 관해 '황당한' 전망을 늘어놓자 심의 당국!
    운세를 내다본다는 역술인들이 방송에 나와 국운과 지도자, 정치인의 앞날에 관해 '황당한' 전망을 늘어놓으면서 심의 당국이 이들이 출연한 프로그램에 대한 법정 제재를 논의하고 있다.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역학자인 A씨는 지난달 1일 한 종편 채널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등장해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귀인(貴人) 관계'라고 주장하며 "100쌍 중에 하나 정도 나올 정도에 김정은하고 박 대통령의 궁합이 잘 맞는다는 거죠"라고 발언했다. 방심위는 A씨의 발언이 비과학적인 내용에 근거한 것으로 보고 최근 방송심의소위원회를 열어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법정제재인 '주의'를 내리는 내용의 안건을 다음 전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제41조)은 '방송은 미신 또는 비과학적 생활태도를 조장해서는 안 되며 사주, 점술, 관상, 수상 등을 다룰 때에는 이것이 인생을 예측하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속인인 B씨도 작년 12월 28일 다른 종편 채널의 프로그램에 나와 차기 대선결과를 전망하면서 "다음 대선은 여당이 이깁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대선 주자로 거론돼 온 특정 정치인을 두고서는 운세가 내리막을 탄다는 등의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방심위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같은 조항의 방송심의 규정을 적용해 법정제재인 '경고' 등의 의견으로 전체회의에 상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방심위 관계자는 "이런 분들(역술인이나 무속인)의 출연을 금할 수는 없지만 국내 정세 등 민감한 상황과 관련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발언)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것이 (심의의) 핵심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방심위는 내주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이들 프로그램에 대한 법정제재 수위 등을 결정한다. eddie@yna.co.kr
    2015-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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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헌법 공포 따라 일괄조치 명예회복으로 보기에는 부족…배상·사죄 필요
    윤동주(尹東柱) 시인이 일본의 감옥에서 세상을 떠난 뒤 20개월여 만에 사면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동주 사면은 일본의 새 헌법(현행헌법) 공포와 함께 단행된 일괄적인 조치에 따른 것이라서 진정한 의미의 명예 회복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일본 법원의 판결문과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 교토(京都)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교토지검의 설명 등을 종합하면 윤동주는 1946년 11월 3일 사면된 것으로 분석된다. 윤동주는 1944년 3월 31일 일본 교토지법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 판결을 받았고 상소를 포기해 다음 날 형이 확정됐다. 교토지검이 보관 중인 이 사건의 판결문에는 윤동주 시인의 성이 '윤'이 아닌 '히라누마'(平沼)로 표기돼 있으며 성명 표기 바로 위에 "쇼와(昭和) 21년(1946년) 칙령 제511호 대사령에 의해 사면됐다"는 문구의 도장이 찍혀 있다. '쇼와 21년 칙령 제511호 대사령'은 일본 헌법 공포일인 1946년 11월 3일 발표된 사면 조치의 일종이며 윤동주에게 적용된 치안유지법 위반죄도 사면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 조선 근대사 전문가이며 윤동주를 연구해 온 미즈노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조치에 의해 윤동주가 사면됐다고 설명했다. 교토지검 관계자는 윤동주 판결문에 찍힌 도장에 관한 연합뉴스의 질의에 '1946년에 헌법 공포를 계기로 시행된 대사령에 따라 확정된 형을 삭제하는 조치가 이뤄졌는데 그 절차를 진행했다는 표시로 보인다'고 일반론을 전제로 설명했다. 그러나 만약 윤동주가 복역 중 사망하지 않고 생존했더라고 가정하더라도 사면의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법원은 윤동주가 판결 선고 전에 붙잡혀 있던 약 260일 가운데 120일을 복역 기간(미결 구금 일수)으로 인정했고 이를 고려하면 윤동주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1945년 11월 말 무렵으로 사면일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1945년 10월에 치안유지법 등을 폐지하고 이른바 정치범을 석방했기 때문에 만약 윤동주가 생존했다면 이때 풀려났을 가능성도 있다. 