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60대 여성이 "소주병을 깼는데 병 조각으로 아들을 찌를 거다"라며 스스로 112에 신고한 것이다.
현장은 참담했다.
만취한 어머니 A(61)씨는 정신지체(2급)를 앓고 있는 아들 B(21)씨의 목에 병 조각을 들이댄 채 경찰과 대치했다.
언뜻 보기에도 B씨는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듯 뼈만 앙상하게 말라있었다.
일단 경찰은 B씨를 병원으로 옮긴 뒤 A씨를 형법상 유기치상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흉기 폭행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여기서 끝. 그러나 경찰 조치는 더 나아갔다.
이 사건이 있기 보름쯤 전 여성보호계장으로 발령받아 온 최형규 경감은 부하 직원으로부터 그동안 A씨가 "아들을 잃어버렸다", "아들을 죽이겠다", "자살하겠다"는 등 최근 4년 간 27차례에 걸쳐 경찰에 신고 전화를 건 사실을 보고받았다.
또 A씨가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집에 데려다주면 인수를 거부하고, 아들을 수시로 폭행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최 경감은 다시 조사에 들어갔다.
홀로 아들을 키워온 A씨는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며 아들 앞으로 나온 장애인수당과 기초생활수급비 등을 술값으로 써왔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아들이 다쳐서 주변에서 입원시키면 무슨 이유에선지 매번 강제로 퇴원시킨 사실도 확인했다.
입원 일수 만큼 장애인수당이 감액되기 때문이라고 확신한 최 경감은 A씨가 아들을 제대로 보호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A씨와 분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최 경감은 이때부터 성남시청 장애인 담당 부서와 장애인보호단체, 인권변호사 등을 찾아다니며 B씨를 지원할 방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성남시는 B씨의 치료비 및 기초수급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고, 장애인 보호단체와 변호사 등은 법률 자문을 맡아 A씨의 친권을 박탈하는 절차를 돕고 있다.
B씨는 현재 경기도 모처의 요양병원에서 지내며 건강이 많이 호전된 상태다.
추후 최 경감은 변호사 도움을 받아 B씨가 성년후견인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최 경감은 "가정폭력은 단순한 형사사건으로 치부해선 안된다"며 "경찰은 가장 밀접한 가족 사이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학대의 경우 가해자를 형사처벌하는 것 외에도 피해자에 대한 의료지원, 상담치료, 법률지원 등 사후관리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 경감과 함께 B씨를 도와준 장애인 단체의 한 관계자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한 생명을 간과하지 않고 도와주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니 경찰이 시민에게 얼마나 가깝고 또 필요한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한편 경기지방경찰청은 최 경감에 대해 '가정폭력 사건 사후관리 우수사례 경기청장 표창'을 수여할 예정이라고 5일 밝혔다. 경기경찰청은 올해 7월 말 현재 가정폭력 사건 피해자 3천여 명 가운데 2천여 명을 사후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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