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한국학 연구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인 존 B. 던컨(68)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아시아언어문화학부 교수이자 한국학연구소장의 말이다.
던컨 교수를 최근 종로구 누하동에 있는 출판사 너머북스에서 만났다. 서울대 강의차 한국을 찾은 던컨 교수는 지난 3월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그의 논저 '조선왕조의 기원'을 펴낸 너머북스에 잠시 들른 길이었다.
한국인 아내를 뒀고 1년에도 3∼4차례 정도 한국을 찾는다는 그는 한국어가 유창했다.
그는 "한국의 피식민 경험이 뒤늦은 근대화와 겹쳐져 조선이 실패한 왕조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개항기 당시의 동북아시아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단선적인 분석"이라고 지적했다.
던컨 교수는 "일본은 19세기 말 자신들의 의지로 근대화를 추진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서 "반면 한국은 개항 이후 일본, 청나라, 러시아가 강력한 압력을 행사했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시간적·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차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는데 한국은 왜 그러지 못했느냐'면서 그 이유로 한국의 역사가 내부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던컨 교수는 1960년대 중반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다가 한국의 매력에 빠져 고려대 사학과에 편입, 한국사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
한국학의 대부인 제임스 팔레 교수(타계)의 제자인 그는 1988년 워싱턴 주립대에서 '여말 선초(고려말∼조선초)의 한국 상황'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UCLA대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조교수와 부교수, 교수를 거쳐 2001년부터 같은 대학의 한국학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식민사관을 배격하는 그는 한국사의 시기마다 새로운 사회 세력이 등장해 역사를 주도해나갔다는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던컨 교수는 미국에서는 2000년에 출간된 '조선왕조의 기원'에서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은 성리학 이념으로 무장한 신흥사대부에 의한 사회혁명이었다는 한국사 통설을 부정한다.
그는 고려 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약 600년 동안 중앙 조정에서 활약한 고려와 조선 관료 약 5천명을 조사한 결과 고려 말에 신흥 사대부와 같은 새로운 엘리트 집단의 출현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고려와 조선은 구조와 구성 모두에서 중앙 관원의 연속성이었다"면서 "조선의 건국은 고려 전기부터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 완성의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주류 학설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이러한 주장은 단순히 그가 이방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고 교류할 때 역사 연구의 수준이 높아진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의 가치라고 믿는다.
"저는 학생들에게도 역사의 한 주제에 대해 한국과 일본, 미국의 해석뿐만 아니라 소수 견해까지 알려주려고 노력합니다. 역사 서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길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판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은 민주 시민으로서도 자기 몫을 할 수 있죠.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고전을 세계에 소개하는 일에도 열심인 던컨 교수는 원나라 내정간섭기 당시 고려 지성인들의 고민을 주제로 책을 쓸 계획을 하고 있다. 중심인물은 고려 후기 유학자 이제현(李齊賢·1287∼1367)이다.
이제현은 원나라를 칭송하는 상소문을 올릴 정도로 친원파였으나 원나라의 황제가 고려를 자국의 성으로 만들려고 하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 고려를 보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던컨 교수는 "말하자면 이제현은 친원파의 한 사람이었지만 고려적인 자아상도 함께 갖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지식인들이 갖던 어려움도 이와 같지 않겠느냐"면서 "그런 비교를 염두에 두면서 고려 후기 지성인들의 고민과 동향을 살펴보려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