사면 도장 찍힌 윤동주 판결문(도쿄=연합뉴스) 일본 교토지검이 보관 중인 윤동주(尹東柱) 시인의 판결문. 판결문에는 윤동주 시인의 성이 '윤'이 아닌 '히라누마'(平沼)로 표기돼 있으며 성명 표기 바로 위에 "쇼와(昭和) 21년(1946년) 칙령 제511호 대사령에 의해 사면됐다"는 문구의 도장이 찍혀 있다. (곤타니 노부코 씨 제공) 사면은 형벌을 받은 사실을 삭제하는 행위지만 이것이 일본 정부가 '저항 시인' 윤동주의 명예를 회복하거나 그를 제대로 평가한 조치로는 간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즈노 교수는 "윤동주의 전과가 없어진 것이다.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한 의미의 명예회복은 아니다"며 "만약 국가 권력이 수년간 붙잡아 넣은 것이 잘못됐다고 인정한다면 배상을 했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윤동주를 포함해 국가 권력에 희생된 이들에게 일본 정부가 제대로 사과의 뜻을 표명하고 배상하는 것이 그나마 책임 있는 자세라는 것이다. 윤동주의 유족 측은 사면에 관한 얘기를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여, 일본 정부가 윤동주의 사후에 사면에 관해 유족에게 알렸을 가능성은 극히 작아 보인다. 미즈노 교수는 일본 정부가 비슷한 사안에서 일본인에게도 연락하지 않았으며 윤동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봐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윤동주보다 나흘 먼저 체포됐고 같은 형무소에서 옥사한 고종사촌 송몽규의 판결문에서는 사면을 확인하는 도장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즈노 교수는 일본 검찰에 그 이유에 관해 물었으나 아직 답을 듣지 못했고 일본 정부가 유독 송몽규를 사면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는 만큼 단순히 날인을 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이라도 송몽규의 사면을 일본 정부가 다시 확인하고 그가 치안유지법으로 투옥된 것에 관해 사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동주는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1943년 7월 14일 교토의 시모가모(下鴨)경찰에 의해 체포됐으며 재판을 거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 복역하던 중 1945년 2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sewonlee@yna.co.kr
    201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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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30여명 시·소설 40여종 11개 언어권으로 진출
    "한국문학이 해외에 소개된 지 10년이 됐습니다. 우리 문학이 유럽 사람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놀라움을 줬는지 모릅니다. 조그만 나라에서 이렇게 다양하고 세련된 작품이 있다는 데 놀라워한다. 국내에서만 그런 상황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최근 간담회에 참석한 소설가 황석영은 해외에서 보는 한국문학의 위상을 이같이 설명했다. 외부의 평가가 내부의 시선보다 좀 더 우호적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다. 올해 한국문학의 국제적 위상은 한층 더 올라갈 전망이다. 문학 한류 확산을 기치로 내세운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성곤)은 올해 30여 명의 작가를 해외에 소개한다. 번역되는 작품은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루마니아어, 스웨덴어, 폴란드어, 핀란드어, 체코어, 러시아어까지 모두 11개 언어에 달한다. 해외 진출의 본진은 소설이 이끈다. 41종 중 시 7편을 제외한 33편에 달한다. 박경리·박완서·황석영을 비롯해 김영하·박민규·김연수·성석제·편해영·김애란 등 국내를 대표할만한 신구 작가가 대거 포진했다. 올해 4주기를 맞은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루마니아어로 번역돼 다음 달 현지에서 출간된다. 루마니아에서 그의 작품이 번역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올 6월 러시아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고,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오는 5월 폴란드에서 출판된다. 1970-80년대 리얼리즘 소설에 뿌리를 둔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 각각 중국과 스웨덴 독자들을 만난다. 중견 작가 중에는 김영하의 활약이 가장 돋보인다. '검은꽃'(폴란드어·중국어)과 '너의 목소리가 들려'(불어·영어) 2편이 모두 4개 언어로 번역돼 현지에서 출간된다. 