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88년 9월 주부 변모 씨가 귀갓길에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강간범의 혀를 잘랐다가 '과잉방어'로 구속됐다. 법원의 1심 판결문에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의 혀를 잘라'라는 표현이 적혀 있었다.
남씨는 한 여성단체의 6개월에 걸친 적극적인 구명 운동으로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고, 변씨는 사건을 여론화한 이 단체의 노력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변씨 사건은 이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로 제작돼 대종상을 받았다.
당시 개념도 생소했던 가정폭력과 성폭력 위기에 처한 여성의 정당한 자기 방어를 처음으로 주장했던 것은 다름 아닌 '한국여성의전화'(이하 여성의전화)였다.
이처럼 한국 여성 인권 운동과 역사를 같이해 온 여성의전화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1983년 6월11일 창립한 여성의전화는 현재 전국 25개 지부와 회원 1만 명으로 이뤄진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인권단체다.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폭력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상식이며 이상이다"로 시작하는 창립취지문처럼 여성의전화는 그동안 아내폭력, 성폭력, 성매매 등 여성 폭력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창립 첫해인 1983년 일상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각종 폭력 현상을 '성폭력'(Gender violence)로 개념화했고, 1987년 3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매 맞는 아내를 위한 피난처 '쉼터'를 개소했다.
1985년 KBS 시청료 징수 비리를 제기한 징수원을 폭행한 사건에 대해 끈질기게 항의하고 시청료 거부 운동을 벌였다. 결국 1986년 2월 KBS의 공식 사과를 받아낸 여성의전화는 직장 내 여성차별·성폭력 상담을 위한 별도 고발창구도 개설했다.
여성의전화는 3대 인권법(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 성매매방지법) 제정에도 중요한 견인차 구실을 했다.
1991년에는 성폭력관련법 공청회를 열어 법 제정의 필요성을 공식 제기했다. 1994년 가정폭력방지법 추진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부부 사이에는 성폭력이 발생할 수 없다는 통념에 맞서는 '아내 강간'이라는 용어도 사용했다. 여성의전화는 2000년 토론회를 열고 아내 강간도 성폭력범주에 포함할 것을 처음으로 주장했으나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과정에서 이 조항이 삭제되면서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여성의 정당한 재산권 확보 등을 위해 1999년 부부 재산 공동 명의 캠페인을 시작했고 법정 부부재산제도를 '부부공동재산제'로 바꾸는 민법개정안을 제출했다.
이런 노력으로 최대 30%에 머물던 여성에 대한 재산 분할은 50%까지 증가했다.
5월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11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 행사를 여는 등 캠페인을 벌였고, 2006년 이후에는 여성인권영화제, 공익광고 제작 등에도 주력했다.
2009년에는 몽골, 필리핀,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와 '여성 폭력 근절을 위한 아시아여성네트워크'를 공식 출범하고 데이트폭력 실태조사를 벌이는 등 연대의 폭을 넓혀 왔다.
이런 공로로 대통령상과 시민인권상, 시민운동대상을 받기도 했다.
여성의전화는 오는 6월11일 전·현직 활동가와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대회를 열고 창립 30주년을 축하할 예정이다.
여성의전화 관계자는 3일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그동안의 여성 인권 활동과 상담 통계 등을 정리하고 내달께 온라인상에 기념사이트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30주년 역사와 여성인권의 쟁점을 담은 도서 발간, 기념 영상 제작, 별칭 공모·로고 리뉴얼 사업 등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