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판결 `강압인정 어려워'"→"잘못 말해" 번복 논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21일 논란이 되는 정수장학회 문제와 관련한 야당의 주장을 '정치공세'라고 반박하면서도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에게는 사실상 자진사퇴를 압박하는 모양을 취했다.
정수장학회 문제를 대선쟁점화하고 있는 야권에는 강하게 맞서는 동시에 최 이사장의 '버티기'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털어내고자 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특히 정수장학회가 자신과는 무관하다면서도 사실상 이사진의 거취를 압박하는 `논리적 모순'을 감수한 것은 `국민적 눈높이'를 맞추지 않고는 과거사 논란 때처럼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정수장학회 탄생 배경 등을 놓고 법원 판결은 강압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밝혔다가 곧바로 "잘못 말했다"고 말을 바꾸는 등 일부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야당의 공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박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문의 상당 부분을 정수장학회의 탄생과 운영 등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할애했다. 장학회에 대한 야당의 주장이 정치적 공세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정수장학회는 공익재단이며 어떠한 정치활동도 하지 않는 순수한 장학재단"이라며 "저의 소유물이라든가, 저를 위한 정치활동을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와 관련해 민주당 정권 내내 장학회의 문제점을 파헤쳤고 야권 성향인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재임 당시 감사를 진행했지만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거론했다.
박 후보는 "부일장학회가 정수장학회로 이름만 바꾼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며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승계한게 아니라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김지태씨가 헌납한 재산에 국내 독지가뿐 아니라 해외 동포까지 많은 분의 성금과 뜻을 더해 새롭게 만든 재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지태씨에 대한 비판적 견해도 피력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당시 김지태씨는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은 분이었다"며 "4ㆍ19 때부터 부정축재자 명단에 올랐고 5ㆍ16때 부패혐의로 징역 7년을 구형받는 과정에서 처벌 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헌납의 뜻을 밝혔고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주식 등을 헌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수장학회가 야당 등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강압'보다는 김지태씨가 징역형을 피하기 위해 `헌납'한 것임을 상대적으로 더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후보는 자신이 장학회와 무관하다면서도 장학회 이사진에게 `현명한 판단'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2005년 장학회를 떠난 이후 어떤 관계도 없어 그동안 관련 질문을 받으면 그와는 관련 없다고 말해왔다"면서도 "더 이상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서 국민에게 혼란을 가져오고 정쟁의 도구가 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박 후보는 "이사장과 이사진은 정수장학회가 더이상 정쟁의 도구가 되지 않고 국민적 의혹이 조금도 남지 않도록 국민 앞에 모든 것을 확실하게 투명하게 밝혀서 해답을 내놓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어려운 학생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셨던 것도, 제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것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면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이사진은 장학회 명칭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잘 판단해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의 사실상 자진사퇴를 촉구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함께 장학회의 명칭을 바꾸는 것까지 검토해달라고 촉구함으로써 자신을 더 이상 장학회와 연관시키지 말아달라는 뜻도 에둘러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기자회견은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한 박 후보로서는 `이율배반적'인 면이 있다.
-
- 박근혜 기자회견을 마치고
- (서울=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21일 여의도 당사에서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서 돌아서고 있다. 2012. 10. 21 srbaek@yna.co.kr
박 후보 스스로도 기자회견에서 "장학회를 떠난 제가 공익재단에 대해 지분매각을 하라마라, 이런 이사를 내보내라 마라 이러는 것은 법칙과 원칙을 무너뜨린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측면을 보여준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박 후보가 `정치적 해법'을 모색한 것은 그만큼 야당의 공세가 거세고 이렇게 되면 아무리 박 후보가 "관계가 없다"고 강변해도 국민의 의구심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이정현 공보단장도 기자회견 직후 "정치적 공세를 받지 않으면 뭐 때문에 나서서 해명하겠느냐"면서 " 민주당의 흑색선전이란 점에서 강력히 대응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수장학회 탄생 배경 등에 대한 박 후보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제기될 전망이다.
박 후보는 질의응답에서 "김지태씨 유족측에서 강압에 의해 강탈당했다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에서 강압적으로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의 결정은 강탈을 인정했다는 취지의 추가질문에도 여전히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박 후보는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악수하다 측근들의 건의를 받고 다시 기자회견 단상으로 올라가 "제가 아까 강압이 없었다고 얘기했느냐. 제가 잘못 말한 것 같고.."라고 발언을 번복했다.
또 관련 기사를 보면서 "이 내용은 강압에 의해 주식증여 의사표시가 있음이 인정된다고 재판부도 인정했다. 제가 아까 (강압이) 없다고 말한 건 잘못 말한 것 같다"고 애초 발언을 수정했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김지태씨가 1962년 정부 강압으로 문화방송, 부산일보 등의 주식을 증여한 사실이 인정되지만 당시 김씨가 의사결정 여지를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 주식을 증여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라며 "판결의 뒷부분만 강조하다 보니 그런 말을 한 것 같다고 이해해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야권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측 진성준 선대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진실과 화해위원회, 법원의 판결 모두 정수장악회가 강압에 의해 강탈된 재산이라고 하는데도, 박 후보는 시인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며 "역사인식의 부재로 대통령 후보로서 부적격임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진 대변인은 "국민의 기대와 동떨어지다 못해 정반대된 입장을 밝힌데 대해 분노스럽다"고 덧붙였다.
안 후보측 유민영 대변인도 "국민의 상식과 사법부의 판단에 반하는 내용"이라며 "사법부는 (정수장학회 전신인 부일장학회의 소유주인) 김지태씨가 주식을 강박에 의해 넘겼다는 점을 적시했다"고 강조했다.
유 대변인은 "이를 부인하는 것은 대선 후보로서 중대한 인식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의 언론사 주식매각 논란에 대한 질문에도 "공익재단으로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결정이 나야한다"면서도 "야당은 그동안 장학회가 부산일보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지분매각을 하겠다고 하니 안된다고 주장해서 보도만 봐서는 뭐가 제대로 된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고 말한 것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한편 기자회견에는 `나꼼수' 멤버인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참석해 박 후보에게 "법원에서는 헌납이라고 얘기하지 않고, 강탈인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 법적으로 되돌려놓을 기회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질문을 던진 뒤 재차 질의하려다 "토론회가 아니다"라는 조윤선 대변인의 저지로 추가 질문은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