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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21일 국방부 앞에서는 다산인권센터, 군인권센터, 참여연대 등 16개의 시민사회 단체들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5월 뉴스타파가 보도한 <한 군인의 절규, ‘나는 벌레가 아니다’>를 통해 드러난 공군 소속 부사관 이 모씨에 대한 가혹행위에 대해 국방부 차원의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를 요구한 것이다. 이 하사의 아버지와 변호인 측은 이 하사를 음해하는 메일을 보낸 양 모 상사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를, 이 하사의 선임수사관을 비롯한 상급 수사관 5명과 공군 헌병단장에 대해서는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국방부에 고발할 예정이다. 또한 양성수사관 해임의 부당함을 군법이 아닌 헌법으로 따져 묻겠다며 공군을 상대로 지난 21일 행정심판도 제기했다. 이진혁(가명) 하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19살의 나이로 헌병 수사관의 꿈을 안고 공군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입대 후 그를 기다린 것은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계속된 고참들의 폭행과 성추행, 집단 따돌림 등 가혹행위였다. 이 하사는 일 년이 넘는 시간동안 괴로워 하다 결국 공군 헌병단에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이 아닌 ‘조직의 배신자’라는 낙인이었다.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형편없었다. 당시 수사를 통해 8명의 간부가 이 하사를 상대로 폭행, 욕설, 성추행등의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공군은 가해자 중 3명에게만 징계중 가장 수위가 낮은 견책 처분을 내렸을 뿐이었다. 나머지 가해자 5명에 대해서는 폭행 등의 가혹행위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무혐의 처리했다.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가해자 중 한 간부는 5년이 지난 뒤 다른 부대에 배치된 이 하사의 상급자에게 이 하사를 음해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고 양성수사관 과정이던 이 하사가 수사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해당 부대의 수사관들은 이런 음해성 메일을 보낸 간부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았고, 이 하사는 결국 공군 수사관의 꿈을 접을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 이를 자책하던 이 하사는 결국 지난 2월 자살까지 시도한다. 이러한 내용이 뉴스타파 방송을 통해 소개된 후 공군 측은 이 하사에게 허락없이 방송에 출연했다며 징계 절차에 들어갔고, 공군 내부에서는 자신의 피해사실을 가족과 언론에 알린 나약한 군인이 됐다. 또다시 조직을 배신한 군인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묻힐 뻔 했던 이 하사의 억울한 사연은 육군 28사단에서 발생한 윤일병 구타 사망사건이 사회에 일파만파로 충격을 주면서 비로소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뉴스타파를 통해 처음으로 아들의 사연을 공개하고 공군 측과 지난한 싸움을 벌여온 이 하사의 아버지는 21일 국방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그동안 자식을 지키지 못 한 아비로서 맺혔던 억울함을 쏟아냈다. 그는 윤 일병이 만약 살아서 자신의 일을 신고했다면 그 역시 이 하사와 마찬가지로 조직의 배신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가혹행위를 당해놓고도 그 어린 나이에 법무실이나 헌병대에 끌려가서, 니가 잘못했지 니가 나쁜 놈이지 니가 죽일 놈이야. 책상 때리면서 조사해서 다 무혐의 처리해주거나 견책 처분만 내리는 데가 우리나라 군대입니다. 이 하사의 변호인인 김칠준 변호사 역시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아닌 미온적인 수사와 처벌, 그리고 결국 피해자에 대한 왕따와 보복 행위를 통해 더는 내부 고발을 하지 못 하도록 만드는 군대 문화가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군 내부 문제를 덮으려고만 했던 관행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이 하사의 아버지는 지난 6년 간 자신의 아들이 겪어온 군 생활의 실체를 밝혀주기를 촉구하며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서한을 국방부에 전달했다. 이 하사가 겪어온 군 생활의 참상에 공감하는 1112명의 온라인 서명도 포함됐다. man4707@naver.com
    201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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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
    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해 4박 5일의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빈자들의 벗’으로 불리며 스스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개혁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적극적인 사회 참여도 동시에 강조해왔다. 그런 만큼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약자들의 고통이 외면당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향해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 지를 놓고 비단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진심 어린 편지 읽고 방한 결정…청와대는 왜 적극 지원했나? 지난해 3월 즉위한 이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관심을 몸소 실천하는 파격적 행보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인 프란치스코 교황. 그가 이번 방한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10월 20일 천주교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가 보낸 편지 한 통이었다. 교황께서 참석했던 브라질 세계청년대회 참가자는 300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년에 한국에서 열릴 아시아 청년대회 참가자는 불과 2천 명, 한국 참가자를 제외하면 천 명입니다. 그래도 와 주시겠습니까? 교황은 “이 편지를 읽고 가슴이 뛰면서 꼭 가야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미 2014년 공식 일정이 모두 확정된 상태였음에도 자신의 휴가 기간을 조정해 한국 방문을 추진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청와대도 교황 방한을 추진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지난해 3월 26일 교황 즉위식에 사절단을 보내 방한을 요청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고, 지난해 10월 9일엔 청와대를 찾은 교황청 추기경을 접견하면서 재차 교황 방한을 요청했다. 이후 유흥식 주교의 편지로 방한이 확정되자 청와대는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청와대의 적극적인 교황 방한 추진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속에서 종교 지도자의 화해와 평화 메시지를 필요로 한다는 외면적 명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해석을 낳을 여지가 충분했다. 바로 정권 출범과 동시에 불거진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이 정권의 정당성을 위협하고 있던 국면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첫 해부터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의혹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죠. 그래서 교황이라는 상징적 인물이 방문해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는 모습을 통해 정부의 정통성 문제를 해소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30년 전 전두환 대통령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한국 방문을 적극 추진했던 것과 유사한 전략이라고 볼 여지가 충분합니다.[한상봉 /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주필] 교황 방한과 세월호 특별법…’스텝 꼬인 청와대’ 청와대는 지난 3월 10일 교황 방한을 직접 발표했다. 마땅히 천주교 측에서 발표해야 할 사안을 기자단 엠바고까지 요청하면서 청와대가 발표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 역시, 교황 방한에 대해 정권 차원의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런데 불과 한 달여 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청와대의 기대감은 걱정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교황 방한이 임박한 시점까지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작업은 지지부진하기만 했고, 결국 유가족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는데, 문제는 그 장소가 교황이 미사를 집전해야 할 광화문 광장이라는 것이었다. 여야가 느닷없이 13일까지 특별법을 처리하자고 합의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거죠. 박근혜 정부 입장에선 14일에 교황이 오기 전에 세월호 특별법 논란을 어떻게든 타결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어떤 내용으로든 타결만 하면 세월호 유족들을 광화문 앞에서 철수시키고 깨끗이 정리된 상태에서 교황을 맞이하고 싶었다고 봐야 겠죠.[한상봉 / ‘가톨릭 뉴스 지금여기’ 주필] 그러나 여야의 ‘밀실야합’이라는 비난 여론이 강하게 일며 특별법 처리는 결국 무산됐다. 이러자 정부가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유가족을 강제 퇴거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천주교 측은 “눈물 흘리는 사람을 내쫓고 예수님께 사랑의 성사인 미사를 거행할 수는 없다”며 농성장을 그대로 유지할 방침을 분명히 했다. 결국 교황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된 세월호 유가족들은 절실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 사건은 저만의 사건이 아닙니다. 생명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탐욕적인 세상, 부패하고 무능하며 국민보다 권력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부라는 인류 보편의 문제입니다. 교황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우리 정부를 압박해 주십시오. 그래서 힘이 없어 자식을 잃고 그 한도 풀어주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구해주십시오.[김영오 / 세월호 참사 희생자 김유민 학생 아버지] 새누리당 “교황 방한 정치적 이용 안 돼”…교황 “모든 약자들 만날 것” 이러자 다급해진 건 집권 여당이었다.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25년 만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세월호 특별법투쟁의 계기로 삼으려 하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며 미리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늘 현실 참여를 강조해 왔던 교황은 기꺼이 정치적 논란의 한복판에 뛰어들 것임을 분명히 했다. 세월호 유가족 말고도 국가권력이 외면한 우리 사회의 여러 사회적 약자들과의 만남을 약속한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과 용산참사 유가족들, 평택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그리고 탈북자들. 하나 같이 우리 사회의 아픔을 대변하는 사건의 당사자들, 그러나 망각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던 사람들이다. 용산 참사 직후엔 정부와 정치인들이 모두 나서서 모든 걸 바꿀 것처럼 얘기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 바뀐 건 하나도 없어요. 정부가 교황님의 메시지를 잘 실천해서 이제는 좀 다른 모습으로 바뀌길 바랍니다.[이충연 / 용산참사 유가족] 온갖 탄압 속에서 쫓겨나는 형태의 삶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대부분의 국민들이 제대로 알지 못 하고 계세요.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삶들을 모두가 돌아볼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고권일 /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 우리 정치가 저희 같은 노동자들이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외면해온 현실이 너무나 분노스럽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맞춰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편지도 쓰고 만남을 준비해 왔습니다.[김득중 /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 한국 사회 성찰 계기…실천은 우리 손으로 국가로부터 외면당한 사회적 약자들이 교황의 권위에 의지해서라도 절박함을 타개하려는 현실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적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방한 기간 중 교황의 발언과 행보는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어떤 수준에 와 있는 지를 돌아보고 성찰하도록 하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교황이 전달할 메시지를 통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이 모든 문제를 풀어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아픈 문제들은 누가 뭐래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역량과 지혜로 풀어야 합니다. 우리에겐 우리의 숙제가 남아 있고, 그걸 풀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들입니다.[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201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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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대 국회는 국민의 청원권을 회복하는 국회법을 개정허라!
