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법관제 정착을 위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인사 개혁으로 법관 인사의 기본 틀이 바뀌고 있다. 법원장 사퇴로 인한 고등부장 대규모 승진과 경향(京鄕) 교류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사표를 내는 고등부장 이상 고위법관들도 줄어 지방법원 부장판사들의 고등부장 승진 규모도 덩달아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전관예우 금지법으로 인해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들은 고법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더라도 사표를 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기존의 사퇴-승진-경향 교류로 이어지는 인사 패턴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지난 해 법원장 5명과 고법부장 4명이 사표를 낸 것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 이는 대법원장 교체와 대법관 2명 임명 이후 법원장 인사가 거의 없어 사퇴 규모가 클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는 것이다. 지난 2005년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부터 2006년 2월 법관정기인사 때까지 사표를 낸 법원장과 고법부장판사는 14명에 이른다.
이처럼 고위법관의 사퇴 폭이 크게 줄어든 것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 후 평생법관제 정착을 위해 법원장들의 사표를 만류하면서부터 예상됐다. 전관예우 금지법의 시행과 변호사업계의 불황도 사퇴가 줄어든 원인으로 꼽힌다.
고위직 사퇴 예상보다 적어
이에 따라 이번 인사에서는 기존 법원장에게도 순환보직제를 적용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순환보직제는 법원장 임기제와 함께 평생법관제 정착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대법원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는 9일 법원장 임기를 2년으로 하는 임기제와 임기를 마친 법원장이 재판 업무에 복귀하는 순환보직제 도입에 관한 건의문을 채택했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현직 법원장에게는 2월을 기준으로 재직 기간을 따져 임기 및 보직 순환에 차이를 둘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을 뿐 소급 적용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기존 법원장들을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면 제도 도입의 의미가 없다”며 “현 1~2년차 법원장들에 대한 적용을 1년 유예하는 취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신설 가정법원은 규모가 지원급이라 초임 고등부장이 임명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고법부장 승진 크게 줄 듯
이번 인사에서는 당초 지난해 고법부장 승진에서 빠진 18기와 19기 선두그룹이 고법부장에 승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보통 17~18자리 정도 규모였던 과거와 달리 승진 규모가 적어서 19기들은 승진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지난 2008년에도 16기 부장판사들이 고등부장으로 승진하지 못한 예가 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19기 부장들 가운데 유력한 승진 대상자들은 대부분 법원행정처 출신”이라며 “지역과 학교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행정처 출신만으로 인선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더해 올 하반기 대법관과 헌재재판관 임명도 변수다. 7월 대법관 4명, 9월 헌재재판관 4명이 교체되는데, 이 가운데 검찰 출신을 제외한 대법관 3명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헌법재판관 2명 등 모두 5명이 고위법관으로 충원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19기 승진인사는 하반기로 미뤄질 수도 있다.
‘배석’ 근무기간 더 길어져
배석판사 근무기간이 길어지는 데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과거에는 군법무관을 하고 법원에 들어와 1년만에 배석을 마쳤지만 요즈음은 7년 넘게 하는 경우도 봤다”며 “예전에는 퇴직자가 많고 법관 정원이 순증했기 때문에 인사적체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고등배석 자리도 고법판사 비율이 높아지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배석판사가 100자리인 서울고법의 경우 지난해 20명, 올해 20명의 지방법원 부장판사급 고법판사가 배치되면, 남은 배석판사 자리는 60여자리에 불과하다. 28기와 29기를 절반 정도로 구성한다고 가정할 때, 올해 처음 고법 배석판사로 오는 29기는 불과 30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그래도 29기는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겠지만 30기는 일부밖에 고법 배석판사 경험을 못할 것”이라며 “이제는 지방법원 단독판사에서 바로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질 것”라고 전망했다.
이환춘 기자 hanslee@law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