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등장한 ‘재택(在宅) 변호사’와 ‘반(半)고용 변호사’는 신 법조시대의 많은 청년 변호사들이 개업 초창기에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신 풍속으로 자리잡을 태세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전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직후부터 시련을 겪는다.
변호사법은 소양 있는 변호사를 배출해 국민의 신뢰를 제고한다는 취지로 신규 변호사들에게 법무부가 지정한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6개월 간 의무적으로 실무수습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대다수 변호사들은 일을 가르쳐줄 법률사무종사기관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가까스로 법률사무종사기관을 찾았더라도 제대로 된 실무수습교육을 받기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실무교육이 사실상 형해화됐다”며 시급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올 초 지방의 한 로스쿨을 수료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후 지난 4월부터 서울의 소형 법률사무소에서 사후 채용을 조건으로 실무수습교육을 받고 있는 A변호사는 요즘 잠을 설치고 있다. 6개월의 실무수습교육기간이 한 달 후에 종료되지만 아직까지 회사가 채용 여부를 확정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A변호사는 “완전 채용을 기대해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면서 매일 새벽 제일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지만, 이제는 기약 없는 회사의 태도에 지칠 대로 지쳐 버렸다”고 말했다.
그나마 A변호사는 나은 편이다. 로스쿨 동기생인 B변호사는 법률사무종사기관을 구하지 못하다가 지난 6월부터 지방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무급으로 실무수습교육을 받고 있다. 당분간 변호사 채용 계획이 없는 사무소였지만 실무교육이라도 받게 해달라고 사정해 간신히 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무장이 주는 사건 문서를 읽고 검토 의견서를 써보는 게 고작이었다. B변호사는 “요즘에는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취업준비를 하는 것이 일과”라고 말했다.
상당수 수습 변호사들은 법률사무종사기관에서 법률사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률상 법률사무종사기관의 등록 조건인 수습 변호사들을 위한 교육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지 않은 곳도 허다하다는 것이 수습 변호사들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수습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법률사무종사기관을 찾느니 차라리 대한변호사협회가 개최하는 집체연수교육을 받는 게 낫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전담 변호사 없어 기록 읽고 의견서 써 보는게 고작
“사법연수원 등서 일괄 관리 시스템 도입”에 설득력
각 로스쿨마다 마련된 리걸클리닉 활용방안도 제시
수습 변호사들도 실무교육에 대한 열의가 한풀 꺾인 상태다. 일부 수습 변호사들은 친분 있는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 형식적으로 법률사무종사를 등록해놓고 취업활동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지방의 한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 있는 한 수습 변호사는 “오전에 출근하면 사무장이 던져주는 서류들을 하루 종일 검토하는 것이 일과의 전부일 때가 많다”며 “의욕을 가지고 실무교육을 받는 동료들도 많지만 상당수는 하루 빨리 6개월이 지나기만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률사무종사기관의 수습 변호사 교육을 관리·감독해야 할 법무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처럼 실무수습교육을 개별 법률사무종사기관에만 맡기지 말고 사법연수원 등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의 로스쿨 수료생들은 신사법시험에 합격하면 1년 동안 우리의 사법연수원에 해당하는 사법연수소에서 일괄적으로 실무수습교육을 받아야 한다. 변호사들은 일본처럼 사법연수원에서 변호사 실무수습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된 후 사법연수원의 새로운 활용 방안으로 거론하고 있다.
실무수습교육을 다원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독일은 변호사시험 1차시험에 합격한 후 2년 간 민·형사법원과 검찰청, 행정관청 등에서 각각 3개월 동안 실무교육을 받은 후, 변호사 사무실에서 9개월 동안 실무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사무변호사와 법정변호사를 나눠 사무변호사는 2년 간 사무변호사협회가 인증한 수습기관에서 실무교육을 받아야 하며, 법정변호사는 6개월 동안 지도 변호사 밑에서 소송서류 작성과 변론준비를 도운 후 6개월 동안 지도 변호사의 허락을 얻어 자신의 명의로 간단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
각 로스쿨에 마련된 리걸클리닉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리걸클리닉에 실무교육을 담당할 경력 5년 이상의 변호사를 배치해 법무부에 법률사무종사기관으로 등록한 후 자기 학교 출신 수습 변호사들을 교육하자는 것이다. 리걸클리닉의 공익 변론활동을 통해 수습 변호사들의 실무교육을 진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로스쿨 재학생들에게도 선배 변호사들과 공익 변론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방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법무부에 법률사무종사기관으로 등록된 로스쿨 리걸클리닉은 서울대와 이화여대, 강원대 로스쿨 등 3곳에 불과하다.
임순현 기자 hyun@law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