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4각으로 산길, 숲길, 진창길 뛰기-
“현대 사회의 왕”을 만드는 과정 지난 6일(월) 민주당 10.3 전당대회 경선 규칙이 확정됐다.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통합해서 선출하는 집단지도체제, 당권과 대권 1년 전 분리(대권 주자는 2011년 12월 이전 사퇴), 대의원 투표 70%+당원 여론조사 30%, 9명 컷오프제 적용 등이 그 핵심이다. 안토니오 그람시와 주대환(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의 말대로 “정당이 현대 사회의 왕”이 맞는다면, 유력한 왕 후보 민주당을 좌지우지할 지도부를 선출하는 경선 규칙은 사회적으로 여간 중차대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사안의 중차대함에 비해 사회적 관심-특히 범진보 진영의 관심-은 너무 적은 것처럼 보인다. 진보 논객들의 민주당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적어서인 것 같기도 하고, 민주당의 닭짓 자체가 오히려 회심의 미소를 띠게 할 만큼 기쁜 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비록 당적은 없지만 이번에 합의한 ‘전당대회 룰’을 회심의 미소로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민주당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이번에 합의한 대표-최고위원 동시 선출 규정의 문제점은 지난 8월 30일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개최한 공개토론회용 자료집 “10.3 전당대회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민주당 수권 정당을 위한 과제-” 22페이지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는 조성준(당헌당규분과위원장)이 책임 집필했는데, 그 내용-동시선출(순수집단지도체제)안의 폐단)-은 다음과 같다. “유력인사들이 모두 지도부에 포함될 경우 나눠먹기식 당 운영으로 당대표의 지도력 발휘가 어려움. (열린우리당 시절- 필자 주)운영해 본 경험상 당 대표의 권한이 약화되어 끊임없이 지도부가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함. 의사결정 지연 등 야당에서는 실패가 확인된 제도(예 8인 8색), 신진 인사의 진입이 어려움. 권한은 무한대로 행사하려 하나, 책임은 지려하지 않는 문제 발생” 물론 이 자료집에는 분리선출 안의 폐단(반대 이유)도 정리되어 있으나, 이는 어떤 조직이든지 한 사람에게 권능을 집중시켰을 때 으레 일어나는 문제 일뿐이다. 그 심각성이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3인 4각으로 숲길, 산길, 진창길 뛰기 이번 ‘전대 룰’은 민주당이 숲길, 산길, 진창길을, 서로 발을 묶어 3인 4각으로 뛰겠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2인 3각이나 3인 4각도 장애물 없는 평지-2009년 언론 악법 저지 투쟁 국면처럼 결사 투쟁 외에 이견이 없거나, 계층적, 지역적 이해관계가 약해서 “자유 투표”로 처리할 법률 안만 있다면-를 직선으로 달릴 때는 비교적 모순이 덜하다. 하지만 장애물이 많은 숲길, 산길, 진창길을 요리조리 피해가면서 뛸 때는 엄청나게 모순이 심각하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애정은커녕, 상대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으로 생각하는 주자들이 발을 묶고 뛰니까, 진창이 나타나면 자신은 밟지 않으려고 다른 주자를 밀칠 것이다. 장애물이 나타나도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의 다리와 묶인 자신의 다리에는 가능하면 힘을 주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온갖 어이없는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서로 만면의 미소를 띠면서 밀치고, 다리 걸고, 팔꿈치로 가격하고, 모두 꽈당 넘어지는 생쇼를 숱하게 연출할 것이다. 10.3 전당대회 날 당선된 6인은 만면의 미소를 머금고 단상에 서서 손에 손을 맞잡고, 1위 득표자(당대표)를 중심으로 잘해 보겠다고 말은 하겠지만 말이다. 외부인사 영입, 뉴리더 배출, 야권 연대에 맞는 지도체제는? 정세균 전대표는 당대표 출마의 변에서 “2012년 승리를 위해서는 욕심을 비울 사람이 당 대표로 선출돼야 한다.”며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으로는 당 안팎의 인물들을 경쟁력 있게 키우거나 영입할 수도, 차세대 젊은 리더들을 양성할 수도, 야권연대의 성사에 앞장 설 수도 없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당 대표 및 지도부의 향후 핵심 3대 과제로 “외부 인사 영입, 뉴리더 배출, 야권연대”를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3대 과제는 하나 같이 기득권의 양보 내지 손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권능은 최대로 누리고, 책임은 최소화 하려는 3인 4각 체제, 정확히 말하면 6인 7각 체제에서 이것이 되겠는가? 