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한국과 중국 등 유교 문화권에 속한 나라들에서는 목숨을 담보로 군주에게 직언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왕의 눈 밖에 벗어나 조정에서 쫓겨나고, 유배지에 가서조차 국운을 걱정하며 집필에 몰두하는 '딸깍발이' 정신이야말로 동양의 역사를 비춘 등불과도 같다.
방송기자로 30년간 활동한 이동식 KBS 비즈니스 감사가 펴낸 신간 '아니되옵니다'는 반만년 역사에 아로새겨진 쓰디쓴 '처방전'을 들여다본 책이다.
저자는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하면서 다양한 원전을 접했던 경험을 살려 방대한 한·중 양국의 기록을 통해 성군이 되고자 고심하는 군주의 노력과 이를 돕고자 '아니되옵니다'를 되뇌는 신하들의 고민을 담아냈다.
시대를 넘나드는 33편의 기록이 전하는 역사의 가르침은 '소통의 중요성'이다.
'정관의 치(貞觀之治)'라 불리며 중국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치세로 평가받는 당 태종의 곁에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충신 위징이 있었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훌륭한 인재를 등용해서 그 의견에 귀를 잘 기울이지만, 나라의 기반이 튼튼해지면 반드시 마음이 해이해집니다."(64쪽)
당의 국운이 융성해 그 세(勢)가 사방에 뻗을 때조차 위징은 위기를 들먹이며 경계를 늦추지 말라 간언한다. 당 태종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위징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다가도 결국엔 항상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
태평성대는 어진 임금과 바른말을 내뱉는 신하 사이의 소통이 빚어낸 하모니라는 것. 상호작용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신하의 조언이 아무리 묘안인들 꽉 막힌 '일방통행'이 될 뿐이다.
쓰러져가는 조정을 걱정하며 유배지에서 남긴 다산 정약용의 '경세유표'가 바로 그런 예.
"오직 관공서를 없애고 인원을 줄이는 것만을 긴급대책으로 삼았다. (중략)…터럭 하나만큼이라도 병통 아닌 것이 없는 바, 지금이라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한 다음이라야 그칠 것이다."(370쪽)
나라 안팎으로 세상이 변하는데도 이에 맞춰 제도를 정비하려 하지 않고 전해져 내려오는 것만 고집하는 정치를 통렬히 비판한 이 저작은 다산의 말 그대로 1911년 나라를 뺏긴 뒤에야 출간됐다. 다음 세대를 내다보는 다산의 혜안이 놀랍다.
나라를 걱정하는 신하가 많아 정책이 제자백가(諸子百家) 식으로 들어온다면 이를 가려내는 것은 군주의 몫이다. 조선 22대 왕 정조는 엄청난 공부량으로 천하를 보는 안목이 신하의 그것을 넘어선다.
"현재 쓰고 있는 제도조차 제대로 모르면서..(중략)..얼토당토 않은 전총(田摠)과 호구(戶口)를 가지고 인구를 계산해서 지급하는 경륜으로 삼는단 말인가."(246쪽)
정조는 백성을 위한답시고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시책을 내놓는 젊은 신하를 엄하게 꾸짖는다. 나라의 인구·토지·관료의 수 등 당시 경제 현황을 꿴 정조였기에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바르게 판단할 수 있던 것.
역사가 '죽은 기록'에 머물지 않는 것은 현대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큰 선거를 앞두고 소위 '정치의 해'를 보내는 한국 사회는 얼마나 소통이 이뤄지고 있을까.
해피스토리. 396쪽. 1만7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