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지법 소년부 천종호 판사 "법원의 '회복적 사법'활동 절실"
"교육현장도 법원의 화해권고와 비슷한 제도 도입 필요"
(창원=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학교폭력으로 파괴된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합의'라는 형식의 사과와 금전배상을 넘어 가해자의 진정어린 사죄와 피해자의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창원지법 소년부 천종호(47) 판사는 학교와 사회가 학교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폭력으로 인해 파괴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를 되돌려놓는 법원의 '회복적 사법' 활동이 절실하다고 8일 강조했다.
폭력을 사용한 가해학생들은 징계나 형사처벌을 받으면 그만이지만 피해학생은 다른 학생들로부터도 '집단 따돌림'이라는 2차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회복적 사법활동에 기초한 법원의 '화해권고' 제도로 가해학생이 자신의 범죄를 진정으로 뉘우치고, 피해학생은 가해학생을 용서한 대표적인 사례로 2011년 초 경남 창원시에서 발생한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을 꼽았다.
지난해 1월, 여중생 4명과 여중생들의 남자친구 5명 등 9명이 같은 학교 여학생 A양을 야산으로 끌고가 2시간30분 동안 집단 폭행했다.
A양이 여중생 2명에 대해 "나쁜 소문을 내고 다닌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머지 학생들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재미 삼아 폭행에 가담했다.
여학생들은 A양의 가슴을 발로 차거나 씹던 껌을 A양 머리에 붙여 짓이겼다.
남학생은 라이터로 A양의 머리카락을 태우거나 담뱃불로 바람막이 점퍼를 지졌다.
가해 학생들은 언덕 위에서 A양을 걷어차 데굴데굴 구르게 한 뒤 '원위치' 시키거나, 얼굴과 머리 등을 마구 때려 한달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처를 입혔다.
마지막으로 A양이 갖고 있던 6천800원까지 빼앗아갔다.
검찰이 이 사건을 창원지법 소년부로 넘기면서 가해학생들은 법정에 서게 됐다.
천 판사는 이들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해학생과의 관계를 회복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전문상담기관인 경남아동청소년상담교육센터에 보냈다.
가해 학생들과 A양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없다면 A양이 학교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해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3개월동안 센터에서 상담을 받았다.
이들은 처음에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A양이 겪는 고통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들도 "합의가 안되면 돈을 공탁하면 되는데 무슨 상담이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전문상담요원들과의 상담이 진행될 갈수록 가해학생들은 피해학생과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을 이해하게 됐다.
상담이 끝날 즈음 가해학생들은 A양의 부모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다.
그 부모들도 A양의 부모를 껴안으며 "미안하고 죄송하다"며 거듭 사죄했다.
상담이 끝나고 9월에는 가해학생들에 대한 심리가 열렸다.
천 판사는 상담 기간 가해학생들이 A양과 그 부모에게 쓴 편지를 읽게 했다.
그리고 법정에 꿇어앉아 A양과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용서를 빌게 했다.
천 판사는 가해학생 전원에게 죄를 묻지 않는 불처분 결정을 내렸다.
천 판사는 8일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 대한민국의 미래요 자원이다"며 "학교 현장에서도 전문상담요원을 둬서 가해자와 피해자로부터 진정어린 사과와 용서를 이끌어내는 법원의 화해권고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 판사는 2010년 2월부터 창원지법에서 소년사건을 맡고 있으며 범죄에 빠진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가정'역할을 하는 '청소년회복센터'(사법형 그룹홈)를 전국 최초로 만드는 등 소년 선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천 판사의 이런 시도는 지난해 4월 전국 소년부 판사회의에서 발표된 뒤 대한민국 사법정책을 수립하는 법원행정처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