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의료 NGO '메디피스'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하는 난민 또는 난민 신청자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병은 우울증으로 나타났다.
이는 메디피스가 인권위의 협력사업으로 작년 2∼11월 국내 난민 등 111명을 설문하고 15명을 심층면접한 '건강권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우울증이 18.9%로 가장 많은 가운데, 고혈압(14.4%), 천식(4.5%), 빈혈과 당뇨(3.6%), 폐결핵과 암(1.8%) 등이 뒤를 이었다.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병원에 간다는 사람은 39.7%,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소를 이용한다는 경우는 21.5%였다. 약국에서 약을 사거나 친구·지인에게 도움을 구한다는 사람이 각각 16.5%, 9.9%였다. 나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경우도 5.8%였다.
입국 후 병·의원, 보건소 등에서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52.3%, 약국 이용 경험이 있는 사람은 55.9%였다.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은 비정부기구(NGO)나 종교단체가 29.4%, 본국 출신의 친구들이 22.7%, 가족·친척 16%였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스스로 해결한다는 비율도 10.1%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 중 정신적인 문제로 상담받은 경험이 있는 이는 4.5%에 불과했다.
심층면접 결과를 보면, 응답자 대부분은 스트레스와 불안장애를 호소하고 있었다. 상당수는 본국의 박해과정에서 겪은 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었고, 자살 생각을 하거나 시도한 경험도 있었다.
파키스탄에서 온 A씨는 "우울증이 있고 아내는 부인과질환으로 호르몬 치료가 필요하지만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나는 누구지? 한국에 왜 왔지?'라고 생각하다 보면 화가 났고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토고에서 온 B씨는 무비자 상태로, 천식을 앓고 있으면서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더니 정보부족 탓에 '잘 모른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들은 NGO의 도움을 통한 의료지원을 제외하고는 국내 의료제도에 대한 정보가 없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병원 이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메디피스 신상문 총장은 "난민들은 병을 앓아도 과거 경험에 비춰 '이 정도 아픈 건 당연하다'거나 '이 정도쯤이야'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며 "이는 의료정보 부족까지 맞물려 병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 총장은 "난민들의 의료기관 접근성을 정비하고, 특히 1차 질환에 대한 정보 제공을 강화함으로써 일상적인 의료혜택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