게다가 2012년 총선은 지난 지방선거와 달리, 분열로 인한 공멸의 위기의식은 약한데 반해, 주거니 받거니 할 자리는 너무 적다. 1인 8표가 아니라 1인 2표(국회의원, 비례대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세균은 10.3 전대를 통해서 뽑을 지도부의 과제는 넉넉잡고 50%는 짚었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지도체제는 “영 아닌 것”으로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9월 6일 합의한 ‘전대 룰’은 “빅3 또는 6인 지도부의 나눠먹기”판으로 질주하는 레일을 깔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의원 투표 70%+당원 여론조사 30%” 방식은 “민주당 그들만의 잔치”를 확고히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념정책의 혁신, 행태문화적 매력의 혁신, 경쟁규칙의 혁신 나는 민주당이 당면한 과제 중에서 정세균이 말한 과제; “외부 인사 영입, 뉴리더 배출, 야권연대”는 잘 봐줘야 50%라고 하였다. 그러면 나머지 50%는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당의 이념정책의 혁신, 행태문화적 매력의 혁신, 경쟁규칙의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이 더 근본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경쟁규칙의 혁신은 근본 중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정세균이 제시한 3대 과제는 이 부산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민주당과 범진보 진영이 참여정부와 범진보의 동반몰락의 원인과 그 성과, 한계, 오류를 제대로 논의하지도 짚어내지도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좌클릭을 더 세게 못해서, 복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지 못해서, 삼성과 관료에 포섭되어서, 호남 민중을 배신해서, 국민이 ‘개’라서-경제성장에 대한 묻지마 열망이 발동해서-” 등 단순무식한 소리만 넘쳐난다고 생각한다. 옮고 그름을 떠나서 “뉴민주당 플랜”이 그래도 꽤 진지한 연구 고민 끝에 나왔지만,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별로 없고, (제대로 읽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유사하다는 둥, 우편향이라는 둥 잡소리만 늘어놓았다고 알고 있다. 민주당 21대 강령을 읽어 보면, 이것이 한국 제1 야당의 이념 정책적 정수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진 것이 많고, 난삽하고, 감동도 없지만, 이 역시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별로 없다고 알고 있다. 몇몇 사람이 제출한 개정안도 고작 문구 몇 개 첨삭하자는 수준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문화적 매력은 이념정책 이상으로 중요하지만 대다수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개념 자체가 없는 듯하다. 따지고 보면 범진보 동네에서 노무현과 이정희에게 강한 호감을, 정동영에 대해서는 강한 비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들의 이념정책 때문이 아니라 “진정성, 일관성” 등으로 집약되는 행태문화 때문 아닌가? 나는 노무현, 이정희에 대해서는 이념정책이나 현실감각으로만 본다면 비호감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범진보에 행태문화적 매력을 가진 사람이 워낙 없다 보니 열광하는 층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행태문화적 매력은 이념정책과 전혀 다른 차원의, 어쩌면 그 보다 더 중요한 “집권의 관건”임에도 불구하고 거론하는 사람조차 없다. “대의원 투표 70%+당원 여론조사 30%”라는 규칙도 그리 된 이유가 수 백 가지가 있겠지만,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졸렬하기 그지없다. 이 역시 행태문화적 매력을 꽤 떨어뜨리는 요소일 것이다. 그런데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10.3 전당대회에서만 적용되는 경선 규칙이 아니다. 3인 4각 체제로 인해, 유력 대권주자들이 2011년 말까지, 무려 1년 몇 개월에 걸쳐서 끊임없이 보여 줄 밥 맛 없는, 비매력적 행태이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는 지난 2년 여 동안, 바람처럼 나타나서 멸사봉공하고, 바람처럼 사라져 자숙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쌓은 호감을 이번 합의로 절반을 잃었고, 향후 1년 몇 개월까지는 대충 다 잃어버리지 않을까 한다. 지도부에 들어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니 오히려 더 자유롭게 대권주자 행보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점에서 이번 손학규의 전대출마는 작년 정동영의 전주출마와 닮은 것처럼 보인다. 바둑으로 치면 실리를 위해 세력을 너무 많이 잃어 버렸다고나 할까? 거세와 학살의 공포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정동영 공천 배제(탈당 후 전주 무소속 출마) 사건은 이번 “전대 룰”을 포함하여 민주당의 행태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한다. 