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을 제기한 시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박동운씨와 가족 26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상고심에서 "총 56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1981년 진도에서 박씨 성을 가진 자가 간첩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안기부는 진도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박영준이란 인물을 찾아 그 일가족을 간첩으로 몰았다. 박씨는 박영준씨 아들이었다.
안기부 직원들은 북한 공작원으로 남파된 박영준씨에게 포섭돼 간첩 활동을 했다는 자백을 박씨 일가로부터 받아냈다. 옷을 벗겨 거꾸로 매달고 성기에 불을 붙이는 가혹한 고문의 결과였다.
이 사건은 이른바 '2차 진도 간첩단 사건'으로 불렸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박씨는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1982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은 박씨는 1998년 8·15 특사로 석방될 때까지 16년 동안 복역했다. 다른 가족 7명도 상당 기간 옥고를 치렀다.
박씨는 2009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에 이어 서울고법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검찰의 상고 없이 무죄가 확정되자 형사보상금을 청구해 11억원을 수령했다.
박씨는 가족과 함께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2심은 박씨 본인의 위자료를 17억5천만원으로 정하고, 사망한 부인의 위자료 상속액, 이미 지급된 형사보상금 공제액 등을 고려해 실제로는 박씨에게 17억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원고 27명에 대한 전체 배상액은 56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소송 제기가 너무 늦었다는 정부의 소멸시효 주장을 받아들여 하급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재심 무죄 판결을 확정받은 후 형사보상을 청구해 2010년 9월 형사보상결정까지 확정받았는데도 그로부터 6개월 이상이 지난 2011년 5월에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며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판시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구하려면 재심 무죄 판결 확정일로부터 6개월 안에 소송을 내야 하고, 그 기간 안에 형사보상을 먼저 청구한 경우 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안에 다시 소송을 내야 한다는 2013년 12월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이번 판결은 '1차 진도 간첩단 사건'으로 불린 이전 사건 피해자들의 소송 결과와 대조된다.
박씨보다 1년 전인 1980년 진도에서 간첩으로 몰려 이듬해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김정인씨는 그의 유족이 박씨와 동일한 절차를 거쳐 총 51억원 규모의 국가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작년 2월 김씨 유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 본인의 위자료로 25억원을 인정해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김씨 유족은 2011년 2월 재심 무죄 판결을 확정받은 후 그해 3월 형사보상을 청구했고, 9월 형사보상결정을 확정받아 이듬해 2월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등 신속히 절차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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