뉴욕타임스 등을 통해 주목받은 신경숙의 스테디셀러 '엄마를 부탁해'는 오는 5월 핀란드에 소개된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체코어로 번역돼 역시 5월쯤 출간된다. 성석제의 '왕을 찾아서'(중국어)와 '위풍당당'(독일어)도 아시아와 유럽으로 소개되고, 베트남에서만 번역됐던 정유정의 소설 '7년의 밤'은 중국과 독일로 세를 확장한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된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일본어로, 김애란의 소설집 '비행운'은 프랑스어로, 김연수의 '원더보이'는 러시아어로 번역돼 각각 현지 독자들과 만난다. 김경욱의 소설은 처음으로 해외 독자들과 만난다. '동화처럼'은 프랑스어로,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영어로 번역돼 출간된다.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은 영어와 중국어로 소개된다. 소설보다 더 번역하기 까다로운 시는 7편이 선보인다. 나희덕의 '야생사과',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최승자의 '주변인의 초상',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이상 영어)을 비롯해 김남조의 '오늘 그리고 내일의 노래'(중국어), 문정희 '지금 장미를 따라'(일본어), 황동규 '꽃의 고요'(독일어)가 해당 언어로 각각 번역돼 출간된다. 나희덕 시인 buff27@yna.co.kr
    201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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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정권 실정 비용 수치로 추산…과거 잘못 거울삼아 관행 개혁해야
    이명박 전(前) 대통령의 회고록이 내달 2일 출간될 예정인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의 실정을 조명하는 책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강병구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박선아 변호사, 최상재 SBS 프로듀서 등 16인의 전문가들이 쓴 'MB의 비용'이다. 저자들은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경색된 남북관계, 권력형 비리, 언론 장악 등 MB가 5년간 집권하면서 남긴 막대한 피해의 유산을 살핀다. 고기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MB 집권기 주요 에너지 공기업 3사에 생긴 새로운 빚만 해도 42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올해 국방·외교·통일 예산을 합한 것보다 많은 액수이며 1977년부터 2008년까지 해외 자원개발에 쓴 돈보다 수 배나 많은 금액이다. 이렇게 빚을 져 투자했지만, 투자성과는 고사하고 손해만 봤다고 고 교수는 주장한다. 그는 캐나다 하베스트 에너지,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 등 모두 여섯 건의 해외자원개발 과정을 분석해 최대 10조 원의 손해액을 도출해낸다. 대한하천학회 부회장인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4대강 사업을 정면 비판한다. 무려 22조 원이 넘게 든 이 사업은 현재도 문제지만 앞으로는 더 큰 골칫거리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유지관리비, 하천정비비용, 취수원 이전비, 추가 인건비 등을 근거로 84조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한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KT·포스코의 내리막길과 롯데와 MB의 유착 등 MB 시절 기업 경영정책의 문제점을 살피는 한편, 김윤옥 여사의 한식세계화 사업의 실망스러운 행보를 짚는다. 아울러 책은 여섯 개의 주제를 놓고 이뤄지는 대담도 수록했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한 막대한 정치외교적 비용, 권력형 비리,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지는 인사 검증 시스템 미비, 잘못된 조세 재정 정책 방향과 권력의 언론장악 등에 대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이 개진된다. 유종일 교수는 "대한민국이 바로 서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법제도와 관행을 개혁해나가야 함은 물론, 심각한 비리와 범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중한 책임 추궁과 처벌을 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MB 정권의 일탈과 잘못을 기록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출판사 알마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 비용을 경제적 수치로 추산해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책은 이르면 다음 달 3일 출간될 예정이다. 364쪽. 1만6천원 buff27@yna.co.kr