    http://blog.naver.com/man4707/220076211120 http://blog.daum.net/buchusil/6684725 박영록 전 의원 명예회복 추진본부는 2014년 7월28일 오전 10시 국회 프레스센터에서 박영록 전 4선 의원의 1980년 전두환 신군부 피해에 대한 구제조치 촉구를 위한 국회의원 서명과 명예회복이 추진된다. 라는 기자회견을 가졌다.지난 2009년 5월, 1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박영록 전의원의 허위 조작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두 개의 결정 권고 통지문을 정부에 보냈었다.“첫째, 국가는 박영록을 장기간 불법 구굼하고 부정축재 정치인으로 매도한 점과 박영록에 대해 수사과정에서의 폭행과 생명•신체에 대한 위협 등 가혹행위를 가하여 강제로 국회의원직 사퇴를 받은 점에 대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에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둘째, 국가는 피해자들을 불법 구굼하고, 폭행•협박으로 박영록의 재산을 강제 헌납토록 한 피해에 대하여 적절한 구제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이 사건은 신군부에 항거하는 박영록 전 의원을 강제로 연행해 한 달 이상 감금하고, 그의 6천만 원 상당에 불과한 임야를 부정축재자 환수 기준에 꿰맟추려고 18억 원으로 둔갑시켜 환수한 것처럼 서울시가 대납하여 구민 조작사건으로, 함께 끌려갔던 큰 아들은 여직도 정신적 충격으로 한 맺힌 삶을 살며, 차남은 부모를 잘 못 모셔 죄송하다며 자살하여 가정은 파탄 나고 말았다. 박영록 전 의원의 세 아들의 불행과 가해자 전두환의 세 아들의 호의호식과 상반된 현실이 통탄할 따름이다.재산 강탈 사건은 법적 조처도 아니고, 행정조처에 의한 재판•압수가 아닌 대상도 안 되는 건을 강제 찬탈, 갈취한 일이었다. 사실이 이런데도 5년이 넘도록 국방부와 안전행전부는 서로 핑퐁게임을 해 왔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 가 서로 눈치만보며 “마땅한 규정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방치하는 격이다. 그리고 여전히 박영록 전의원은 2평 컨테이너에서 겨울 추위에 이어 이번엔 찜통 여름을 십 수년째 나고 있다.그동안 현직 국회의원을 잡아 가두고 금뱃지와 재산을 강탈한 전두환 군부의 폭거에 대해 항의와 이를 바로 잡아 명예회복을 해드리려는 피해 당사자격인 국회의원들의 정의로운 결단과 행동이 매우 미약했었다.이번 일은 대한민국 헌정회 변호인단이 대표하고, 실무 추진은 14~16대 국회 입법보좌관을 역임한 전 강원도 정무특보인 문태성 박사(강원 영월 출신)가 사무총장을 맡았다.박영록 전의원에 대한 명예회복 추지는 3단계로 진행되며, 제1단계는 국회의원과 헌정회 회원들에 대한 서명작업으로 국회의원 과반수 서명 후 박근혜 대통령께 상소한다. 헌정회원들도 별도의 촉구대회와 서명식을 가질 예정이다.제2단계는 서명된 국회의원들의 동의요청서를 첨부하여 정기국회 대 국회 청원을 추진한다. 결과 판단에 따라 전국민 서명에 돌입한다.제3단계는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권고한대로 강제 헌납된 그의 재산을 바놘 받고 피해에 대한 적절한 구제 조치를 취하는 것과 박 전 의원의 평생 숙원인 돌려받은 땅에다 항일독립운동 애국자 안중근 윤봉길 의사 등 ‘애국지사 공원’ 조성 추진사업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박영록 전 의원은 “깡패 사회도 조직원이 얻어 터져 맞고 오면 나서는데, 현직 의원을 불법감금하고 의원직을 뺏은 폭거였지만 국회는 지난 날 권력의 시녀 노릇을 했던 것”이라며 특별법으로 전두환을 단죄한 터에 국회와 새 정부에서 그가 행한 찬탈도 바로 잡아주기를 원하고 있다.“올해 93세로 천수를 곧 다할 청렴의 표상 컨테이너 박영록 전의원에게 국가와 국민의 대표자 국회의원과 국민의 생전에 무엇을 해 드리는 것이 옳은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 양심과 정의가 살아있다면 바르게 펴드림이 조국과 도민이 마땅히 할 일로 땀을 흘맇 것”이라며 문태성 사무총장은 각오를 단단히 밝혔다. (끝).
    201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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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균 씨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본격적 진행!
    [뉴스투데이]◀ 앵커 ▶유대균 씨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유씨는 오대양 사건으로 아버지가 당한 고초가 생각나 도피했다고 밝혔는데, 검찰은 오늘쯤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입니다.윤지윤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유대균 씨를 조사하고 있는 검찰은 어젯밤 늦게까지 유씨를 상대로 회삿돈 56억 원을 빼돌린 경위와 사용처 등을 강도 높게 조사했습니다.또 도피과정에서의 구체적인 행적과 함께 추가 조력자와 미국에서 종적을 감춘 동생 혁기 씨의 행방에 대해서도 집중 추궁했습니다.유씨는 자신이 도피한 것은 "오대양 사건 당시 아버지가 당한 고초가 생각났기 때문"이라고 진술했습니다.또 금수원은 세월호 참사 닷새 뒤인 4월 21일 빠져나왔고, 이후 석 달간 수행원 박수경 씨와 함께 용인 오피스텔에 머물며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텔레비전과 휴대전화도 없어 아버지 유병언 회장의 사망 소식은 도피를 도왔던 측근 하모씨를 통해 알았고 당시엔 믿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프랑스에 출국하려다 실패한 것에 대해서는 "세월호 참사와 관계없이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검찰은 유씨가 오피스텔에 들어가기 직전 박씨와 함께 충청북도 음성과 진천지역을 돌아봤다며 이 지역에 은신처를 마련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검찰은 유씨가 수사에 비교적 협조적인 만큼 오늘쯤 유씨와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입니다.MBC뉴스 윤지윤입니다.(윤지윤 기자 yjy2@mbc.co.kr)
    201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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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 - 살아남은 아이들의 외침...“진실을 밝혀주세요”(2014.. 세월호 참사로 친구와 선생님을 잃은 70여 명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 도착했다. 안산 단원고에서 출발해 국회까지 1박 2일동안 30여킬로미터...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는 것이다.
    2014-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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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의 최고 실세로 불리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정권의 최고 실세로 불리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그는 지난 10일 세월호 국정조사 기관보고에 나와 세월호 침몰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한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4월 16일 오전 10시 서면 보고와 10시 15분 전화 보고 이후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 전까지 대통령의 행방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이 날 사고 상황은 모두 서면이나 전화로만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나 대면 보고는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 실장은 청와대의 책임을 따져 묻는 의원들에게 참사의 원인은 선장과 기업, 그리고 공무원의 태만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콘트롤타워냐는 질문에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의하면 최종 지휘 본부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본부장이 되는 중앙재난대책본부장”이라고 답했다. 김 실장은 “국조에 성실하게 임하러 나왔지 책임을 회피하려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거듭 청와대, 특히 대통령의 책임을 최소화시키려는 모습을 보여 국조특위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실패가 드러났다고 지적하자 “인사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며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야당 국조특위 위원들은 김 실장에게 인사 실패의 책임과 대통령을 잘 보좌하지 못한 책임을 물으며 사퇴를 요구했다.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기관보고는 11일 종합질의에서 세월호 참사를 AI(조류 인플루엔자)에 비유한 조원진 새누리당 간사의 발언과 심재철 위원장의 유가족 퇴정조치로 결국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정확한 사고 원인, 정부의 어이없는 대처에 대한 책임 소재 규명 등은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그동안 국정조사를 지켜본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지상준 군의 어머니 강지은 씨는 “배가 침몰했을 때 해경이나 해군이 3일 동안 언저리만 돌았다. 그런데 지금(국정조사)도 마찬가지다. 언저리만 돌고 있다”고 말했다. 기관보고를 끝낸 국정조사 특위는 증인과 참고인 등을 대상으로 8월 4일부터 8일까지 청문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201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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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기관보고가 지난 30일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세월호 진상규명에 필요한 핵심자료들이 제대로 제출되지 않아 초반부터 국정조사 부실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보고체계의 가장 윗선에 있는 청와대 기관들은 자료 제출 응답률이 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와대 자료 제출 응답률 3%..KBS는 단 1건도 답변 안 해 뉴스타파 확인결과, 국조특위 야당 의원들은 대통령 비서설과 국가안보실 등 청와대 관련 기관에 총 205건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1일 현재 청와대가 제출한 자료는 대통령 비서실 3건, 국가안보실 4건 등 7건(3.4%)에 불과하다. ▲ 자료제공 : 국조특위 여당 간사 김현미 의원실 특히 이 7건 가운데도 정작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료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권 국조 특위 의원들 가운데 유일하게 청와대로부터 자료를 받은 정진후 의원실(정의당)은 “도착한 자료들은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의 UAE방문 공식일정, 세월호 사고 관련 청와대 공식논평 등 공개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들에 대한 것”이었다며 “정말 꼭 필요한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고, 세월호 참사 보완책으로 얘기되는 국가안전처에 대한 기본 구상을 물었으나 이에 대한 답변도 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 소속 의원들은 청와대 측에 공동으로 △세월호 사고 발생 인지 시점 △최초 접수자 △사고 이후 보고현황 △사고 당일 (06~24시) 상황실 시간대 별 근무자 △ 관련 정부 부처가 청와대 국가안보실 등에 보고한 내용 등의 자료를 요구했다. 이들 자료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 소재 규명에 필수적인 것들이지만 청와대는 국정조사가 시작된 현재까지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또한 세월호 참사 발생 이후 한동안 정부 눈치 보기 보도로 일관해 세월호 유가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던 공영방송 KBS는 야당에 단 1건의 자료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야당 의원들은 총 126건의 자료를 KBS에 요구한 바 있다. KBS에 총 119건의 자료를 요구한 최민희 의원실(새정치민주연합)은 △사고당일 전원구조 오보 경위 △길환영 KBS사장의 사고 당일 진도 방문 당시 촬영 영상 △사고 당일 기자들이 취재해 보고한 세월호 관련 아이템 내역과 원고 등을 KBS에 요구했으나 아무런 자료도 받지 못했다. 최 의원실은 “KBS는 타 언론사들이 사고 당일 전원 구조 오보를 정정한 뒤에 또 다시 오보를 낸 언론사이기 때문에 반드시 오보 경위에 대한 확인이 필요한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료 제출을 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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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문창극’을 추천하고, 검증했나?