왜냐하면 정동영의 전주 출마의지가 아무리 큰 정치인답지 않다 할지라도, 불과 1년 반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고, 상대후보에게 참패했다 해도 유효투표의 26%(617만 표)를 득표한 정치인을 공천에서 배제하는 것을 보고 경악한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에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리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이라 할지라도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일종의 거세, 학살의 공포와 이글거리는 분노, 복수심을 민주당에 만연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정동영 공천 배제에 앞장 선 사람들은 지분 미확보 시 처절한 보복(학살)의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고, 이를 옆에서 지켜 본 사람들 역시 최고위에서 지분 확보 못하면 정동영 꼴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학살의 공포가 민주당의 유력 주자로 하여금 대권 주자로서의 품위와 여유를 사치로 여기게 하고, 오로지 생존 본능만이 전면에 오도록 만들어 “닥치고 지분 확보”에 나서도록 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정동영 공천 배제 사건은 제주도와 지리산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겪은 대량 학살 사건처럼, 쌍용차나 대우차 노조원들이 겪은 대량 정리해고사건처럼 정신적 충격이 대단히 큰 사건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민주당의 졸렬한 행태문화는 정동영 공천 배제 사건으로 증폭된 것은 분명하지만, 이 때문에 만들어진 문화는 아닐 것이다. 이해찬, 유시민이 민주당을 뛰쳐나간 것도 그 뿌리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아하게 말하면 민주당의 공화주의 문화(정신)의 부재 탓이고, 까놓고 말하면 대선 패배의 책임을 이른바 친노에게 독박을 씌워, 학살하려는 움직임이 때문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칼자루 쥔 세력은 이를 기회로, 공화주의 정신이나 패자부활전 정신과 담쌓고 일거에 패자를 난도질 하려 하고(해방 공간에서 좌파가 그랬다고 생각한다), 칼자루를 못 쥔 세력은 거세와 학살의 공포에 떨면서, 절치부심 보복의 그 날을 꿈꾸는 문화를 떠올리니 분단, 전쟁, 학살, 노무현 고문치사 사건, 쌍용차 사건을 연출한 정신과 문화가 민주당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뒤틀린 역사와 독특한 환경이 만든 이 같은 성정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다수 국민들과 지지자들의 정서와 의사-여기에는 공화주의와 패자부활전이 있다-를 반영하지 않는 민주당의 지배구조와 경쟁 규칙을 탓할 수밖에! 486에 대한 실망 이른바 486들은 애초에는 1부 리그(당대표 선출)가 아니라 2부 리그(최고위원 선출)를 노렸다고 한다. 그런데 동시선출(1부 리그와 2부 리그 통합)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진짜 타격은 이것이 아니다. 민주당의 주요 주자들이 졸렬하게 놀 때, 기득권이 없어서 건강하기 십상인 당 원로 및 다수 지지자들을 등에 업고, 당당하게 민주당의 대도를 부르짖으며, 그야말로 “정풍 운동”을 했어야 했는데, “꼭 같은 놈”처럼 행동했다는데 있다. 민주당 486들이 민주당의 대도를 부르짖고, 정풍운동을 하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가? (유시민의 정치인 분류 기준에 따르면) 원래 토끼 과이기 때문인가 구민주계와 정동영의 보복에 대한 극심한 공포 때문인가? 나는 알 수 없다. 시위 현장의 북 치기 vs 오케스트라 지휘 분명한 것은 486들이 매우 싫어한다는 정동영은 그래도 “역동적 복지국가’와 “부유세”라는 새로운 철학, 가치, 비전을 들고 나온 데 반해, 486들은 그런 것 하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486을 보면 “칼로 일어난 자 칼로 망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현실 정치에서 성공한 486의 칼은 단결, 연대, 제휴, 통합, 참여, 센 놈에 업혀가기 등으로 표현되는 “정치 공학”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열린우리당이라는 명칭,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명칭, 참여정치실천연대(기간당원제 사수투쟁)와 국민참여당이라는 명칭, 심지어 참여정부라는 명칭에서도 “우리 사회는 무엇이 핵심 문제며, 어떤 사회로 만들 것인지”라는 비전이 없다. 이는 486과 민주화 운동 출신 현실 정치인들이 가야 할 길과 주된 대립물이 자명하여 대중적 힘을 동원하는 방식(단결, 연대, 통합, 참여, 도덕성 등)이 정치 행위의 중심이던 “시대의 아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과거에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명확했기에 나라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비전이 별로 필요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인과 정치세력에게는 나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비전이 필요하다. 비유하자면 과거의 이념정책이 찢어진 막노동 작업복 깁기라면 지금의 그것은 젊은 여성의 얼굴 성형수술이다. 과거의 이념정책이 시위대를 고무하는 북 두드리기라면 지금은 오케스트라 지휘다. 과거의 이념정책이 허허벌판에 신도시 개발이라면 지금의 그것은 서울, 부산, 인천의 복잡한 도심 재개발이다. 