    2015-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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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민석 의원 밝혀…현종어보 3월 중 반환 예정
    한국전쟁 당시 미군 병사가 불법 반출한 중요 문화재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가 6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대한인국민회 유물 처리 문제로 방미 중인 안민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24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현재 워싱턴DC 국토안보수사국(HSI)에서 보관 중인 두 어보는 조만간 절차를 밟아 한국에 반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 의원은 "문정왕후어보는 다음 달 설 전후, 현종어보는 3월 중 각각 환수될 예정"이라며 "이 어보들은 워싱턴DC에 있는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수령해 한국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두 어보는 지난 2000년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박물관(LACMA) 측이 경매시장에서 구입해 소장해왔다가 도난품인 사실이 확인되자 국토안보수사국이 2013년 9월 압수해 그동안 조사를 진행해왔다. 앞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방한했을 때 한미 양국은 불법 유출된 조선왕실과 대한제국 인장 9점을 반환하기로 합의했으나, 두 어보는 반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반환 대상은 대한제국 국새인 황제지보(皇帝之寶), 순종이 고종에게 태황제(太皇帝)라는 존호를 올리며 1907년 제작한 수강태황제보(壽康太皇帝寶), 조선왕실에서 관리임명에 사용한 유서지보(諭書之寶) 등 9점이다. '현종어보' 이들 인장은 한국전쟁 당시 참전 미군이 덕수궁에서 불법 반출했다가 2013년 11월 미국 국토수사국에 압수됐고, 한미 양국의 공조 결과 조선왕실과 대한제국 인장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7월 워싱턴DC에서 문화재 환수 관련 양해각서에 설명할 당시에도 두 어보와 관련해 '2015년 1월 중 반환'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11대 중종의 두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 어보는 거북 모양 손잡이가 달린 금장 도장으로, 도장을 찍는 면에 문정왕후의 존호인 '성열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라고 새겨져있다. 한편, 안 의원은 문정왕후·현종어보 반환을 위해 '문화재 제자리 찾기' 혜문 스님과 함께 3년 가까이 환수활동을 펼쳐왔다. jongwoo@yna.co.kr
    201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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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와 사람과 자연과의 대화'를 주제로 한 기록의 터!
    서울시는 은평구 옛 질병관리본부 자리에 지자체로는 최초로 시정 기록물 100만여 점을 보관할 '서울기록원'을 2017년까지 건립한다고 18일 밝혔다. 시는 서울시청사의 설계도면부터 30년 이상된 중요 시정기록물, 세월호 관련 민간 기록물까지 문서와 사진, 영상 등을 이곳에 모아 관리할 계획이다. 특히 서울시와 자치구 등 개별 공공기관이 나눠 관리하는 기록물들과 청도문서고의 30년 이상된 9만 7천여 권의 자료를 한곳에 모으는 데도 의미가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청도문서고는 서울에서 5시간 이상 걸리는 곳에 있어 한 달 이용객이 1∼2명에 불과하지만 서울기록원이 생기면 시민과 관광객 누구나 가까이에서 기록물들을 열람할 수 있게 된다. 시는 기록원 건립과 관련해 설계공모를 시행, '도시와 사람과 자연과의 대화'를 주제로 한 해안종합건축사사무소의 '기록의 터(Land Monument)'를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공모에는 총 33개사가 응모해 10개사가 최종 작품을 제출했고 당선작 외에도 우수작 1개, 가작 3개 등 총 5개의 작품이 선정됐다. 당선자에게는 기록원 건립 공사 설계용역에 대한 기본·실시설계권이 주어진다. 건립공사는 오는 9월 시작된다. 심사위원장인 심재현 세종대 교수는 "대지의 경사, 주변 숲 등 지형을 이용한 내·외부 공간의 연계성과 장소성에 대한 아이디어가 가장 우수했고 정보문화공간으로서 기록관리 업무 동선 기능도 고려했다"고 당선작을 평가했다. 기록원은 지하 2층∼지상 5층, 연면적 1만 5천920㎡ 규모로 지어진다. lisa@yna.co.kr
    201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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