    문창극 강연을 보고도 반민족이라고 하면 제정신 아냐! “일제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다.”“우리 민족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다.” 상식 선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문창극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의 과거 망언들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낙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럴 경우 현 정부가 지명한 4명의 총리 가운데 3명이 국회인사청문회도 거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것이다.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전면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향후 정상적인 국정 운영이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용준, 안대희 이어 문창극까지.. 총리 후보자만 3번째 낙마 가능성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월, 첫 총리 후보자로 김용준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명했다. 그러나 당시 김 후보자는 가장 기본적인 인사검증 항목들인 부동산 투기와 아들의 병역 비리, 그리고 고액의 변호사 수임료 등과 관련해 문제가 드러나자 불과 닷새 만에 자진 사퇴했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로 정홍원 총리가 사퇴한 지 한 달 만인 지난달 말, 이른바 ‘관피아 척결’의 적임자라며 안대희 전 대검 중수부장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이번에도 전관예우에 따른 고액의 변호사 수임료 논란으로 엿새 만에 낙마했다. 청와대가 다시 2주 동안 절치부심 끝에 깜짝 카드로 내세운 총리 후보자는 중앙일보 주필 출신의 극우논객 문창극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불과 하루 만에 과거 극우 성향의 칼럼과 수준 미달의 대학 강의가 도마에 오른 데 이어 급기야 국민정서 상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과거의 망언 퍼레이드까지 언론에 공개됐다. 시민들은 어떻게 이런 인물이 총리가 될 수 있느냐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고, 야당은 즉각적인 지명 철회를 요구하면서 파장은 확산되고 있다. 여당도 부적격 여론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분위기여서 문창극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 절차도 밟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 박근혜 정부가 지명한 4명의 총리 후보자들. 왼쪽부터 김용준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정홍원 전 총리, 안대희 전 대검 중수부장, 문창극 현 총리 후보자. 멈추지 않는 고위 공직 후보자 낙마 사태.. “검증 시스템 있나?” 비단 총리 후보자 뿐만 아니라 현 정부 들어 고위 공직 후보자의 낙마 사태는 도무지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정부 출범 1년 3개월 동안 청문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하차한 고위공직자 후보는 두 명의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후보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 10명이 넘는다. 대다수가 부동산 투기와 세금 탈루, 자녀 병역 비리 등 전통적인 인사검증 항목들에서 논란을 빚었다. 대부분의 의혹은 지명된 지 불과 며칠 안에 언론에 의해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정작 더 많은 정보에 접근이 가능한 청와대에서는 이를 미리 걸러내지 못했던 것이다.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 무엇이 문제인가? 현 정부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 검증은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다. 비서실장이 인사위원장을 맡고, 국정기획수석과 민정수석, 정무수석이 당연직으로 참여한다. 검증 대상에 따라 경제수석이나 홍보수석, 미래전략수석 등 해당 분야 수석들이 참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나름대로 골격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과거 정부들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참여정부에선 청와대에 인사수석실, 이명박 정부에선 인사비서관실이 있었지만 현 정부에서는 전담 부서가 없이 참모들의 협의체 방식으로 인사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 현 정부와 과거 정부의 인사검증시스템 청와대 내에 인사 전담 부서가 없는데 따른 가장 큰 문제는 인재를 추천하고 검증하는 방식과 절차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과거 국민의 정부부터 참여정부까지는 행정부에 중앙인사위원회를 두고 10만 명 이상의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은 뒤 인사 수요가 발생할 경우 후보군을 추천해 청와대에 전달하는 구조가 존재했다. 특히 참여정부 때는 청와대에 인사수석실을 만들어 인재 후보군에 대한 추천 기능을 주고 민정수석실에서 검증 기능을 담당하는 방식으로 인사시스템을 2원화시켜 투명성을 높였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중앙인사위원회를 폐지하고 청와대 인사수석실을 인사비서관실로 축소시켜 인사검증 기구를 약화시켰다. 그 결과 이른바 ‘고소영 내각’으로 지칭되는 초기 인사 파동을 겪었고, 이후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개 항목의 후보자 개인별 체크리스트와 청와대 내부 사전 청문회 등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와 비교할 때 지금의 청와대 인사시스템은 사실상 참모진 몇 명에만 의존하고 있는 셈이어서 인재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는 대통령의 의중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로 돼 있다. 실제 인사철마다 청와대 내에서 “3배수로 보고가 됐는데 대통령 낙점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박 대통령 원로 가신그룹 ‘7인회’도 인사 관여 정황 현 정부의 연이은 인사 참극과 관련해 또 하나 눈 여겨 볼 대목은 박 대통령의 오랜 원로 가신그룹인 이른바 ‘7인회’의 존재다. 7인회는 김기춘, 김용갑, 강창희, 현영대, 김용환, 최병렬, 안병훈 등 박정희 독재 시절부터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온 군인, 정치인, 언론인 그룹이다. 그 수장격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현 정부의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만큼 이들이 인사 문제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구시대의 철학과 가치가 인재 발탁의 기준이 되고 있는 정황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박정희 기념재단 이사장과 이사라는 관계로 얽혀 있다. 이런 식으로 정상적 인사시스템 바깥에서 인사에 개입하는 일이 잦아질 경우, 기존의 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인사 실패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전관예우 문제가 안대희 후보자 경우에도 똑같이 재연된 점, 그리고 윤창중이라는 극우논객을 발탁했다가 실패하고도 또 다시 문창극을 택해 다시 파문을 키우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청와대 인사가 시스템 외부의 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박 대통령 ‘나홀로 인사’ 생각 바꿔 ‘국민 위한 인사’로 전환해야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낸 조창현 한양대 석좌교수는 대통령의 인사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표를 준 사람들 만이 아닌 전체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를 뽑기 위해 인사시스템을 가동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박 대통령이 시스템이 아닌 일부 참모와 원로 그룹에만 의존하는 ‘나홀로 인사’를 고집할 경우 인사 참극은 게속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금 청와대가 해야 할 일은 시대착오적이고 공허한 ‘국가개조’가 아니라 ‘인사검증시스템’의 개조라는 것이다.
