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 27-31일 극립극장서 창극 '서편제'
소리꾼의 삶과 애환을 그리는 '서편제'는 그간 다양한 장르로 대중과 만나왔다.
고(故) 이청준의 단편소설(1976)이 원작인 이 작품은 1993년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동원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 전 국민이 다 아는 이야기가 됐다. 2010년에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올해는 서편제가 '창극'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는다. 국립창극단이 오는 27-31일 창극 '서편제'를 국립극장 무대에 올리는 것.
소리꾼의 '득음'의 경지를 향한 갈망, 그로 인한 한(恨)과 그리움의 정서를 '진짜 소리꾼'들이 어떻게 그려낼지 관심을 모은다
한 가지 더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창작뮤지컬계 대부'라 불리는 윤호진(65)씨가 연출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의 첫 창극 연출이다.
최근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70년대 후반쯤에 명창 김소희 선생이 '심청가'를 완창하는 것을 감명깊게 본 적이 있다"며 "연출자로서 극의 형태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야 처음으로 창극에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리꾼이 소리의 본질을 찾아나가는 여정을 그린 '서편제'야 말로 창극과 제격"이라며 "판소리가 현대적 창극으로 가는 좋은 과정을 보여주겠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대부가 만드는 창극, 어떤 점이 가장 다를까.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극의 모티브를 확실하게 살려냄으로써 '지루하지 않은 창극'을 만드는 것이다.
"기존 '서편제'에는 최고의 소리를 위해 아비 '유봉'이 딸의 눈을 멀게한다는 막연한 설정 이외에는 모티브가 정확하지가 않아요. 이번에는 소리꾼 의붓남매인 '동호'와 '송화'의 감정을 파고들어가려 합니다. 단순히 오누이 간의 정이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으로 해석함으로써 극을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해보고 싶어요. 동호와 송화가 왜 그토록 끈질기게 서로 그리워하는지, 왜 유봉이 소리를 위해 딸의 눈까지 멀게하는지 등 동기가 확실히 드러나게 할 겁니다."
그는 "모티브를 제대로 살려내야 관객들이 두 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을 집중하며 따라올 수 있다"며 "뮤지컬이든 창극이든 연출가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관객을 몰입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작창(판소리 선율을 만듦)의 개념도 대사에 소리를 입혀 표현하는 기존의 방식과 달리하기로 했다.
"가사를 새로 만들어 소리 형태로 부르는 것은 어쩐지 계속 어색하게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기존 판소리 다섯 마당 등에서 '서편제'와 어울리는 부분을 그대로 가져 오려 합니다. 유봉이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장면에서는 '춘향가' 중 이별가 대목을, 눈먼 송화는 신세를 한탄하면서 '심청가'의 한 대목을 부르는 식이죠."
소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말에 "뮤지컬만 했던 사람이라 잘 모른다. 안숙선 선생에게 전부 물어보면서 하느라 정신이 없다"며 웃었다.
그렇다고 그는 이번 창극을 뮤지컬처럼 화려하고 현대적으로 만들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는 "새 시도는 창극을 '깨트리지 않는' 선에서 이뤄질 것"이라며 "우리의 전통을 절제된 미학으로, 품격있게 그려내고 싶다"고 말했다. 무대도 한 편의 수묵화처럼 간결하고 여백의 미가 살아있도록 표현할 예정이다.
하지만, 관객들은 하마터면 이번 공연을 만나지 못할 뻔했다. 윤 연출이 지난 1월 대통령 취임식 행사의 총감독으로 임명되며 공연을 미루는 방안이 고려됐던 것이다.
"극장 측에서는 공연을 취소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미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취임식이 끝나고 하루도 안 빠지고 연습실에 나올 만큼 마음에 여유가 없네요.(웃음)"
취임식이 끝나고서 처음 한 통화도 작품의 대본을 맡은 극작가 김명화 씨와의 전화였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대본은 다 끝났느냐'고 전화를 했더니 반대쪽에서 무척 황당해하더고요. 어떻게 이렇게 끝나자마자 전화를 했느냐면서요. 취임식을 준비하면서도 이 작품에 대한 생각이 늘 가슴 한켠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뮤지컬이든, 창극이든, 대통령 취임식이든 다 똑같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며 말했다.
"창극 연출은 처음이지만 사람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은 제가 여태껏 해온 뮤지컬 작업과 다르지 않습니다. 소리의 본질을 찾아 몸부림치는 소리꾼들의 진정성이 관객의 마음과 통하길 기대합니다."
관람료는 2만-7만원이며 문의는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