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도서 출간 당시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다가도 영상물의 흥행이나 기대몰이에 따라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같이 영상물 흥행몰이에 힘입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도서들을 지칭하는 '미디어셀러'라는 용어가 각광받고 있다. 또 출판물과 영상물을 하나의 산업 틀 안에서 바라보는 '이야기 산업'의 개념이 보편성을 얻어가는 추세다.
'미디어셀러'는 무엇보다 출판시장의 새로운 활로 개척과 함께 지식의 확산을 잇는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미디어셀러'를 바라보는 출판계의 속내는 즐겁지만은 않다. 영상물의 흥행에 힘입어 도서 매출과 수익이 증가하는 자체야 환영할 일이지만, 도서 자체에 대한 관심 저하와 영상물에의 종속화 측면 또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새해에도 '미디어셀러'…인터스텔라 관련 출간 '러시'
지난해 국내 개봉작 중 세 번째로 1천만 관객을 모았던 외화 '인터스텔라'의 흥행 이후 출판시장에선 관련 과학서적 등의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2월 물리학자인 이종필 고려대 연구교수가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동아시아)를 출간한 데 이어 이달엔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의 킵 손 명예교수가 저술한 '인터스텔라의 과학'(까치)이 잇따라 출간됐다. 상대성이론과 중력, 블랙홀 등의 개념을 소개하며 대중의 과학 이해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영화 개봉 시점인 지난해 11~12월 전후와 비교할 때 교양우주 관련 서적의 판매량이 27.5% 증가한 것을 비롯, 양자역학 분야 서적 판매량이 65.0% 급증했다.
교보문고 마케팅지원실 관계자는 "'코스모스'와 '상대성 이론은 무엇인가', '시간의 역사' 등의 판매량이 늘어나는 등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찾는 이들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미디어셀러' 현상이 지식 전파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인터스텔라'의 흥행에 기대지 않았다면 과학 교양서들이 현재와 같이 주목받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다. 영화의 흥행이 국내외 석학들의 관련 교양서 출간 자체를 이끈 측면도 있다.
이와 별도로 외계인에게 이끌려 우주여행을 경험했다는 호주 농부 M. 데마르케의 '9일간의 우주여행'(리베르) 또한 이달 신간 서가에 올랐다. 엉뚱한 상상의 산물로 보이기도 하지만, 미국과 일본, 독일 등 8개 이상 국가에서 번역본이 출간되며 인기를 누린 책이다.
이미 웹툰으로도 인기를 모았지만, 지난해 드라마화 이후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오른 '미생', 드라마 '정도전', 영화 '명량' 등의 흥행 이후 관련 서적 출간과 관심 증대 등 이제 출판시장의 주요 흐름은 '미디어셀러'를 제외하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 "출판 침체·왜소화 반영하는 흐름" 지적도
전통적으로 출판은 규모나 역할 면에서 콘텐츠산업 전체의 맏형격인 역할을 점해왔으나 2011년 매출 21조2천446억원을 정점으로 현재 집계가 가능한 지난 2013년까지 줄곧 매출 감소 추세를 보이며 침체 국면이다.
콘텐츠 산업 전체가 2013년까지 5년간 연 평균 8%가량 성장해왔음을 감안하면 침체의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운다.
이 같은 위축 분위기 속에서 미디어셀러의 득세를 바라보는 출판계 시각엔 '반가움'과 '착잡함'의 반응이 혼재한다.
미디어셀러 영향력의 확산은 바야흐로 영상물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다. 즉 텍스트가 영상물의 원천이 되는 시대를 지나 영상물이 인쇄물의 매출을 좌지우지함은 물론 그 창작의 동기마저 부여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원작의 힘보다 영상물에 끼워넣었다는 이유만으로 책이 팔리는 건 특히 문제"라며 "출판계에서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독서의 원천적 욕구를 끌어낼 기획과 접근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 연구원은 다만 "모바일 시대를 맞아 책에 대한 관심을 끌어낼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 활용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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