    201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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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국무총리 자격 없어 항의
    본지는 문 후보자가 2011년 온누리교회에서 강연한 '기회의 나라를 만들어 주십시오' 영상을 찾아 내용 전체를 녹취했다. http://youtu.be/IJSS0MZnols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 국무총리 자격없어 항의] http://www.youtube.com/watch?v=IJSS0MZnols&feature=youtu.be 이하 강의전문.◇문창극 후보자=제가 이렇게 강단에 설 자격이 없다. 여기는 다 목사님이 서야 하고 하는데 저한테 전화가 왔다. (중략) 나라를 위해서 뭐를 기도해야 하느냐, 기도하는 제목을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다, 부탁을 받았다. 다음 주에 오대원 목사님이 오시는 걸로 아는데 제가 오대원 목사님이 오시는 길을… (중략) 나라를 위해서 왜 기도를 해야 하느냐. 우리는 각자 개인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지요.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를 한다. 왜 기도를 하느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알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해서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걸 우리가 깨달으면 우리가 그 뜻대로 살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나라라는 것은 뭡니까. 저는 비행기 어떤 때 타면 3등칸을 주로 타지만 가끔 어떤 기회가 있어서 2등칸을 타게 되면 또 굉장히 대우가 다르더라고요. 1등칸을 다르면 아마 더 대우가 달라지겠지요. 나라라는 것은 우리가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3등 나라에 3등칸에 있는 손님이 되고 1등칸에 타면 1등칸에 탄 승객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1등칸에 타면 서비스도 훨씬 좋고 편하고 얼마나 안락합니까. 우리가 1등의 나라를 만일 만든다면은 1등의 나라 안에서 저희들은 개개인의 삶의 고통과 개개인의 삶의 고민을 3등 나라보다는 우리가 덜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나라가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 나라가 복받은 나라가 돼야 한다는 기도를 우리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왜 한국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켜가지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무엇에 쓰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제일 먼저 기도의 방향이 될 것 같다. 그 뜻을 알아야지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겠나.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그런데 우리가 과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런 것을 어렴풋이나마 우리가 알 수 있을 겁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은 그럼 대한민국에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거를 저 나름대로 한 번 찾아보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우리는 1890년 그 때가 처음 선교사님들이 이 나라에 오신 때입니다. 1890년 그 이전에, 이조 말기, 고종 때, 그 이전에는 사실상 선교사님들이 아주 가끔 왔찌만 당시 조선에 상륙을 못했다. 배를 타고 있다 돌아가고, 쇄국정책 때문에. 1890년에 선교사님들이 오시게 되시면서 사실은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됐다. 189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가 어떻게 전개됐느냐 하는 것을 훑어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제목을 놓고 제가 생각을 해봤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나란가. 저는 가만히 돌이켜보면 고비고비 마다 구비구비 마다 하나님의 뜻의 분명히 있었다 라는 것을 저는 확인할 수 있었다.우리 민족한테 고난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려고 고난을 주신 것이다. 또 고난을 주신 다음에 또 하나님은 우리한테 길을 열어주셨어요. 매번 길을 열어주셨어요. 중요중요 고비마다. 그러면 길을 왜 열어주셨느냐,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이 민족을 써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라는 것은 지금까지 구비구비마다 시련과 도전을 받았지만 그것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됐다. 그 기회가 돼가지고 지금 이 나라가 왔다.먼저 조선말의 풍경을 하나 말씀드리겠다. 제가 책을 찾아가지고 조선말의 풍경에 대해서 한 두 가지만 먼저 알려드리겠다. 1832년에 영국 상선 암허스토호 배가 우리나라 몽금포, 저 황해도 서해에 왔다. 그 때 거기에 선교사가 동승을 했다. 이 사람은 독일 개신교 선교사였다. 1832년이까 순조 31년이다. 퀴츨 라프이다. 이 사람을 조선을 어떻게 봤냐. 자기가 북경에 가서 보고서를 냈는데, 조선에 대한 현실을 이렇게 썼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불결과 빈곤으로 자기 생애를 보내야 하는 끔찍한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피부는 어김없이 때로 덮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몇달씩 씻지 않아서 이 따위의 해충이 득실댔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해충을 잡아죽이는 짓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이 1832년이 선교사님이 우리나라 서해 몽금포에 와서 북경에 자기네 선교본부에 보고한 조선말의 상황이다.그 다음에 30년 뒤에 1874년에 달레 신부라는 분이 왔다.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이다. 한국에 와서 한국을 삭 보고나서 ‘꼬레의 교회 역사’, ‘코리아의 교회 역사’사를 썼다. 거기에 1874년의 조선의 상황을 제가 또 읽어드리겠다. 창고에 저장은 장부상에만 있다. 지방 병기고에는 쓸만한 탄약도 무기도 없다. 관리들이 다 팔아먹고 누더기 몇 조각과 고철 나부랭이를 대신 갖다 놨다. 아전과 수령은 그들 마음에만 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강탈한다. 백성은 하도 곤궁하여 서해안 사람은 밀수업자에게 어린 딸을 쌀 한 말에 팔고 있다. 길 마다 송장이 널려 있다. 이것이 1874년 달래신부?가 본 한국의 현상입니다.그다음에 1890년대에 또 한 분이 왔어요. 이 분이 비솝여사라고 영국 분인데 이 분은 책으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비솝 여사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다 샅샅이 들여다 봤어요. 이 사람은 부산에서부터 저 신의주, 강개? 넘어가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갔던 분이에요. 그래서 책을 한 권 냈는데 이 사람이 부산에 와 보니까 한국이라면서 나라가 어찌나 더러운지, 그 하수도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그런 나라고 자기가 놀란 것은 그 당시 일본인들이 거처하는 동래라고 있습니다. 부산 동래가 옛날에는 일본인들이 거기에 거처했었습니다. 동래를 가보니까 동래현에는 그렇게 깨끗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야, 일본은 이렇게 일본인 사는 지역은 이렇게 깨끗한데 어떻게 한국사람들이 사는 이 부산진?에는 이렇게 더러우냐 . 놀라서 썼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서울에 와서 서울구경을 또 했습니다. 서울도 얼마나 더러운지, 냄새가 풀풀 나서 다닐 수가 없는 정도로 서울이 그 당시 더러웠습니다. 그게 언제냐. 지금부터 100년 전 일입니다. 100년 전 한국이 그런 나라였습니다.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서 영월까지 갔어요. 영월까지 배를 타고 갔는데 그 당시 서양여자라는 건 보기가 힘들었잖아요. 중간중간 내려서 잠을 자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서양 여자귀신이 왔다 그래서 구경을 하려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빈대, 이같은 것 때문에 잘 수 없는 건 둘째 치고 동네 사람들이 문을 전부 다 구멍을 뚫어서 문을 보느라고, 다 보느라고 눈이 그러니까 창호지에 눈이 몇 십 개가 이렇게 있는 거죠. 사람이 하도 밀려서 그 문이 이렇게 완전히 방 안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이 사람이 한국여행을 했는데 양평을 갔습니다. 옛날에 군수가 있고 그랬는데. 거기 가서 아까 읽어드린 것처럼 그 군 사정을 알아봤는데 그 조그만 군에 이방 이런 것 있잖아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렇게 볼기치는. 이런 이방 사람들이 800명이나 있다는 거야. 이 조그만 군에 이방이 800명씩이나 되면 그 사람을 누가 다 먹여살립니까? 다 백성들이 먹여살리는 거야. 그 백성들이 집에 뭘 가지고 있는지 이방들은 다 안대요. 이 사람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 장 담그는 독이 몇 개. 아주 낱낱이 잘 알고 있대, 이방들이. 그리고 이방들이 그 집에 조금 뭐가 생기잖아요. 농사 열심히 지어서 뭐가 좀 생기면 그 이방이 부른다는 거야. 불러서 그냥 무조건 곤장을 치는 거예요. 곤장을 쳐, 왜 치느냐. 자기는 모르겠다는 거야, 왜 치는지. 그런데 이방이 하는 얘기가 네 죄는 네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네 죄는 네가 알렸단 말이야. 어떻게 이방이 아느냐, 네 죄는 네가 아니까 고해라, 그래서 곤장을 쳤습니다. 그러니까 집에 쌀이라도 한두 말 있으면 다 뺏긴다는 거야. 그러나 조선사람들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왜? 일을 하면 다 뺏기니까. 그러니까 게을러 지는 거야. 암만 노력해봐야 나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게을러 지는 거야. 세월은 가라, 이렇게 되어 있는 거야. 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 가보고 평양을 지나서 대동강을 따라 올라가보고 조선 상황은 똑같았습니다.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그 당시 연해주, 지금 소련(러시아) 있는 데죠. 블라디보스톡 갔는데 당시 거기에도 한국에서 이민간 사람들이 북간도, 연해주에 그 때 이민을 많이 갔거든요. 거기를 둘러봤어요. 조선사람들이 여기서는 어떻게 사냐. 그랬더니 연해주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 가보니까 깜짝 놀란거야. 조선에서는 그렇게 더럽고 그렇게 게으르고 그렇게 아주 그냥 하루 삼류민족,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조선민족이 연해주에 사는 조선민족은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 집을 반듯하게 짓고 거기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러시아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살고 훨씬 더 깨끗하게 산다 이거예요. 이야, 조선민족이 이런 민족이냐. 정말 놀랐다. 그러면 왜 연해주에 있는 조선인은 그렇고 조선에 있는 조선인은 그러느냐. 그게 뭐냐. 나라가 잘못해서 그렇다는 거야. 아까 말씀드렸듯이 나라가 백성이 뭐만 생기면 볼기를 쳐서 뺏으니까 일을 안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 나라를 떠나서 자기들끼리 모여사니까 그렇게 잘 사는 거야. 그래서 조선민족을 자기는 다시 봤다, 이런 얘기를 한 걸 제가 책을 읽었습니다.이것이 사실은 한국, 우리의 전신 조선의 말의 한국의 상황이었습니다. 조금 더 그 시절을 하면 1904년 고종이 그때 있었습니다. 민비도 그때, 민비는 죽었죠. 1895년에 을미사변인가요. 그걸 뭐라고 하죠. 민비시해사건, 우리가 민비를 지금은 무슨 굉장히 많이 높이잖아요. 