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朴 원고패소와 강압인정 오인한 듯"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21일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법원 판결을 인용한 대목을 두고 또 논란이 일고 있다.
박 후보가 지난달 1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혁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에서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고 발언한 이후 엄청난 논란이 일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법원 판결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부일장학회가 5·16장학회를 거쳐 정수장학회로 바뀌는 과정에 대한 강압성을 묻는 질문에 "법원이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발언이 `정수장학회 헌납 과정에 강압이 없었다'고 단정한 것처럼 해석되자 기자회견 말미에 발언을 정정했다.
박 후보는 "제가 아까 강압이 없었다고 얘기했나요. (그렇다면) 제가 잘못 말한 것 같다"면서 "법원에서 `강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패소판결을 내린 걸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법원 판결 내용은 = 박 후보가 언급한 판결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염원섭 부장판사)가 지난 2월24일 고(故) 김지태씨 유족이 정수장학회(당시 5·16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 청구소송에 관한 것이다.
당시 재판부가 `유족의 청구를 기각한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은 박 후보의 말처럼 사실이다.
그러나 재판부의 판결 이유와 박 후보의 언급 내용은 상반된다.
재판부는 "김씨가 국가의 강압에 의해 5·16장학회에 주식을 증여하겠다고 의사표시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당시 중앙정보부(중정) 부산지부장이 연행된 김씨 회사 직원들에게 권총을 차고 접근해 `군이 목숨 걸고 혁명을 했으니 국민 재산은 우리 것'이라고 겁을 준 점 ▲중정 부산지부 수사과장이 김씨 측근에게 `살고 싶으면 재산을 헌납하라'고 강요한 점 ▲군 검찰이 일본에서 귀국한 김씨를 관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가 기부승낙서에 날인하자 공소를 취소한 점을 들었다.
다만, 강압사실을 근거로 해서 정수장학회를 넘긴 의사표시가 `원천무효'인지, `취소사유'에만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해 법원이 또 한 번 판단을 내린다.
법원은 상대에게 해악이 미칠 수 있음을 알려 공포를 느끼게 하는 정도의 강박은 의사표시의 취소사유가 될 뿐이라고 봤다.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를 전제로 한 원천무효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취소권의 행사시효'를 따졌다. 강박 의사표시의 취소권은 그 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날 때까지 행사해야 하는데, 정수장학회 증여가 이뤄진 1962년 6월20일부터 10년 넘도록 이를 행사하지 않은 탓에 제척기간이 지나면서 취소권이 소멸됐다는 게 원고 패소의 이유였다.
◇판결 내용 중 `강압인정·원고패소' 오인한 듯 = 법원 안팎에서는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소송이 원고패소로 끝났다는 점 때문에 법원이 마치 강압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잘못 받아들인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법원의 한 관계자는 "주식증여 의사표시의 취소 사유가 될 만한 강압이 있었지만 취소권 행사의 제척기간이 경과했기 때문에 원고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결 내용을 `강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회견에서 자신의 발언을 `정정'하면서도 판결 내용을 정확하게 바로 잡지 못한 것도 애초 판결의 취지를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후보가 지난달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두 개의 판결' 발언을 했을 때도 법조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라는 반응과 함께 박 후보가 1차 인혁당 사건과 2차 인혁당 사건(인혁당 재건위)을 혼동해 발언한 것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두 차례에 걸친 박 후보의 판결 관련 발언이 `역사 인식' 논란과 관련해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