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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한국 작가들에 고함
    4대강이 강으로서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우리 정신의 토대가 붕괴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 정신이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만물의 관계 속에서 정신이 형성되고, 만물의 근원에 강·바다·산·나무·풀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파헤치고 있는 낙동강을 한 번 가보세요. 참혹합니다. 물새와 나루터의 시적 정경들이 전면적으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한 달 뒤면 이것들은 사라지고 수로만 보게 될 것입니다. 작가들의 비근대적인 강의 의미를 글로 써서 들려줘야 합니다.”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63)은 1990년대 문학을 떠났다.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였던 그는 “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개인적 문제, 그리고 현실의 모순까지 떠맡았던 문학이 언제부터인가 협소한 범위로 한정돼 버렸다”며 문학을 버리고 91년부터 ‘녹색평론’을 펴내기 시작하며 생태운동으로 돌아섰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한국 작가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국작가회의(이사장 구중서) 자유실천위원회의에서 개최한 ‘통찰과 연대’ 포럼에서 최근 ‘대지를 떠난 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김씨는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말의 힘”이라며 “작가들이 기층 민중의 언어로 근대화 속에 사라져가는 생태적 삶의 가치들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소설가 이시무레 미치코의 소설 <슬픈 미나마타>(달팽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원제가 <고해정토(苦海淨土)>인 이 소설은 50년대 일본 미나마타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산업공해병인 ‘미나마타병’에 대해 평범한 주부였던 작가가 환자들과 가족들을 만나 취재한 자료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김씨는 “미나마타 사건은 일본 질소비료공장에서 유기 수은을 바다로 배출하면서 생긴 병으로 근대산업문명이 가져온 큰 재앙 중 하나”라며 “이시무레는 ‘문학은 주술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며 미나마타 사건 희생자들의 내면이 들어가 희생자들의 고통과 일치하는 글을 썼다”고 말했다. 김씨는 ‘근대는 원죄’라고 한 이시무레의 말을 인용해 “모든 생류들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키고 인간과 인간을 분리시키는 것은 근대”라고 말했다. 김씨는 “작가는 삶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며 “엘리트의 언어가 아니라 기층 민중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해 한국 문단에 논란을 일으킨 가라타니 고진을 비판하기도 했다. 김씨는 “근대문학이 망했다면 새로운 차원의 문학은 주술사로서의 말의 힘을 회복시키고 민중과 생류들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관계망 속에서 사는 시원적 인간 존재를 회복하려는 글쓰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신경림 시인이 4대강 공사 현장을 보고 “여기 와서 보니 공사하는 사람도 천벌을 받고 이것을 말리지 못하는 사람도 천벌을 받는다”는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며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문학이다. 현장을 가서 보고 절망하고 오라”고 작가들에게 권했다.
    2010-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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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재단 밝혀… “안상수 외압 문제는 분리해 논의”
    ‘봉은사 직영사찰 외압’ 논란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조계종 총무원과 봉은사가 조만간 사태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중진 스님들과 승가·재가단체 관계자로 이뤄진 중재단은 31일 자승 총무원장과 봉은사를 각각 방문, 사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양측과 사부대중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제안해 긍정적 답변을 얻었다.중재단의 한 스님은 이날 “양측에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의 타당성 여부 등을 논의하는 공론의 장, 즉 토론회를 하자고 했다”며 “토론회에서 총무원 측은 직영사찰의 정당성을, 봉은사 측은 부당성을 주장할 것이기 때문에 사부대중이 양측의 의견을 들어 중재안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총무원 관계자는 “총무원은 토론회 수용의사를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비쳐왔다”며 “1일 내부 회의를 거쳐 토론회 참여 여부 등을 최종 확정한다”고 밝혔다. 봉은사 관계자는 “명진 스님이 지방에 내려가 있어 부주지 진화 스님이 중재단을 만났다”면서 “토론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명진 스님의 뜻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총무원이 1일 토론회 참석을 확정할 경우 중재단과 양측은 조만간 토론회 실무협의기구를 만들어 토론회의 안건·형식·일정 등을 확정하게 된다.토론회에서는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외압 여부는 뒤로 미루고, 우선은 봉은사 직영사찰의 타당성 여부를 논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재단 관계자는 “외압 여부와 직영사찰 건을 분리하는 게 사태해결을 더 쉽게 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며 “두 문제를 한꺼번에 거론할 경우 양측의 대립이 더 심각해질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중재단에는 실상사 도법 스님(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화계사 주지 수경 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대표인 퇴휴 스님, 설법연구원장이자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의 동출 스님 등과 참여불교재가연대·대한불교청년회·조계종 중앙신도회 등 10여개 단체가 참가하고 있다.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201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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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큰 사찰에 정권비판 주지 놔둬서 되겠나”
