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국회가 시작된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만난 민주통합당 우윤근(55·사법연수원 22기)의원의 첫 인상은 차분하고 점잖은 말투와 행동으로 ‘신사’를 연상하게 했다.
지난 2년간 국회 법제사법위 위원장으로서 법사위를 물리적 충돌 없이 이끈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의회주의자로 알려진 그의 내면은 아주 단단했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자신과 상대방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 소통과 상생이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그의 모습은 히말라야를 오르는 패기 넘치는 산악인의 면모로 다가왔다. 정치와 법조개혁을 위해 한발씩 나아가는 모습은 등산을 이끄는 세르파(sherpa)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는 “법은 통치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사회적 약자들이 법의 이름으로 보호받고 권리를 찾을 때 비로소 진정한 법치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17,18대에 이어 3선에 성공한 그의 인생사를 들어봤다.
“국회에서 가장 중요하기도 하고 또 그만큼 여야 간 충돌이 심한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타협하고 소통하는 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위원장으로서 정파적 이해관계에 휩쓸리지 않고 매사를 합리적이고 중립적으로 처리하려고 노력한 것을 다들 좋게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민주통합당의 우윤근 의원이 제18대 국회 후반기에 2년간 법사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여야는 단 한차례도 물리적으로 충돌하지 않았다. 그가 대화와 타협을 중요시하는 ‘의회주의자’라고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다. “18대에는 사법개혁 등 중요한 법안이 많아 여야 대립이 심했어요. 위원장인 제가 같은 민주당 입장에서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죠.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 합리적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게 결국 민주당에 도움이 되는 길이니까요.” 우 의원은 18대 국회 전반기 2년은 법사위 간사로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법안과 힘들었던 법안을 묻자 곧바로 사법개혁을 꼽았다. “법원, 검찰, 변호사 관련 법 개정안이 꽤 많이 통과됐어요. 특히 판사가 되려면 10년 이상의 법조 경력이 필요하게 됐죠. 그저 공부 잘해서 연수원 성적만으로 법원에 가는 관례를 깼다는 점에서 놀라운 것이에요. 평생법관제 정책을 위해 법관의 정년을 63세에서 65세 등으로 연장한 것과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판·검사로 퇴직한 후 1년간 관련 사건을 맡지 못하게 한 것도 잘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데 검찰 쪽 개혁을 많이 못해 아쉬워요. 국민들의 기대에 많이 못미친 게 사실이죠. 형사소송법 개정이 검·경 갈등으로 번진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18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된 ‘거창 사건 관련자의 배상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대해 많이 아쉬워했다. ‘거창사건’은 6·25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우리 국군이 공비토벌을 이유로 경상남도 거창의 주민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그 법은 제가 17대에 이어 18대 국회에서도 발의했는데 작년 12월 28일 여야 법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음에도 기획재정부 등이 예산 상의 이유로 반대해 본회의에 상정도 못하고 폐기됐어요.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한 몇 안되는 사건인데 반대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고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것입니다. 19대 국회에서 다시 법안을 제출할 계획입니다.” 법사위원장으로서 소회를 묻자 선후배 의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공을 넘겼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러웠지만 한편으로 위원장으로서 제가 국민을 위해 소임을 다했는가 생각해 보면 부족한 게 많지요. 부족한 사람이 대과(大過)없이 법사위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입니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정치에 뛰어든 계기를 들어봤다. “변호사를 하다보면 사건을 통해 현실 문제와 많이 부딪히게 돼요. 국민이 새로운 정치를 갈망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2003년 당시 ‘정치개혁을 위한 신당 태동’소식이 알려졌어요. 그때 저도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게 됐지요. 어머니의 영향도 컸어요.