고려해야 할 것이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정치를 하려면 이제는 큰 그림이 있어야 하고, 멀리 봐야 하고, 주도면밀해야 하고, 아주 사소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선수 집단과 함께 해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참여정부의 교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국가 경영은 “도덕성과 진정성”만 가지고는 안되며, 비전(이념정책)을 공유하고, 한국의 바닥현실과 적은 힘으로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개혁의 급소도 정확히 알며, 오랫동안 서로 호흡을 맞춰 온, 조직되고 훈련된 선수 층(정치가, 전문가,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이 두터워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사회)비전은 멋들어진 단어 몇 개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 대한 수 백 페이지의 현실 진단(현황 및 문제점)과 정책 대안이 압축되어 있는 압축 파일의 파일명이다. 한번 클릭하면 수 십 개의 디렉터리가 펼쳐지고, 한 번 더 클릭하면 각 디렉터리에서 수십 개의 파일이 펼쳐지고, 하나하나의 파일들은 예리한 현실 진단과 무릎을 치는 통찰 그리고 감동과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정책 대안이 살아 숨 쉬어야 한다. 그것은 서민과 중산층의 고통, 현실감각, 지혜를 날줄로 하고, 정치가, 전문가, 관료, 시민운동가들의 철학과 지혜가 씨줄로 하여 짜인 천이어야 한다. 나는 요즈음 혁신 지자체들의 행보를 보면서, 당선되면 절실히 뭔가를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 공약에 자신의 영혼을 집어넣은 사람, 함께 지자체 경영을 준비한 그룹이 있는 사람과 막연한 생각(멋진 시,도,군,구를 만들겠다)으로 당선된 사람의 극명한 차이를 목도하고 있다. 후자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당선돼도 거의 다를 바 없는 사업을 한다. 관료에 먹혔다는 얘기다. 칼로 일어난 자 칼로 망한다. 칼로 일어난 자가 칼로 망하는 것은, 칼로 재미를 본 사람들은 칼의 유효성이 다한 시대에도 계속 칼로 승부를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하면 총의 시대에서도 칼로 승부를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한국은 총의 시대의 초입이라고 생각한다. 칼은 정치공학이라고 생각한다. 총은 국가경영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철학, 가치, 비전, 정책을 공유하면서, 일상적으로 대중을 설득하고, 피드백 받으면서, 이념정책을 단련한 사회적(지적) 헤게모니가 있는 선수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도덕성과 진정성은 총과 칼을 떠받치는 기초 체력 내지 에너지쯤 된다고 나 할까? 어쨌든 총의 시대 초입에는 어설픈 총질 보다 잘 휘두르는 칼질이 낫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그 승패는 명확하다. 요즈음 소리를 내는 딱총(공정한 사회, 역동적 복지국가, 정의로운 복지국가, 공평사회 등을 추구하는 집단)들은 지금은 좀 어설플지 몰라도 시간이 가면, 모든 칼 들을 다 제압할 수 있는 위력적인 무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나는 486들과 자칭 노무현의 후예들이 정치적 레토릭 외에 어떤 총을 개발하려 했는지 알지 못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외에 (국가경영 담론을 중심에 둔) 어떤 소사이어티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민주당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려는 노력, 특히 젊은 층, 전문가 층, 화이트 칼라, 영남 민주세력 등을 당으로 빨아들일 수 있는 경쟁규칙과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지 못한다. 왜 토양이 피폐하고, 뿌리와 줄기가 말라비틀어진 나무에서, 그것을 살리기 위한 노력을 중심에 놓지 않고, 자신이 예쁜 꽃(지도부)으로 피기를 기대하는지!!!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도 2007년 여름과 가을에 뿌리와 줄기가 부실한 대통합민주신당에 왜 그 많은 대권 주자들이 우루루 몰려가서, (뿌리와 줄기를 건실하게 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예쁜 꽃으로 피어 보려고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무슨 정치적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몇 개월 못 가서 튀어 나올 결정을 왜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또 한 번 2류 국가로? 토양과 뿌리와 줄기를 보면 나중에 피어날 꽃을 안다. 지금 하는 정치 행위를 보면 1~2년 뒤의 정치적 결실을 짐작할 수 있다. 암만 봐도 범진보의 명운은 어둡다. 486의 명운도 그렇다. 물론 싸움은 상대가 있으니 한나라당이 죽을 쑨다면 어찌어찌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설사 운이 좋아 이긴다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명운은 그리 밝을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19세기 말처럼 거대한 정치사회적 격변기에 정치가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여, 또 한 번 중국, 일본, 러시아에 밀려 2류 국가로 굴러 떨어지지 않나 하는 자조와 한탄을 억누를 수 없다. –끝-
2010-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