민비에 대해서. 명성황후 이래가지고 오페라 같은 것도 있고 그러는데 그런데 그 당시 왕은 그럼 어땠느냐. 왕도 똑같았어요.그 당시에 윤치호라는 분이 일기를 쓴 게 있어요. 쭉. 그 사람은 스물 몇 살 때부터 죽을 때 까지 일기를 썼어요. 그게 우리 귀한 자료가 됐는데 그 사람은 전부 다 영어로 일기를 썼어, 그 당시에. 왜? 한국말로 쓰면 혹시 나중에 잘못되면 그것 가지고 누가 흉잡을까 봐 1890년대 영어로 전부 일기를 썼어요, 매일매일. 그런데 그 사람이 쓴 일기에 당시 고종과 민비에 대해서 한 얘기가 있어요. 얼마나 그 당시 왕궁에는 점쟁이, 무당, 내시, 이런 사람들만 버글버글 한 거예요. 1904년에 러일전쟁 일어나지 않습니까?러일전쟁 일어나면 자기가 왕이면 이거 나라가 어떻게 될 거냐, 조선은 이제 러시아에게 먹히는 거냐, 일본에게 먹히는 거냐 조선이 정신을 차려야겠다, 어디로 가야 되느냐 자기가 생각을 하고 당시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니까 기도는 안 하더라도 지도자로서, 왕으로서 자기가 진짜 뭘 해야 하는데 그 당시 얘기를 들어 보면 제물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포탄이 날아다니는데 황제는 점쟁이 말을 듣고 궁궐 기둥 밑에 큰 솥을 묻는 짓을 하느라 바쁘다. 이걸 이 사람이 일기에 쓴 거예요. 우리 고종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무능하고 그렇게 나약하고 그렇게 타락한 사람이었다, 이거예요. 민비라는 사람 똑같아요. 그 다음에 민비가 죽기 전에 이 사람 민비에 대해서 평을 하는데 영리하고 이기적인 이 여인은 미신을 섬기는 것의 반만큼 백성을 섬겼더라면 그녀의 왕실은 안전했을 것이다. 민비라는 사람도 백성을 섬기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없고 전부 다 미신 섬기는 것. 지금 덕수궁 자리, 그리고 경기여고 자리가 경운궁이었거든요. 러시아에서 아관파천을 하고 경운궁으로 옮겼어요, 고종이. 1907년 이때 쯤에. 그런데 그 옮길 때 그 즈음 1900년대의 덕수궁과 경운궁, 지금 시청 부근이죠. 시청 부근에는 그렇게 점쟁이와 무당이 들끓었대요. 왕이 점쟁이와 무당을 좋아하니까 점쟁이하고 무당만 있는 거야. 백성들은 그 사람들 먹여살리느라고 세금 내야 되고. 이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어요. 나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대신 뭐냐 있었느냐. 왕과 왕비, 세자만 안전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 이것이 민비의 자세였다, 이거예요.제가 책을 읽어보니까 그 당시 민비라는 사람 죽고 나서 또 고종이라는 또 엄비인가 그 사람들이 대신을 했는데 얼마나 나라에 대해서 무책임하느냐 하면 일본한테 나라를 팔아 먹어도 좋다. 일본이 우리를 합병해도 좋다. 단, 우리 왕실, 그러니까 이 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게 조건이었어요. 1910년 한일합방할 때의 가장 큰 조건, 이완용이 그 조건을 들고 일본하고 협상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거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이 나라가 없어 지는 거예요.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 지면 조선의 국왕이라는 것, 대신이라는 것 다 없어 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거야. 그리고 일본에게 나라, 조선을 너희들한테 바칠텐데 이 씨 왕조만 살려달라, 이 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러면 나라를 다 너희들한테 갖다 바치겠다. 그래서 갖다 바친거예요, 사실.그렇게 우리가 무능하고 그런 나라에서 100년 전, 이게 오래된 나라가 아니에요.100년 전에 그런 나라였어요. 이런 나라에 들어 온 게 뭐였느냐. 선교사를 통해서 우리 기독교가 들어 온 거야. 그 때 기독교가 들어 왔어요, 선교사를 통해서. 이승만 박사 전기 같은 것을 읽어보면 그런 게 잘 나타나 있어요.이승만 박사가 처음에는 이 사람은 그 당시 과거를 보려고 했어요. 과거를 보려다가 과거를 안 봤어요, 못 봤어. 과거를 안 보고 어렸을 때 눈병이 났는데 이 사람이 눈이 멀게 돼서 아무 것도 안 보여. 그래서 이승만 박사 그 어머니가 깜짝 놀랐어요. 이거 큰일났구나. 네가 외아들인데 네가 이렇게 눈이 벌면 봉사가 되겠구나. 그래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해보고 해도 안 낫는 거야. 그 이승만의 어머니가 큰일 난 거예요. 그런데 수소문을 해보니까 서양 선교사가 왔다는 거예요. 의사인데 그 양반, 그 분은 뭐든지 병을 잘 고친다더라. 그래서 이승만 데리고 서양 선교사에게 갔습니다. 의사에게. 그래서 서양선교사가 약을 발라주고 집에 가 있어 보라고. 그래서 가 봤어요. 며칠 지났어요. 어머니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승만이 이만한 애가 문을 열고 어머니, 내 엄마가 보여요.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네가 정말 내가 보이니? 네가 눈을 떴구나. 이승만 엄마가 그렇게 기뻐한 거야. 그래서 너무 너무 고마워서 이승만을 버리고 그 선교사에게 갔어요. 그냥 가지 않았잖아요. 그때 어머니 이런 분들 다 이렇게 계란 한 줄 이렇게 가지고 갔어요. 이승만 어머니도 계란 한 줄을 가지고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선교사에게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 눈을 이렇게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하고 선교사에게 갖다주니까 선교사가 그거 계란은 당신 아들 먹이세요. 당신 아들이 눈이 먼 건 영양부족 때문에 그런 거예요. 계란은 당신 아들 갖다 먹이세요. 그렇게 해서 계란을 안 받았어요.그때 이승만이 깜짝 놀란거예요. 이야, 서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저 선교사라는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이냐. 나는 과거를 봐서 썩어가는 나라를 고치려고 했는데 지금 과거볼 때가 아니구나. 이 선교사라는 건 뭐고 서양의 의술이라는 건 뭐냐. 완전히 머리가 180도달라졌어요. 그래서 과거를 다 때려치웠어요. 과거 공부도 때려치우고 이승만이 어디 들어 갔죠? 배제학당을 들어 갔어요. 배제학당 들어 가서 신학문을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무슨 독립협회니 이런 가입을 했잖아요. 그런데 23살 때 감옥에 들어 갔어요. 왜 들어 갔냐. 고종에 대한 반역죄, 이런 걸로 들어 갔는데 그래 가지고 1907년에 6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거예요. 그때 조선 은 이미 러일전쟁 일어났지 이미 조선은 일본에 먹히게 될 상황. 그래서 이 사람이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썼어요. 감옥에서 29살 때. 지금 읽어봐도 아주 뛰어난 책이야. 그러니까 이승만이라는 분은 굉장히 훌륭했던 분이었던 것 같아, 젊었을 때. 제가 지금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네가 쓰라고 해도 그것보다 못쓰겠어요. 29살 때, 100년 전 이승만이 그걸 썼어요. 썼는데 거기에 결론이 뭐였냐. 결론이 있어요. 그 결론이. 독립정신, 마지막 부분 결론입니다. 그걸 읽어드리겠습니다.세계 문명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회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그 결과로 일반 백성들까지도 높은 도덕수준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에서 일어나고 썩은 데에서 싹을 틔우고자 노력하는데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에 접할지 라도 그 목적을 못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나라를 한 마음으로 받들어 우리나라를 영국이나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건국 4237년 6월 23일. 이게 1904년에 쓴, 1904년에 이런 글을 쓴 거예요. 이 사람 결론이 뭐였느냐. 이승만이 20세 때의 결론이 이 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되어야 되겠다. 기독교 국가가 아니고서는 조선은 살아날 길이 없다. 이 사람이 결론을 내린 거예요. 결론을 그렇게 내렸어요. 이승만이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난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1910년에 합방이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 가지고 일본이 차지하게 됐죠.그런데 그때도 그러면 왜 그럼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셨으면 일본한테 합방하지 않게 하시지,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이렇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그런데 저는 아까 말씀,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36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마치 광야의 40년 생활을 하고서 우리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갈 수 있듯이 36년의 고난을 거치고 난 다음에 대한민국에게 독립을 허용하신 거예요.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 이거예요. 우리가 지금 와서 과거 일제가 우리한테 그게 뭐냐, 우리가 참 못난 민족이다, 이럴 필요가 전 없다고 봐. 그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핏속에서 하나의 고난이 영글어져서 지금 이것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고 애석하게, 지금 애석하긴 애석하지만 그것 때문에 상심될 필요는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들어 왔지만 기독교가 들어 온 반면, 그 500년 동안 내려왔던 조선의 못된 관습, 게으름, 이런 것은 일제 시대 때도 같이 기독교인들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고 이런 걸 하나의 모토로 삼았습니다.여러분들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도 계실 것 같은데 저는 어렸을 때, 요즘에는 찬송가에 그런 게 없어요. 찬송가, 그 당시 1930~40년 찬송가에 일하러 가세. 지금 우리 찬송가에 있습니까? 일하러 가세~ (노래 부름) 기독교가 뭡니까? 기독교가 우리 조선 민족들한테 너희들 일해야 한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근면해야 한다, 근면해야 한다. 그걸 깨우쳐 준거야. 스콜필드 박사라는 분이 선교사였는데, 일제 때.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하나님은 조선 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 개를 주셨다고. 아마 양반들이 옛날 청나라 사람처럼 손톱을 안 깎은 모양이에요. 우리나라 양반들이. 하나님은 조선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 개를 주시면서 너희들이 선택해라, 이렇게 하나님 말씀하셨다. 그런데 조선 민족은 애닳게도 나라를 선택하지 않고 긴손톱을 선택했다. 양반들이 얼마나 게으르고 민영익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비의 친척되죠. 일제 말에 굉장히 높은 벼슬도 하고. 이 사람은 일을, 물론 그때 양반들은 아무도 일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양반들이 일하는 것은 수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면 양반들은 뭐하느냐. 긴 담뱃대에다가 담배 피우고 그다음에 또 할 수 있는 건 뭡니까? 앉아가지고 독경, 독경이 아니고 감독? 같은 걸 합니다. 그것만 하느냐. 그러면 또 이렇게 하여튼 게으른 조선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거야. 그런 게으른 것을 우리 기독교 정신이 들어 와서 그걸 깨자고 한 것이 우리 기독교입니다.당시 일본에 유학을 많이 갔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돈 많은 사람들이 양반 자제겠죠. 일본 유학가서도 일을 하느냐. 일을 안 해. 조선 민족의 그 못된 관습 때문에. 일을 안 해. 일을 안 하고 뭐하느냐. 지금 제가 또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조선 지식인이 어떤 거였나, 그 당시. 