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항상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보라’고 말씀하셨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그러신 거겠지만 힘든 선거운동 와중에 제게 큰 격려와 힘이 됐습니다.” 중진 의원으로서 정치적 비전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남들이 안 알아줘서 그렇지 중진이 되기 전부터 확고한 비전이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나라는 권력이 ‘제왕적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되다 보니 여당은 대통령의 거수기 노릇을, 야당은 발목잡기로 일관하며 국회가 투쟁의 장으로 전락해버렸어요. 국회가 국민에게 신뢰받고 국회의원들도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하려면 ‘한 단계 높은 의회주의’로 나가야합니다. 제가 쓴 책(한국정치와 새로운 헌법질서, 한국 민주주의)에도 밝혔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주어진 권한을 국민의 대표인 국회로 가져오자는 생각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방안은 독일식 의원 내각제에요. 외교나 국방 같은 대외정치는 대통령에게, 내정은 총리에게 맡기되 의원내각제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내각불신임 남용을 극복하기 위해 의회가 내각을 불신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회에서 수상을 선출하는 ‘건설적 불신임제’를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어느덧 한시간 반이 지났다. 잠깐 쉬는 시간을 이용해 의원실을 둘러봤다. 법사위원장실에서 의원회관으로 옮겨 아직 짐 정리가 채 안됐지만 빼곡히 쌓여있는 책들이 그의 독서량을 가늠케 했다. 소개해줄 책이 있냐고 묻자 ‘익명의 알콜 중독자 모임’의 인생지침서 ‘불완전함의 영성’을 꼽았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인간의 가장 비극적인 실수는 시작된다.’ 이 책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고 상대방의 불완전함에 대해 이해할 때 비로소 소통과 상생이 시작된다는 내용이지요. 정치를 하면서 나만 옳다고 싸우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내가 못하다는 걸 깨우치고 상대방에게 한 발 다가가는 사람이 진정한 정치인이라고 봅니다.” 법조인이 된 계기를 묻자 공부가 싫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대학교 입학시험도 떨어져 법률가가 되긴 틀렸구나 하고 생각하고 군대를 갔죠. 군대 말년에 전남대 법대에 입사원서를 넣어 다행히 합격했지만 제대하고 나니 전남대가 ‘5·18 운동’의 진앙지가 되어버렸어요. 대학 생활은 데모로 점철돼 고시 공부를 할 수 없었고 대학원에 들어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 서너번의 낙방 끝에 운좋게 합격했습니다.” 후배 법조인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사법연수원과 로스쿨을 나온 능력있고 훌륭한 후배들이 취업란을 겪고 있어 많이 안타까워요. 시행령을 통해 준법지원인 숫자가 대폭 줄어들었는데 준법지원인제도만 제대로 됐어도 1000여명의 취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 새내기들은 이런 상황에도 충분히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예를 들어 공익적 법무법인이라든지 국회 입법조사관, 정부나 기업의 해외 주재관 법률자문 등이 요즘 법조계의 블루오션이 아닐까요. 법률적 소양을 갖추고 어디서든 열심히 일한다면 잠시 힘들어도 꼭 인정받을 것입니다.” 우 의원의 별명은 ‘여의도 산 사나이’다. 산을 좋아해서 히말라야를 두 차례 등반했다. 그는 히말라야 등반 중에 먹은 빵 한조각과 믹스 커피가 자신이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높은 산을 오르다 보면 육체적 고통을 통해서 정신이 맑아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제 마음 속의 욕망과 인간 관계에서 불거진 갈등 등이 자연 속에서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죠. 1999년 6월 지인으로부터 히말라야 등반을 제안받았어요. 변호사 일도 뒤로한 채 무작정 등반 길에 올랐죠. 히말라야 등반은 어릴 적 저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올해로 정치 9년차가 됐는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조만간 다시 찾아볼까 생각 중이에요”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그의 인생 목표를 들을 수 있었다. “두가지 목표가 있어요. 하나는 ‘정치인 우윤근’으로서 소통하고 상생하는 의회주의자로 모든 사람의 기억에 남고 싶어요. 의회주의를 구현하고 싶은 꿈이기도 하고, 그게 영예로운 길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성경에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 걱정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 세상의 근심 걱정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돈·명예보다 진정으로 반성하고 회개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인간 우윤근’으로서의 최종 목표지요.” <글=차지윤 기자, 사진=홍세미 기자> | |
차지윤 기자 charge@lawtime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