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당시 우리 나이로 스무 살에 불과했던 이경모 선생의 흑백사진들에는 광복에 들뜬 시민, 독립기념 아치, 미군들의 모습 등 시대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1989년 출간된 그의 사진집 '격동기의 현장'에 수록된 해방 경축 시가행진 장면.
광복 이틀 뒤인 1945년 8월17일 광양경찰서 앞에서 찍은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에서 일부 시민은 일장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있다.
1945년 목포역 앞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한국 기록사진의 대부 이경모(1926~2001) 선생이 광복 후 모습을 찍은 사진. 이 선생의 사진집에 실린 이 사진에는 목포역 앞 독립 기념 조형물과 당시 어린이의 모습이 담겨 있다. 2011.8.14 <<지방기사 참고.영광군 김창완씨 제공>> sangwon700@yna.co.kr |
이 선생의 사진을 연구한 논문으로 동신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영광군청 김창완(43ㆍ기능 8급)씨는 이해하기 힘든 이 광경에 대한 해석을 내놓았다.
김씨는 "이 선생은 생전에 '물자가 귀해 일장기의 붉은 원 아랫부분을 먹으로 칠해 태극 문양으로 만들고는 했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같은 해 9월 목포역 앞에 세워진 독립기념 아치 사진에서는 지금 감각에 비춰보면 다소 우스꽝스러운 대형 신랑ㆍ신부 조형물을 까까머리 어린이가 고개를 들어 쳐다보고 있다.
옆에서 자신의 절반만 한 몸집의 아기를 등에 업은 어린이의 모습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기록사진 대부가 찍은 광복후 모습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 한국 기록사진의 대부 이경모(1926~2001) 선생이 광복 후 모습을 찍은 사진. 이 선생의 사진집에 실린 미군들이 인력거를 타고 줄지어 가는 모습. 2011.8.14 <<지방기사 참고.영광군 김창완씨 제공>> sangwon700@yna.co.kr |
이 선생은 광복 후 미군들이 줄지어 인력거를 타고 가거나 한국인 거리화가가 미국 장교의 초상화를 그리는 모습도 앵글에 담았다.
김창완씨는 "이 선생의 사진은 국내 사진사에 큰 가치를 갖고 있지만, 그동안 방치됐던 게 사실"이라며 "생전 자료의 수집ㆍ정리 등 작업을 통해 그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양 출신인 이 선생은 노산(鷺山) 이은상 선생의 도움으로 광주일보의 전신인 호남신문사에서 사진 기자의 세계로 뛰어들어 여순반란사건, 6ㆍ25 등 역사의 현장을 누볐다.
그는 한국 사진협회 이사, 한국 사진대전 심사위원장을 지냈으며 1992년 화관문화훈장과 1997년 금호예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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