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개혁 소리만 요란 인적 쇄신은 없었다
민주통합당, 공정한 리더십 발휘 못해… 국민참여경선 취지 못 살리고 잡음만
"공천이란 것이 늘 시끄럽다고 덮기엔 이번 상황은 달라 보인다. 공천 기준이 무엇인지 확실히 답할 수 있어야 한다." 3월 7일 민주통합당의 최고위원회의 중 박영선 최고위원의 발언이다. 민주당은 올해 총선 공천과정에서 ‘쇄신'과 ‘개혁', 그리고 당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공천 심사가 막바지를 향해 갈수록 공천 결과를 둘러싼 잡음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8일 이해찬 민주당 상임고문은 공천의 불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탈당 입장을 밝히겠다고 나왔다. 이 소식을 들은 문재인 상임고문과 문성근 최고위원은 급하게 부산에서 서울로 와 공천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당 지도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9일 도덕성 논란의 중심에 있던 임종석 사무총장은 총장직과 총선 후보를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임 총장이 사퇴의사를 밝힘에 따라 이화영·이부영 후보 등도 공천권을 반납하라는 요구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파장은 더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의 인적 쇄신이 지지부진한 결과를 낳은 이유로 국민참여 경선이 공천권을 국민에게 개방한다는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축소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기준 전략공천 지역을 제외하고 단수후보가 선정된 114곳 중 신청자가 1명뿐이었거나 단수후보를 내기로 합의한 곳은 56곳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나머지 58곳의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한 예비후보들은 경선을 치를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다. 당 대표 선출 당시 한명숙 대표가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을 통해 ‘공천혁명'을 이루겠다던 다짐과는 거리가 있다.
경기 남양주 갑에 공천을 신청했다 낙천한 양홍관 예비후보는 "민주당과 시민통합당이 통합할 때 국민경선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기로 한 합의가 물거품이 됐다"며 "단수 공천을 빙자한 꼼수 공천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민주당이 내세우고 있는 것이 혁신인데, 민주당 자신을 혁신해야 하는 과제를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낙천한 예비후보들은 이처럼 국민경선이 축소된 이유로 이면에 숨어 있는 당내 계파정치를 들었다. 계파들의 정략적인 이익 때문에 결국 정치신인들이 희생양이 된다는 주장이다. 정두환 서울 금천구 예비후보는 "당내 유력 인사들이 지역구 관리를 소홀히 한 탓에 경선에서 다른 후보와 맞붙을 경우 질 것을 걱정, 자신을 단수후보로 내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며 "개혁을 표방하던 인물들이 한 대표의 취임 이후 그들만의 사조직으로 기득권을 지키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권보근 서울 양천 갑 예비후보는 "예전 386이란 이름으로 입문한 세력들이 486이 되면서 30대 정치인들을 잠재적 경쟁자로 보고 이번 공천에서 배제했다"고 말했다.
후보 선정 정체성 논란
한 대표가 공천과정에서 힘을 쓰고 있다는 비판 가운데는 특정학교 출신의 학연이 작용하고 있다는 불만도 들어 있다. 민주당의 여성 단수·경선후보 27명 중 이화여대 출신은 8명으로 29.6%를 차지한다. 한 대표 역시 이화여대 출신이다. 권 예비후보는 "여성 단수후보들의 평균연령은 50세를 훌쩍 넘고 그 중엔 4선까지 한 사람도 있다"면서 "이대 출신에 대한 특별대우만 있고, 여성후보와 청년후보를 신규 영입하려는 의지는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맞고 있는 공천 역풍은 ‘정체성'을 공천 심사의 주요 기준으로 강조했음에도 그에 걸맞지 않은 행보를 보이는 인사들에 대한 공천 가능성 논란이 벌어진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7일 김진표 원내대표가 결국 수원 정(영통) 선거구 공천을 받자 논란은 공심위와 당 지도부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고 있다. 김 원내대표와 같은 당내 보수파 문제 외에도 새누리당 출신 인사를 경선 후보로 선정한 점도 정체성 논란을 키우고 있다. 구인호씨는 2007년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 외곽지원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사무처장을 맡았지만 이 경력을 숨기고 강원 철원·화천·양구·인제 선거구의 공천을 신청해 경선 후보로 뽑힐 때까지 심사과정에선 걸러지지 않다가 뒤늦게 재심위원회에서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 울산 울주군 경선 후보자인 김춘생 후보도 옛 한나라당 소속으로 시의원을 세 차례 역임한 경력이 있다.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에서도 구 여권인 민자당 후보로 군수에 선출된 후보가 경선 후보에 올랐다. 이 후보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출신이기도 하다.
현재 민주당사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낙천한 예비후보들의 모임인 ‘불공정 공천타파 민주연대'엔 40여명의 예비후보들이 참여해 국민경선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공천심사위원회가 심사 내역과 낙천 사유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이 발표한 낙천 이유는 모두 "현격한 경쟁력 차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부 낙천 예비후보들은 여론조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거나 조작됐을 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에 공심위를 고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할 의지를 보이는 예비후보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심사과정에서 여성·장애인·청년 후보에게 가점을 부여하는 등 동등한 심사가 되도록 노력했고, 경쟁력만이 아니라 총점에서 현격하게 뒤처지는 후보들까지 경선후보로 낼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공천을 둘러싸고 이어지는 논란에 관해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다양한 세력들이 통합한 상황에서 당 지도부가 공정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공천 경쟁에서 새누리당에도 뒤지는 결과로 나타났다"며 "지역구 공천은 사실상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있을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라도 민주당이 말하는 개혁공천을 과감하게 수행하고 빠르게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민주당으로선 위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