조선 유학생 90%가 사회학, 철학, 정치학에 코를 묻고 있는데 그들의 게으른 혀를 굴리는 데에는 사회주의가 이상적일 것이다. 이거 윤치호 일기에 나온 거예요. 그 당시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일본 가서 유학했을 때 공학을 한다거나 의학을 한다거나 진짜로 우리가 이 나라가 비탄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려면 그런 게 필요한 것 아닙니까? 과학을 한다거나. 그런 것 아무 것도 안 하는 거야. 사회학, 철학, 정치학 그거 뭐냐. 다 혓바닥 놀려서 게으르게 먹고 살려고 한다 그거야. 그게 우리 조선사람들 엘리트들의 생각이었어요.윤보선이라는 대통령 아시죠. 그 사람이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을 나왔습니다. 문학을 했어요. 그 사람은 집이 백 칸이 넘는, 백칸짜리 집이에요. 안국동에. 그런데 이 사람이 부자니까 영국가서 뭘 했느냐. 문학을 했어. 문학을 했는데 그 때 문학을 하면서 집에 다가 학비를 보내시오. 내가 문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학비를 보내라고 했는데 800파운드, 그 당시 아마 한 학기하고 생활비하고 800파운드였던 모양이야. 아마 쌀이 100가마 이상 되겠죠. 그걸 이제 보내라고 한 거야. 그걸 보고 통탄을 하였네, 윤치호가. 아니, 그 비싼 돈을 들여서 그것도 영국 에든버러에 가서 문학을 하다니, 지금 우리나라가 당장 필요한 거는 나라를 부강시키고 어떻게 해서 든지 국권을 회복하고 이렇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문학을 네가 선택하냐, 꾸짖는 편지를 쓴 게 있어요. 우리나라 그 당시 지식인들이 라는 게 다 똑같았어요.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또 버전업을 시켰느냐 하면, 이 윤치호라는 사람은. 조선유학생들이 일하기가 싫다, 이거야. 앉아서 순 말로만 하는 것 좋아한다 이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아주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윤치호라는 사람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조선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딱 맞는 거다, 체질상. 왜 그러냐. 공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기 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살기를 조장한다. 이것이 유교를 가진 조선과 공통점이다. 그렇죠? 공산주의도 자기가 일하는 겁니까? 자기 일 안 하려고 하잖아. 정부가 세금 내라고 해서 세금 내서 나니까 어떻게 해서 든지 놀자고 하는 게 공산주의 아니에요? 사람이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자기 노력과 땀으로 일해야 하는데 돈 번 사람들은 다 우리 것을 착취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 것 뺏어서 우리가 먹자. 그게 아주 심플하게 얘기하면 그거 아니겠어요? 조선의 과거 조상들의 그 피에는 오히려 공산주의가 맞는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조금만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 달라 붙는 친인척들, 조선은 옛날부터 공산주의를 해왔다. 조선버전의 볼셰비즘, 공산주의죠. 공산주의는 강도짓을 무산자의 영광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그 이조 말기에 우리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로 놀고 먹는 게 아주 몸에 박혀 있었대요. 하여튼 이런 나라였어요.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님들이 와가지고 변화를 시킨 거야. 제가 국립민속관인가요? 경복궁에 있는 것. 거기에서 재작년에 무슨 사진전이 있었어요.사진전을 가봤는데 그게 뭐냐 하면 북간도에 명동이라는 데가 있었어요. 거기에 한 100 몇 명이 처음 가서 정치학을 했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학을 해서 자기들이 일궈 나갔느냐 하는 것을 그 후손이 사진을 전부 다 발견을 했어. 그래서 사진전을 연거야. 거기에 가보니까 그 당시 북간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정말 감명스럽더라고요. 이렇게 게으른 나라의 피를 타고 났는데 선교사님들, 거기에 목사님이 있었는데 김약연? 목사라는 분이 가족을 한 120명 5가구를 끌고 가서 거기에서 교회를 만들었어요. 명동교회를 만들고 명동학교를 만들고 명동유년주일학교를 만들고 명신여학교를 만들고. 사진전을 했는데 이렇게 아까 이가 득실거리고 냄새가 나니까 조선이었는데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요. 애들이 중고등학생들에게 전부 다 여학생들에게는 세라복을 입히고 실험실에는 전부 다 실험복을 입혀서 비커 이런 실험 기구들이 다 차 있고, 애들도 악패?를 만들어 가지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서 지휘복을 입혀서 교회를 지었는데 교회가 500명이 다니는 교회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거기에서 잘 살았어요.우리가 게으른 가운데 기독교를 개종을 하고 우리가 하나님 뜻에 맞게 살기로 작정한 다음에 이렇게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참 하나님이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조선 민족들에게 보여줬나 하는 걸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그렇게 해서 일제 시대가 지났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독립을 주셨어. 독립을 주셨으면 잘 살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36년을, 40년을 우리가 광야에서 방황을 했는데 잘 살아야 되는데 또 하나님은 시련을 주신 거야. 분단이야, 분단. 남북 분단을 만들게 해 주셨어. 그것도 지금 와서 보면 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봐요. 아까 얘기했죠. 조선 지식인들이라는 건 다 거의 공산주의 사상에 가깝게 있었어요. 만일 그때 통일한국을 주셨으면 한국은 공산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때. 자동적으로 공산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 당시 남한에 얼마나 많은 공산주의, 그러니까 조선노동당이 있었습니까?그 사람들이 나중에 다 여순반란 사건 같은 것 일으켰는데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 될 수 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 위에는 다 소련이고 그 옆에는 다 중공이고, 그러면 우리가 거기에서 견뎌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를 분단시켰어요. 분단시킨 이유가 뭐냐. 그때는 안타깝고 이게 뭐냐, 도대체. 우리는 독립을 얻었는데 독립도 못하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너희들은 내가 불쌍해서 독립을 시켜줬지만 앞으로도 너희들은 더 고난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어. 아직도 너희의 그 게으름, 죄 깨끗하게 안 된 거야. 분단을 시킨거예요. 분단을 시킨 것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우리한테 분단이 됐기 때문에 한국이 이렇게, 이 정도 살게 된 거예요. 만일 그때 공산주의가 됐으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지금 월남, 중국, 중국은 지금 몇 년 사이에 잘 살아졌지만. 지금 북한, 그게 우리 현실이에요. 남한이 그 당시 통일됐다면 지금 북한이 되어 있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놔둬 주신 게 아니야. 하나님은 너희들은 안 되겠다. 다시 고난을 더 가져라, 그래서 분단을 시켰어요.그것 뿐입니까? 6·25까지 만들어 주셨어요. 이 6·25까지 주신 거야. 우리 생각에는 이야, 하나님 참 너무 하다, 이럴 수가 있냐. 어떻게 6·25를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6·25가 저는 이렇게 얘기하면 지가 죽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6·25를 또 저렇게 미화한다는. 6·25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단련이 된 거예요, 6·25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그 당시 한국을 떠나려고 했어요. 1949년에 애치슨 라인이라는 걸 만들어서 미국은 방호책임을 한국에서 제외한다. 일본하고 대만까지 만 미국이 방호책임을 진다. 그리고 1949년에 여기 남한에 있던 미군들은 다 철수 했어요. 철수하고 나니까 1950년 북쪽에서 쳐들어 온 거예요. 소련과 중국을 지원을 받아가지고. 그러면 그때 6·25 전쟁이라는 건 6·25전쟁이 그렇게 났으면 우리는 소련이나 중공 밑에서 그 후원을 받은 북한에 우리 다 지금 다 흡수되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안 되겠다, 너희들 붙잡아야겠다. 너희들 어떻게 붙잡느냐. 미국을 못 가게 만들어 주겠다. 하나님이 미국을 우리 딱 붙잡아 주셨어요. 미국이 6·25 사변이 끝나면서 우리하고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상호안보조약을 맺었어. 그건 뭐냐. 우리나라가 침략을 당하면 미국이 침략을 당한 것처럼 도와주고 미국이 침략을 당하면 우리가 침략 당한 것처럼 또 미국을 도와준다. 우리가 무슨 미국을 도와줄 힘이 있습니까? 괜히 미국에 조약을 맺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 그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까지 그 조약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살고 있는 거예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지금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한국에 미군이 없는 한국을 한 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반미, 제가 친미를 하자는 게 아니야. 미군이 없는 한국은 금방, 옛날에는 소련 밑에 가 있는 거고 지금은 중국 밑에 가 있는 거예요. 중국의 속국이 될 수 밖에 없어. 이미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거의 되어 있지 않습니까? 6·25를 왜 주셨느냐.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하나님이 또, 돌아보면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주신 거야.그다음에 경제발전 했습니다. 경제발전했는데 경제발전 누가 시켰습니까? 우리 힘으로 했습니까? 물론 우리가 새마을 운동도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뭐하고 다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했습니다. 진짜 하루에 3교대씩 밤을 새워가면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해서 상품을 만드는 게 다 어디갔습니까? 그 당시 신발, 앨범, 흑백TV 이런 것 다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것 다 어디서 사줬죠? 미국에서 사준 거야. 우리 경제개발의 가장 뿌리는 뭐냐, 미국에서 사줬기 때문에. 우리 경제개발도 사실 미국의 덕이 굉장히 컸습니다.저는 이런 얘기는 우리가 친미를 하자는 게 아니야.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으려면 경제도 부강해야 되고 이런 게 골고루 다 있어야 돼. 그런데 그거 있는데에 하나님의 뜻이 지금 돌아보니까 다 이해가 될 만 하더라 하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때 1960년대에서부터 70년부터 우리는 공업화를 했잖아요. 그런데 공업화를 했던 가장 큰 힘이 뭡니까? 일본의 기술력이야.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기술을 다하고 일본이 우리보다 앞장섰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본만 따라 가면 되는 거야. 박정희나 삼성이나 다 일본 따라서, 현대자동차 다 일본 따라서 우리가 이만큼 컸습니다.일본이 우리는 지금 우습게 보지만 우리 일본 사람들 특히 우습게 보죠. 쪽빠리들 이렇게 생각했지만 일본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거야. 또 하나, 중국. 그냥 지금은 중국이 달라졌지만 우리가 막 경제발전을 할 때 중국은 뭐했습니까? 