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 끌고와 꿈자람카드로 음식 사가는 걸 보면…"
"다 큰 어른 혼자서 음식을 먹고는 결식아동용 카드를 내미는 경우가 있어요. 대놓고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돈을 안 받을 수도 없으니 난감하죠."
결식아동을 위한 전자급식카드인 '꿈자람카드'를 성인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제도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결식아동 카드가 어른용 체크카드?' = 25일 오전 춘천시 낙원동의 한 도시락 전문점.
가게 유리문 한쪽에 '꿈자람 카드 제휴 가맹점'임을 알리는 손바닥만 한 노란 꽃문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인근 초ㆍ중ㆍ고등학교가 모두 겨울방학에 들어가 한산한 모습이지만, 학교급식이 끊기면서 꿈자람카드 이용자는 일주일에 40여 명 정도로 더 늘었다.
이상한 것은 이 카드를 이용하는 손님 10명 중 9명 정도가 어린이나 청소년이 아닌 성인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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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식아동 위한 '꿈자람카드'
- (춘천=연합뉴스) 곽경신 인턴기자 = 강원도 내 춘천, 속초, 원주 등 3곳은 종이상품권 대신 전자급식카드로 결식아동의 식사를 지원한다. 2013년 기준으로 도내에 전자급식카드 대상 아동은 7천800여명이다. 사진은 춘천시에서 발급되는 꿈자람 카드. << 지방기사 참조 >> 2013.1.27 rae@yna.co.kr
사장 J(36)씨는 "어른들이 꿈자람카드를 내밀면서 애들 갖다 줄 거 사러 왔다고 하면 찜찜하지만, 손님들을 상대로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꿈자람카드는 보호자가 끼니를 제대로 챙겨주기 힘든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한 부모 가정 등의 18세 미만 초ㆍ중ㆍ고등학생에게 주어지는 전자급식카드로 1일 구매한도가 지역별로 8천 원~1만 원이다.
낱개로 된 기존의 종이상품권이 분실ㆍ파손되는 일이 잦은데다 대상자에게 '결식아동'이라는 낙인감을 준다는 지적에 따라 서울을 비롯한 경기, 강원, 충남, 충북 등 전국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로 확대되는 추세다.
도내에서는 지난 2010년을 전후로 춘천, 속초, 원주 등 3곳이 종이상품권에서 전자급식카드로 전환했다.
2013년 기준으로 도내에 전자급식카드 대상 아동은 7천800여명. 해당 지자체에 투입된 예산은 총 57억 3천여 만원에 이른다.
그러나 보호자인 어른이 대신 소지하고 있거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아동센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아동 급식카드는 해당 아동만 사용해야 한다'는 식의 사용 주체에 대한 제한이 명확히 없어 제재도 할 수 없다.
춘천시 후평2동 A지역아동센터의 한 관계자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잘 모르니까 되레 자랑을 하기도 하는데, 중학생만 돼도 창피해서 카드를 안 쓴다"면서 "사정이 그렇다 보니 부모가 대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소득검증 제대로 안돼…엉뚱한 가정 혜택도 =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전자급식카드 발급 대상자 선정 시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엉뚱한 가정에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2013년도 4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는 약 154만 6천399원. 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하의 소득가정이면 전자급식카드 혜택 대상이 될 수 있다.
행정적인 요건만 충족시키면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신청할 수 있는데, 소득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는 직종에 종사하는 경우에는 실질적 빈곤층이 아님에도 전자급식카드를 발급받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가맹점 관계자들에 의하면 저소득층이 아닌 가정에서 전자급식카드를 끼니용이 아닌 외식용으로 '편법' 사용하기도 한다.
춘천시 교동의 한 치킨집 직원은 "학부모로 보이는 어른이 자녀들의 카드를 여러 장 모아서 가져와 1만 5천 원 상당의 치킨을 포장해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춘천시 후평동의 한 분식집 직원도 "사정도 넉넉해 보이는 분들이 자가용을 끌고 와서 가게 앞에 대놓고 꿈자람카드로 음식을 사가는 걸 보면 기가 찬다"면서 "제도가 어떻게 돼 돌아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속초시의 경우는 대상자가 아니거나 카드 사용 명세가 없어 뒤늦게 카드 사용을 중단시킨 가정이 올해에만 40여 가정에 달한다.
속초시의 한 관계자는 "복지부에서 만든 지침 자체가 느슨해 급식지원 대상이 지나치게 확대돼 있다"면서 "대상자가 너무 많다 보니 지역 내 1천700명에 달하는 혜택 가정을 일일이 방문해 현황을 조사를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향란(52) 한국아동정책연구소 소장은 "카드 사용주체가 뒤바뀌는 문제는 제도 도입 초기부터 논란이 돼왔다"며 "지자체가 혜택 가정을 방문해 면밀한 실태조사를 벌이고 대상자에게는 카드 사용에 대한 교육을, 가맹점 업주들에게는 서비스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해 계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