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1월 모교인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그가 오는 29일로 교단을 떠난다. 65세로 정년퇴직하는 것이다.
주말인 11일 낮 여의도 최 교수 자택 인근 한 중국음식점에서는 그가 길러낸 제자를 중심으로 60명가량이 참석한 비교적 조촐한 정년퇴임식이 열렸다. 으레 이런 자리에 보이는 가족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헤드테이블에는 최 교수를 비롯해 그의 제자 중 최고참인 최성락(목포대) 교수를 필두로 이청규(영남대), 안승모(원광대), 강봉원(경주대) 교수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최 교수는 일단 단상의 마이크 앞에 섰다 하면 최소 30분 이상 연설이나 강연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 자신을 위해 제자들이 마련한 5년 전 회갑연에서는 무려 1시간이나 마이크를 잡은 그였다. 하지만 이날은 '이상하게도' 겨우 10분 정도만 40여 년에 이르는 고고학 인생을 짧게 이야기하고는 단상을 내려왔다.
이 자리에서 그는 맥아더가 1951년 4월19일 미국 국회의사당 상하원의원 합동연설에서 행한 퇴임사의 유명한 구절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를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고별사를 끝냈다.
"이제부터는 인연으로 생긴 자아의 실체를 없애기 위한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단계와 생사에 윤회하는 고통을 벗어나려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생각할 때입니다."
최 교수는 한국고고학계에서 그 자신이 한 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일화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1988년 3월1일 이후 2011년 현재까지 23년째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편찬에 관여한 일입니다. 매년 새로운 자료에 바탕에 두어 보완해 나가는데 중점을 두어 저는 거의 매년 교과서 기술을 바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들이 저를 매우 싫어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새로운 고고학을 표방하며 1987년 11월14일 출범한 한국상고사학회 창설 또한 잊을 수 없는 일로 꼽았다.
정년퇴임하는 최몽룡 교수 |
최 교수가 한국고고학계에 남긴 족적은 여러 가지 평가를 받는다. 그 중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학계의 새로운 연구경향을 선두에 서서 소개하고 적용한 일, 특히 그 이전에는 생소하기만 했던 형질인류학이나 체질인류학, 그 중에서도 인골학의 중요성을 본격 소개한 일은 빠질 수 없는 대목으로 꼽힌다.
더불어 그는 각종 기벽(奇癖)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술과 관련한 무수한 일화를 남겼다. 단순히 술을 즐기는 수준을 넘어 폭음에 가까운 습성이 몸에 밴 최 교수는 어느 날 갑자기 "술을 끊는다"고 선언하면서 저녁 8시 무렵이면 잠이 들어 이튿날 새벽 2시에 일어나 연구하고 활동하는 '새벽형 인간'으로 변신했다. 이 과정에서 술로 맺은 지인들과 아주 멀어지는 일도 잦아졌다.
이날 퇴임식에서 최 교수는 "저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머리가 아주 나빠 일 처리를 할 때는 9할은 노력으로 해결하고, 나머지 1할은 운에 맡긴다"면서 "제가 만약 후세에 평가를 받는다면 이 노력 부분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의뢰받은 원고의 제출 기한을 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으로도 정평이 났다. 단순히 어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원고 부탁을 한 받은 그날 저녁에 바로 원고 집필에 들어가 다음날 제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는 1972년 전남대 전임이 된 이후 스스로 약속을 해서 매년 지키는 게 있습니다. 매년 저서나 공저, 편저, 번역 등의 책 표지에 제 이름이 들어가는 책 한 권씩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는데 이제까지 이 약속을 지켜왔습니다."
나아가 그는 정년퇴임을 '요란하게' 예고하고 준비하는 전례도 만들었다.
회갑을 맞은 2006년, 그는 이미 5년 뒤에 있을 정년퇴임을 대비해 제자들과 더불어 한국고고학 총서 5권을 기획, 발의하면서 매년 1권씩 내겠다고 선언해 제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정년퇴임하는 최몽룡 교수 |
애초 그가 생각한 기획안에서 많은 변형이 있기는 했지만, 이날 퇴임식은 그 총서 '21세기의 한국고고학' 대미를 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실제 이 총서 시리즈는 2008년 이래 매년 한 권씩 선보여 이날 5권째가 나와 그에게 헌정된 것이다.
이런 보람 때문이었을까? "13년 6개월 동안 끊은" 술을 최근 다시 시작한 최 교수는 테이블마다 돌면서 참석자마다 일일이 술을 따라주며 파안대소하면서 "바로 옆이 내 집이니 거기로 옮겨 한잔 더 하자"면서 제자들을 데리고 집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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