중국은 문화혁명을 했어요. 모택동 밑에서. 문화혁명이라는 게 뭡니까? 그 공산주의 젊은 애들이 다 내쫓는 것 아닙니까? 윗 사람들 다 내쫓고 다 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한 20년을 중국이 문화혁명으로 경제고 뭐고 다 내팽개쳤어요. 우리가 그 사이에, 20년 사이에 우리는 올라섰어요. 어느 단계까지 올라섰어요. 그러니까 깜짝 놀라고 중국이 1980년부터 지금 등소평이 와서 이런 개혁개방이다 해가 지고 지금 세계의 G2나라가 된 것 아닙니까?그러면 안보가 필요할 때 하나님은 미국을 우리한테 주셨고 경제가 필요할 때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우리나라를 있게 해 주시고 이런 게 그냥 보통 생각하면 다 역사가 그런 거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이게 당연하게 이렇게 온 우리의 역사라 이거예요. 지금 제가 걱정되는 거는 이제 중국이 옛날 중국이 아니잖아요. G2가 됐어요. G2가 뭡니까? 세계에서 두 번째 강대국이야. 우리는 평생 미국이 제일 큰 나라고 제일 잘 사는 나라인줄 알았는데 앞으로 2015년, 많이 남지 않았어요. 4년 뒤에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강대국이 된다. 아니, 강대국보다 제일 생산을 많이 하는 경제제1의 국가가 된다 이거예요. 물론 인구가 많으니까 개별 소득을 따지면 미국이 앞서지만 전체 생산량으로 보면 중국이 1위예요. 그러면 지금 까지는 미국이 1위였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1위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게 2015년이에요. 그러면 2015년 이후에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게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계속 있으니까 잘 봐주겠지,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중국이 어떻게 방향을 바꾸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에 아주 막대한 영향 준다 이거예요. 이것도 우리가 잘 해결을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입니다.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중국이 G2로 올라선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에 나는 또 하나님이 뜻이 저는 있다고 봐요. 그건 뭐냐. 과거에는 세상의 축이 어디였느냐 하면 대서양이었어요. 미국과 구라파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일본, 중국, 한국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가는 거예요. 중국이 1위 국가가 되지, 일본이 3위나 4위 국가지. 한국이 7~8위 국가지. 그러면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권이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거는 또 뭐냐. 거기에 또 우리 한국이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가야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지정학적인 것이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우리가 지금 시간이 없는데, 이렇게 역사를 제가 훑어보면서 중국을 우리가 한편으로는 우리 물건을 수출해야 하니까 중국이 우리하고 친해져야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은 아직 공산주의를 채택하고 있잖아요. 또 북한하고 가깝잖아요. 그러니까 중국의 영향에 따라서 우리는 통일이 되고 통일이 안 되고 그럴 가능성도 굉장히 많아졌어요. 그러니까 중국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로 우리한테 됐어요. 그러니까 중국을 하나님께서 터치하셔야 된다. 중국을 어떻게 터치할 거냐. 그것은 우리가 아직 모르겠어요. 중국에 지금 1억명이 기독교 신자가 있다고 해요. 그래서 나라에서 인정하는 기독교 말고 그건 교회를 세우게는 하거든요. 그건 나라가 다 감시하는 거고 처속? 교회까지 합쳐서 1억명이라고 하는데 중국이 앞으로 하나님의 터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공산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무슨 협상을 통해서 이렇게 망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안 망해. 하나님이 터치가 되어야 해.그건 뭐냐 하면 동부에서도 다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폴란드가 제일 먼저 변했는데 폴란드를 제일 먼저 변하게 한 건 누구입니까? 그 당시 바오로 2세입니다. 바오로2세가 거기에 가서 설교를 하고 했기 때문에 그때 터치가 되어서 폴란드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소련이 왜 붕괴를 했습니까? 소련이 그냥 붕괴한 게 아니에요. 레이건 회고록에 보면 레이건이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레이건은 소련을 무슨 핵무기 개발 경제를 서로 덜해서 소련을 개방하고 이래서는 소련이 변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터치를 해야 한다. 레이건이 아주 믿음이 좋았던 사람인 것 같아요. 겉으로는 무슨 영화배우라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경시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 한다. 그 하나님의 터치를 어떻게 만들거냐. 고르바초프를 개종을 시켜야겠다. 고르바초프가 교회 나오도록, 하나님 믿도록 만들어야겠다. 그래 가지고 정상회담을 하는데 1985년 한 4차례를 만났는데 그때 비밀이죠. 두 사람만 있을 때 레이건이 고르바초프한테 전도를 했어요. 너, 하나님 믿어야 한다. 너 나보고 헤어질 때는 God bless you 이러더라 이거야, 고르바초프가. 너 God bless you라고 얘기하지 않았냐. 너 하나님 믿어라, 하나님이 계시다. 내 아들이 있는데 내 아들은 지금 하나님 안 믿는다. 나는 내 아들이 꼭 하나님 믿기를 바란다. 그러나 걔한테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뭐냐, 좋은 식당에 데려가서 우리 아들한테 좋은 음식을 먹이겠다. 그러면 잘 먹을 것 아니에요? 그리고 나서 아들한테 묻겠다. 얘야, 이 음식이 어디에서 만들어 졌는데 네 앞에 와 있니. 그러면 글쎄요, 그거 주방에서 만드는 것 아니에요. 그렇게 얘기할 것 아니냐. 그러면 너는 누가 만들었냐. 너 여기 와 있는데 누가 만들었냐. 하나님이 만든 거예요, 하나님. 고르바초프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세요. 직접 정상회담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를 했어요.카터 대통령이 1978년에 한국에 와서 박정희 대통령한테 하나님 믿으라고 전도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하여튼 공산주의라는 것은 그렇게 우리가 뭐 협상을 통해서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남북통일이 되고 이런 것 없어요. 그런 것 일어날 수가 없어. 지금 남북을 분단시킨 이유가 다 있어. 왜냐, 하나님은 통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걸 우리 민족한테 다시 한 번 보여주려고 한다이거야. 분명히 보여주실 거예요. 그것은 우리가 뭐 남북회담해서 개방정책을 써가지고 그렇게 안 돼. 분명히 10년 내에 하나님의 터치가 온다 이거예요. 그때 한국민족이 아, 이게 뜻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제가 왜 이 기회의 나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우리나라 기도를 하느냐 하면 우리나라가 보통 나라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한테 매 순간 매 순간 기회를 주셨어요. 지금은 어떤 기회를 주셨습니까? 모든 나라가 한국으로 다 오려고 해요, 아시아에서. 우리도 아시아 전도대회에 나가지 않습니까? 아시아에서 베트남, 캄보디아, 모든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합니다. 한국의 예술, 체육, 문화, IT 기술 그거 다 배우려고 해, 다 오려고 해. 그 사람들 생각에 한국은 기회의 나라라는 거예요. 옛날에 우리가 미국을 보고서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했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기회의 나라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터치가 있는 그런 축복받은 청교도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지금 까지 복을 받아서 제일의 국가가 되었지만 지금 미국이 점점점점 쇠퇴해, 왜 쇠퇴하는 겁니까? 미국은 왜 쇠퇴합니까? 사이클이 있는 거예요, 사이클.그 사이클은 우리 인간 잘못으로 있는 거야. 가난하고 어렵고 이럴 때는 열심히 노력해. 절약해. 그러면 가난한 고난 있다가 절약하고 열심히 하다가 그러면 돈이 생겨, 부유해져, 번성해. 그러면 그 다음에 뭐가 생깁니까? 그 다음에 퇴폐, 퇴폐로 가는 거야. 그건 인간사가 똑같은 거야. 모든 세계역사는 똑같은 거예요. 번성하고 잘 살게 되면 그 다음 사이클이 뭐냐. 그 다음에는 자기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고 부패해지고 이기주의가 번성하고 이렇게 되는 거야. 그 다음 단계는 뭡니까? 몰락이야. 그다음에 몰락이 되는 거야. 이 사이클이야. 하나님은 우리 한테도 이런 사이클을 주실지 몰라요.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지, 이 사이클을 막을 수 있는 거야. 이 사이클을 막는 것은 하나님 뜻을 따라서 우리가 살아야 된다, 이거지. 기회의 나라를 달라는 건 뭐냐. 만들어 달라는 건. 미국 선조들이 처음 미국에 올라갔을 때 청교도들이 원하는 건 뭐냐 미국이라는 나라를 저 언덕 위에 빛나는 집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환한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교도들이 기도한 것 아닙니까?그런데 미국이 점점점점 쇠퇴해서 G2의 국가가 됐어요. 앞으로 G3가 될지도 몰라. 미국 기독기독교가 점점점, 유럽은 이미 끝났어요. 이제 그다음에 미국 차례야. 미국도 끝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몰라. 그러면 그다음에 하나님이 누구를 써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쓸 사람이 있어야 돼. 하나님이 쓸 사람은 전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해요. 왜? 이건 제가 괜히 우리가 우리 민족이 잘났고 뭐 이런 걸 부추기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요.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선교사가 왔어요. 임진왜란 때 일본 소서행장?을 따라서 선교사가 이미 조선에 왔어요, 일본에 있던 선교사가.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200년, 300년 앞서서 선교사가 왔는데 일본은 하나 님의 나라가 안 됐어. 중국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선교사가 왔어요. 그런데 중국도 하나님 나라가 안 됐어. 한국이 유일하게 그래도 지금 천 만 교인이라고 하는데 천 만 교인을 지금 가지고 있는 거야. 참된 신자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님 나라로 지금 되어 있는 거예요.아까 동북아 시대가 열렸다, 여기가 중심이다 할 때 하나님은 아, 한국을 써야 되겠구나. 한국을 다음 세계의 중심국가, 세계의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뜻이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그런데 우리가 다음 주에 우리 오대원 목사님이 와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하는데 나라를 위한 기도 뭘 해야겠습니까? 나라를 위한 기도. 시간이 없어서 제가 간략하게 하고 그만하겠습니다. 아까 사이클이 있다고 했죠.흥망성쇠, 번영, 퇴락, 부패 이거 다 이어 진다고 했죠. 우리가 이 사이클을 끊어야 돼. 이 사이클을 끊을 힘은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 성령님 밖에 없어. 그 사이클을 끊어야 돼, 우리 스스로가. 그래서 이 나라를 다시 성령님으로 도덕의 나라, 개혁의 나라로 다시 정신적으로 우리가 다시 바꿔야 된다, 이거야. 