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판사들 "상대평가제 폐지…평정항목 재검토해야"
'가카의 빅엿' 등의 표현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한 서기호(42·사법연수원 29기)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대법원은 10일 재임기간이 10년 또는 20년이 된 판사 113명에 대한 연임인사를 판사들의 임용일자에 따라 오는 18일과 다음 달 1일자로 단행했다. 하지만 서 판사의 이름은 인사명단에서 빠졌다. 이로써 서 판사는 17일 임기가 만료되면 법원을 떠나야 한다.
서 판사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날 서 판사에게 '연임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을 통지했다. 대법원은 통지서에서 "귀하에 대한 10년 동안의 근무성적평정결과 및 법관인사위원회의 연임적격에 관한 심의결과 등을 종합해, 귀하가 법원조직법 제45조의2 2항 제2호의 사유에 해당함이 인정되므로 연임발령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는 바, 법관인사규칙 제20조 제2항에 의해 이를 통지합니다"라고 밝혔다.
서 판사는 재임용 탈락을 통보받자 코트넷에 글을 올려 "대법원이 보낸 재임용 탈락 공문에는 연임발령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말만 있을 뿐 제가 법원게시판과 법관인사위원회에 제출한 방대한 소명자료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도 기재돼 있지 않았다"며 "당사자의 소명, 해명에는 전혀 답변조차 없는 법원의 태도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서 판사는 또 "대한민국 판사가 철저한 비공개 원칙으로 10년 동안의 근무평정이 어떻게 매겨지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지내다 갑작스레 단 2주 동안의 형식적인 심사절차를 거쳐, 그것도 명단도 공개되지 않은 인사위원들로부터 심의를 받고서 재임용에서 탈락됐다"며 "헌법상 신분보장된 판사에서 10년 계약직 직원으로 전락한 이 순간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픔을 절실히 공감한다"고 밝혔다.
서 판사는 "일단 임기 만료일인 17일까지 법관 생활을 잘 마무리하는 데 힘을 쏟겠다"며 "향후 거취 등은 많은 분들을 만나 의견을 나눈 후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방침을 포함해 정식으로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 소식이 알려지자 이옥형(42·〃27기) 서울고법 판사는 10일 코트넷에 글을 올려 "이제 판사들은 법원장으로부터 근무평정을 좋게 받지 못하면 판사직을 그만 둬야 한다는 냉엄한 현실을 목격했다"며 "사법행정은 재판작용을 지원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말일 뿐이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근무평정을 무기로 재판작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지원(38·〃29기) 수원지법 판사도 8일 "근무평정과 재임용 심사제도가 사법권의 독립을 해치는 방향으로 행사돼서는 안 된다"며 "근무평정제도를 연임심사를 위한 근무성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대평가제(비율을 정해 상·중·하로 평가하는 것)를 폐지해야 하고 근무평정 항목도 재검토해야 하며 열람권과 이의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판사와 유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다.
일부 판사들의 동요가 감지되자 차한성 법원행정처장은 같은 날 코트넷에 글을 올려 "법관 평정제도는 법원장의 전인격적인 판단 아래 엄정하게 시행돼 왔고 법관 연임 심사 역시 법관의 신분과 독립의 철저한 보장이란 이념 아래 이뤄져 왔다"며 "그 결과 연임 부적격 판단을 받은 법관은 그동안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올해도 종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예년과 같이 극소수의 법관만이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 "개정 법원조직법에 따라 근무평정 및 연임 심사 제도도 합리적으로 정비해 나갈 것"이라며 "법관에게 부여된 사명을 다하기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