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29일 탤런트 최진영 자살. 향년 39세.
2013년 1월6일 전 야구스타 조성민 자살. 향년 40세.
최진실에 이어 남동생 최진영, 그리고 이번에는 그의 전남편 조성민까지 모두 세상을 떴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믿기 어려운 비극이다. 이들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충격과 함께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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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민씨 아파트서 목매 숨진채 발견
- (서울=연합뉴스) 고(故) 최진실씨의 전 남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40)씨가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은 조씨가 화장실에서 허리끈으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조씨가 지난 2008년 최진실씨의 자살 이후 양육권과 재산권 관련해 기자회견하는 모습. 2013.1.6 << 사회부기사 참조 >> photo@yna.co.kr
그러나 누나 최진실이 남편과 불화 끝에 이혼한 뒤 우울증으로 2008년 10월2일 자살한 데 이어, 1년5개월 만에 동생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들 남매의 성공신화는 슬프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최진실은 스무 살이던 1988년 한 CF에서 유명 여배우 대신 수영장에 뛰어드는 대역 연기를 펼치는 등 단역 모델을 시작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러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가 큰 성공을 거둔 가전 CF 이후 연예계의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이후 20년간 큰 사랑을 받으며 연예계의 정상에 군림했다.
최진실이 연예계에서 성공하면서 최진영이 누나의 뒤를 따랐다. '최진실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출발하기는 했지만, 그도 귀여운 외모로 호감을 사며 1990년대 다수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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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최진영, 누나 곁에서 영면
- (양평=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지난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최진영씨가 31일 오후 경기 양평군 갑산공원 자신의 누나인 故 최진실씨 묘역 옆에 안치될 예정인 가운데 고인의 영정이 장지에 도착하고 있다. 2010.3.31 xanadu@yna.co.kr
특히 최진영이 배우로서 지지부진하다가 1999년 '스카이'라는 예명으로 1집을 내고 가수 데뷔를 했을 때는 최진실이 동생의 재기를 기원하며 종횡무진 홍보활동을 펼친 일화로도 유명하다.
최진영은 당시 "누나를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고 싶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들 남매의 성공 신화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최진실이 2004년 9월 조성민과 이혼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최진영이 연예계에서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
최진실은 정점에 있던 2000년 12월 프로야구계 톱스타인 조성민과의 결혼으로 동화 같은 러브 스토리를 보여줬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일본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의 결혼은 국내외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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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흘리는 최진실씨 어머니
- (양평=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26일 오전 故 최진실씨 유골함 절도 용의자가 검거돼 경기도 양평경찰서에서 도난당했던 최진실씨 유골을 돌려받은 최씨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09.8.26 drops@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geenang
이후 모든 연예활동을 접는 등 연기 인생에 큰 타격을 받았던 최진실은 2005년 KBS 2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거기에는 그의 옆을 항상 지켜주던 최진영이 있었다.
2008년 MBC TV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아줌마의 판타지를 자극하며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킨 최진실은 당시 인터뷰에서 "진영이가 아빠처럼 조카들을 너무 잘 봐줘 고맙고, 그런 진영이가 집안을 지키고 있어 너무 든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진실은 끝내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두 자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진영은 자택에서 목맨 채 숨진 누나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 누나의 목에 감긴 줄을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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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화제의 인물> 최진실
- (서울=연합뉴스) 탤런트 최진실. 20년간 대중스타의 자리를 지키다가 10월2일 마흔의 나이로 자살했다. 1988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멘트로 유명한 CF와 함께 연예계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했다. 2000년 프로야구 스타 조성민과 결혼했다가 불화 끝에 2004년 이혼하면서 연기생활도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나 2005년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올초 방송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그의 사후 자신의 성(姓)을 따랐던 두 아이의 친권과 재산관리권을 놓고 논란이 일었고, 그가 평소 앓았다는 우울증과 인터넷 상의 악성 댓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일어나기도 했다.사진은 지난 10월 4일 오전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2일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탤런트 故 최진실의 영결식.
최진영은 누나가 떠난 후 남은 조카들을 돌보며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많이 했고, "밤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밤을 꼬박 새운 뒤 아침에야 잠을 잔다"고 밝히곤 했다.
그러더니 끝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며 누나의 뒤를 따랐다. 누나가 떠난 지 1년5개월 만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이번에는 조성민이 6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조성민은 탁월한 재능에도 굴곡 많은 인생 탓에 꽃을 피우지 못한 '비운의 스타'로 꼽힌다.
194㎝의 당당한 체구에서 뿜어내는 강속구를 앞세운 그는 1996년 고려대를 졸업하면서 계약금 1억5천만 엔을 받고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1997년 7월 처음 1군 무대에 올라 주로 불펜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1998년 본격적으로 선발로 나서 야구 스타로 활약했다.
그러나 1999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후 기나긴 부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재기에 실패해 2002년 요미우리를 떠났다.
화제 속에 맺어진 최진실과의 결혼도 파경으로 끝났고 그 과정에서 폭행, 외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제빵 사업가와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5년 한화에 깜짝 입단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는 듯했던 그는 2011년 두산 2군 코치로 새 출발, 지난해 말까지 선수들을 지도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두산과의 재계약은 포기했다.
조성민까지 떠나면서 최진실-조성민의 자녀 환희와 준희는 부모를 모두 잃게 됐다.
환희와 준희는 그간 외할머니 정옥숙 씨가 양육해왔다.
최진실의 사망 후 조성민이 두 자녀의 양육권, 친권을 놓고 유족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2008년 12월8일 외할머니인 정씨에게 두 아이에 대한 양육권과 재산권 등 모든 권리를 넘겼다.
엄마에 이어 함께 살던 외삼촌의 죽음은 두 아이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남매는 주변의 보살핌 속에 이를 극복하고 지난해 9월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패밀리 합창단'에 출연해 엄마처럼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밝히는 등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둘은 합창곡으로는 엄마의 생일이 12월24일이라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을 골랐다며 노래를 들려줬고, 최진실을 향해 "좋은 재능과 외모를 줘서 감사하다"며 "하늘에서 행복하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해 애틋함을 자아냈다.
하지만 엄마와 외삼촌에 이어 아빠마저 세상을 뜨면서 이들 남매는 또다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과 마주하게 됐다. 외할머니 정씨 역시 아들, 딸에 이어 사위까지 잃으면서 다시 큰 고통을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