그게 우리의 첫째 기도가 되어야 해.요즈음 왜 자살이 많습니까? 왜 꺼떡한 하면 대통령부터 다 죽습니까? 장관 지낸 사람들. 나라가 벌써 부패해 진거예요. 정신이 썩어진 거야, 벌써. 이러면 이 나라는 고꾸라 지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정신, 이 나라의 정신을 살려주십시오. 이 나라에 성령이 임해서 정신의 부흥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게 제일 첫째입니다. 둘째는 뭐냐. 우리가 개혁, 지금 정신개혁에 따라 오는 건 뭐냐. 지금 이 시국, 이 나라가 너무 분열이 되어 있어요. 너무 분열이 되어 있어.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그것은 잘 살게 된 데에도 큰 원인이 있어요. 그것은 또 있는 사람들의 그 원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열이 된 이 나라가 다시 통합이 되어야 해요. 지금 갈등에 쌓여있는 이 나라가 다시 화합을 해야 돼요. 그게 우리나라 굉장히 중요해요. 그것 없으면 이 나라는 이제 쓰러질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분열, 이런 것이 이 나라에서 떠나가게 해 주십시오. 두 번째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세 번째 기도가 있습니다. 세 번째 기도는 북한에 대한 기도입니다. 아까 북한이 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지, 북한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제 통일원? 사람들을 몇 사람 만나봤는데 이 사람들 예측은 2020년까지 북한에 분명히 변화가 일어나서 자기들 보기에는 통일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2020년까지 우리 통일이 온다 이거예요. 그건 하나님 터치가 있을 때 통일이 오는 거예요. 그때까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야 돼요. 지금 못 먹고 있는 북한 애들을 위해서 우리가 또 도와줄 것 있으면 도와줘야 돼요. 지난 번에 목사님도 그런 말씀하셨죠. 왜? 애들은 못먹이면 뇌가 상해요. 3~4살까지 뇌가 100% 발달을 하는데 그때 영양부족이 되면 평생을 애들이 IQ가 낮은 저능아가 되는 거예요. 북한애들이 다 저능아가 되면 나중에 통일되면 우리가 어떻게 다 먹여살리겠습니까? 우리가 북한을 도와줄 것은 식량이나 의약품이나 영양가 있는 것 이건 도와줘야 돼요. 도와주면서 북한이 하나님의 터치가 있기를 기도해야 된다. 세 번째는 북한에 대해서 기도.네 번째, 중국의 민주화, 중국의 자유화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해요. 그 필요는 아까 말씀드렸죠. 중국이 우리한테 굉장히 중요한 나라가 됐어요. 지금 식으로 가면 조선반도, 이 한반도가 어떻게 될지 몰라. 중국에 자유화, 민주화가 있고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져야 해.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지면 우리나라 통일은 자연히 되고 중국의 민주화도 자연히 이루어지니 겁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그걸 놓고 중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다섯 번째, 제일 중요한 거예요. 우리 좋은 지도자를 좀 주십시오, 좋은 지도자. 이거 중요한 시점인데 저는 미국의 파운딩 파더들, 조지워싱턴, 제퍼슨, 존 아담스, 해밀튼, 1976년 미국이 독립을 차지했을 때의 그 미국의 무수하게 좋은 지도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이 독립이 가능했던 거예요. 그 사람들은 그 당시 월급을 안 받으려고 했어. 나라일을 하는데 월급을 받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안 받으려고 했던 사람들이에요. 미국의 파운딩 파더들은, 그런 사람들이야. 링컨은 너무나 잘 아니까 말할 필요가 없죠.링컨은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다기도하면서 했어. 링컨의 명 연설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링컨이 공부 못 한 사람이에요. 켄터키 옛집에서 책 이렇게 해서 그 사람 학교도 못 가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그렇게 명연설을 합니까?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세우겠다. 그런 명 연설을 어떻게 합니까? 이 사람은 자기가 중요한 연설이 있을 때는 요즈음 우리나라는 다 밑의 사람이 써오잖아요. 자기는 그거 안 해요. 안 하고 성경책 하나, 미국 헌법 하나 딱 두 개만 들고 자기가 혼자 멀리 백악관을 떠나서 혼자 갑니다. 가서 성경을 읽으면서 미국 헌법을 읽으면서 내가 이 백성들한테 미국 시민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야 되겠나 일주일 동안 기도하면서 연설문을 썼어요. 그래서 링컨의 연설문이 그렇게 명 연설문이 된 거예요. 우리 지도자들이 저는 그런 지도자가 좀 나와야 된다. 지도자가 중요해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지도자에 너무나 기근이 들렸어요. 우리가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우리가 과거 미국 파운딩 파더 같은 그런 지도자들 우리한테 주십시오. 그런 정치지도자를 주셔서 이 나라를 좀 살리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마지막으로 제가 기도, 마지막 할 것은 우리 크리스찬들이에요. 한국이 천 만이에요. 그런데 이 크리스찬이 지금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걸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돼요. 며칠 전에 임요한이라고 연대 세브란스 병원 교수인데 선교사 아드님이신데 어느 신문에 기고를 했더라고요. 거기에 그런 얘기가 있어요. 만일 지금 한국 교회에 예수님이 며칠 목욕을 안 하고 또 허름한 넝마를 거치고 한국교회에 들어 설 때 한국교회에서 그거 받아줄 교회가 한국교회에 어디 있느냐, 있겠느냐 하고 기도를 했어요. 우리가 이거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우리 크리스찬들이 먼저 각성을 해야 돼요. 다른 사람 손가락질 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각성해야 돼요. 영국이 그렇게 한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된 건 뭡니까? 그리고 영국은 망했죠. 이유가 윌보 포스너? 그리고 감리교 했던 누구죠? 그런 분 존 웨슬러, 요한 웨슬러나 이분들의 성령운동?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당시 영국에서 영국 상인들이 세계에서 제일 정직했다 이거야. 제일 정직하니까 영국 상인들은 다 믿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왜 영국상인들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 당시 윌보 포스너 이런 사람들이 개혁운동을 했기 때문에, 크리스찬 개혁운동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찬이 개혁운동에 앞장서야 해요. 준비한 건 많았지만 시간이 되어서 나중에 기회있으면 개인적으로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여튼 크리스찬이 먼저 정신차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어요.우리나라 옛날에 80불 하던 소득이 아프리카 기니? 하고 같은 80불의 나라였어요. 불과 50년 전에. 그런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 주신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괜히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까? 미국이 기회의 나라가 됐듯이 우리나라도 기회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소망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수요 여성 예배, 이렇게 또 주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주님, 저희들 이 나라를 향해서 주님의 뜻을 지금 생각해 봤습니다. 주님, 저희 우리 크리스찬들이 각성하게 먼저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생활을 돌아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를 축복하셔서 이 나라 사람들이 고통당하지 않고 가난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가 앞으로 세계 복음화와 세계 선교화의 주축이 되는 나라, 미국을 다음 이어 가는 나라가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옵소서. 온라인 중앙일보
    201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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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려줘, 무서워, 다 잘 될 수 있잖아
    뉴스타파가 유승우 의원의 공천 헌금 수수 의혹과 관련된 음성 녹취 파일을 입수했다. 녹취 파일에는 유 의원의 부인이 공천 대상자로부터 돈을 받았다가 돌려준 정황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녹취 파일은 지난 4월 8일, 유승우 의원과 부인 최모 씨, 이천 시장 예비후보 박연하 씨와 그녀의 전 남편, 박연하 씨의 보좌관 역할을 하는 강 모씨 등이 유 의원의 집에 모여 나눈 대화 등을 녹음한 것이다. 새누리당 경기도 공천심사위원장인 유승우 의원의 부인이 경기도 이천 시장 공천과 관련해 1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유 의원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한 바 있다. 녹취 내용에 따르면 4월 8일 모임에서 박연하 씨는 “(이천 시장 후보) 경선이라도 하게 해달라.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지만 유승우 의원은 “내가 결정권이 없다.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전략 공천이라서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박연하 씨의 전 남편은 자신들이 1억 원을 줬음을 유 의원에게 상기시키며 “나머지 4억이든 5억이든 정치자금 마련할 테니 이 사람(박연하)을 경선을 시켜주던지 공천을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 의원의 부인은 집 안에서 돈을 가져와 박연하 씨에게 가져가라고 말했다. 유 의원의 부인은 이 자리에서 처음 돈을 받을 때 돌려주려 했다고 주장했다. 박연하 씨 측은 지난 3월말 경기도 광주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유 의원의 부인에게 이천시장 후보 공천명목으로 현금 1억 원을 전달했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후보가 전략 공천될 것이 확실해지자 4월 8일 유 의원을 집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유 의원의 집에서 소란이 일어난 지 약 한 달 뒤, 박연하 씨는 새누리당 이천시의원 비례대표 1번으로 공천됐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또 다른 녹취 파일에는 유승우 의원의 부인이 박연하 씨의 보좌관 역할을 하는 강 씨와의 통화에서 “살려줘. 무서워. 다 잘 될 수 있잖아.”라고 말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수원지검 여주지청은 새누리당 유승우 의원에게 1억 원의 공천 헌금을 제공한 혐의로 박연하 씨와 보좌관 강 씨를 구속했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27일, 박연하 씨를 즉각 제명했지만 유승우 의원에게는 탈당을 권고하면서 10일간의 유예 기간을 줬다. 이 와중에도 유승우 의원은 결백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당원을 비롯한 이천 시민들에게 보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뉴스타파는 유 의원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번 연락을 하고 찾아갔지만 직접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201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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