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째 남북문제 천착.."통일은 물이 차서 넘치듯 이뤄져야"
북한에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기다려야 된다. 통일이 물이 차올라서 넘치듯이 이뤄져야지 어거지로 `통일, 통일' 한다고 되질 않는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 시작은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부터일 것이다.
1955년 데뷔작 `탈향' 발표를 시작으로 56년째 남북 분단문제에 천착해온 원로작가 이호철씨는 16일(현지시각)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이렇게 말했다. 최근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독재 정권이 `민주화 열풍'에 잇따라 무너짐에 따라 우리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북한에 쏠리고 있다고 운을 떼자 그는 "북한에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느냐고 궁금해하겠지만, 사람들이 꿈에서조차 권력을 무서워하는 게 이북이다. 그런 공포를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권력이 딱 버티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원산에서 태어나 전쟁 중 월남한 그는 `문학예술'에 단편 `탈향'을 발표해 등단한 이후 `판문점', `소시민', `서울은 만원이다' 등 남북분단을 소재한 한 작품만으로 60년 가까이 글쓰기를 일관해오고 있다. 또 유신헌법 개헌 반대 서명을 주도했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24명 중 한 명이기도 한 그는 문단의 대표적인 재야 민주화 인사로 꼽혀왔다. 그런 그가 지닌 북한 정권에 대한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가혹하다. 그는 "문학은 맨 끝머리에 가면 `독재는 안 된다'는 것에 이르는데 북한은 문학도, 작가도 없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재 국가"라고 혹평했다. 그의 이번 부다페스트 방문은 자신의 중편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의 헝가리어 번역본 출간 기념회를 위해서다. 이로써 1996년 출간된 `남녘사람 북녘사람'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영어, 독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모두 1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동구권 언어로는 폴란드어 번역본에 이어 두 번째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그동안 헝가리어로 번역된 한국 작품으로는 `황순원 단편선'(황순원 작), `엄마의 말뚝'(박완서 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작) 등에 이어 네 번째다. 그는 "헝가리어 번역본을 출간한 헝가리 출판사의 사장이 `자기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북한에 가서 북한군에게 의료지원을 했다'고 말합디다. 공산주의를 경험한 헝가리에서 우리의 남북관계는 관심이 있을 만한 대상이다. 폴란드어 번역본이 발행됐을 때도 관심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올해 79세의 나이로 어느덧 현역 작가로는 최고참이 돼버렸다는 그는 "남북관계가 있는 한 나는 계속 쓸거리가 있다. 작가로선 참 요행이다. 여생도 남북관계, 귀향에 관한 얘기를 쓸 것이다. 나의 글쓰기는 `탈향'에서 `귀향'까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jungwoo@yna.co.kr
2011-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