    서울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정권을 비판해온 주지를 놔둬서 되겠냐’면서 직영사찰 전환에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압력이 있었다고 밝혔다. 명진 스님은 21일 오전 서울 삼성동 봉은사 법왕루에서 가진 일요법회에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지난해 11월13일 오전 7시30분 프라자호텔 식당에서 자승 총무원장을 만나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놔둬서 되겠느냐’라고 한 얘기를 전해들었다”며 “(봉은사 직영 문제는)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명진 스님은 “당시 자리에는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도 있었다”며 “이 자리에 배석한 김영국 거사가 작년 11월20일 밤에 나를 찾아와 이 같은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명진 스님이 거론한 김영국 거사(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는 21일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명진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맞다”고 확인했다. 김 위원은 또 “프라자호텔 식당은 일식당 도원이었다”고 덧붙였다. 명진 스님은 “만약 내 말이 근거 없고 허황된 얘기라면 내 발로 봉은사를 나가 조계종 승적부에서 이름을 지울 것”이라며 “만일 안상수 대표가 자승 스님과 이런 야합이나 밀통을 했다면 원내대표직을 내놓고 정계에서 은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명진 스님은 당시 안 대표의 발언에 “자승 스님은 ‘거기는 임기가 보장돼 있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임기도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또 “제가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1억원을 전달한 것을 지칭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안 대표가)‘돈 함부로 운동권에 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며 “자승 스님이 ‘봉은사는 재정이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돼 (주지라고) 쓸 수 없다. 개인적으로 준 것을 원장이라고 해도 뭐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명진 스님은 “총무원과 중앙종회는 봉은사를 왜 직영사찰로 하는지 등에 대해 봉은사 신도와 사부대중이 알 수 있도록 명확하게 답을 해야 한다”며 “합당한 명분이 없다면 40년 중노릇을 걸고 (직영사찰 문제를) 단호히 막겠다”고 밝혔다.이에 대해 안상수 원내대표와 고흥길 위원장은 자리에 참석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은 전면 부인했다. 안 원내대표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자승 스님이 좀 만나자고 해 고 의원하고 나하고 세 사람이 식사를 했다”며 “그때 템플스테이 예산 증액과 불교계 숙원사업 협조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봉은사 직영사찰 압력’ 주장에 대해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불교 신도가 아니라서 누가 명진 스님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고 위원장 역시 “언제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한 번 뵌 일은 있으나 그런 이야기는 전혀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도재기·강병한 기자
    201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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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졸중 16년간 투병하던 원로 작곡가 박춘석씨 14일 오전 별세,
    뇌졸중으로 16년간 투병하던 원로 작곡가 박춘석씨가 1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80세.가요계에 따르면 박씨는 이날 오전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빈소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1930년 5월8일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졸업했다. 본명은 의병(義秉). 경기중 4학년(고교 1년) 때 길옥윤ㆍ베니 김 등의 제의로 명동 '황금클럽' 무대에 서면서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54년 '황혼의 엘레지(노래 백일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아리랑 목동(박단마)' '비 나리는 호남선(손인호)' '삼팔선의 봄(최갑석)' '사랑의 맹세(패티김)' '바닷가에서(안다성)' '밀짚모자 목장아가씨(박재란)' '호반에서 만난 사람(최양숙)' 등을 발표하며 인기 작곡가로 부상했다. 가수 이미자와의 만남은 그의 음악 세계에 큰 변화를 몰고 온다. 1964년 이미자와 콤비시대가 개막되면서 작풍이 트로트로 급선회한 것. 이미자와는 그동안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 '흑산도 아가씨' '황혼의 블루스' '그리움은 가슴마다' '삼백리 한려수도'를 비롯해, 30주년 기념음반 타이틀곡인 '노래는 나의 인생'까지 무려 500여 곡을 통해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가요연구가 박성서씨는 "이미자에게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별칭의 왕관을 씌워준 이가 바로 고인이었다"며 "그의 히트넘버 4분의 1을 이미자가 불렀고, 이미자 히트넘버 3분의 1 또한 박춘석이 만든 노래인 셈"이라고 전했다.그는 1967년 3월 시민회관에서 '박춘석 가요창작 999곡째 발표'라는 이색 타이틀 공연을 펼친 데 이어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춘석 창작가요 2000곡 기념공연' 무대를 국도극장에서 가졌다.박성서씨는 "국내 히트 작곡가로의 명성은 일본으로까지 이어져 1978년 12월 일본 콜롬비아측의 의뢰로 일본 톱 가수 미소라 히바리에게도 곡을 취입해 외국인 최초로 신곡을 써준 인물로 기록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작곡가 박춘석의 이름 뒤에는 항상 '사단(師團)'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60~1970년대 패티김, 이미자, 남진, 나훈아, 문주란, 정훈희, 하춘화가 박춘석 사단의 멤버였다.고인은 이들과 함께 '가슴 아프게' '공항의 이별'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비내리는 호남선' '초우' '물레방아 도는데' '사랑이 메아리칠 때' '바닷가에서' '가시나무새' '마포종점' 등 한국인의 가슴을 적신 숱한 명곡들을 만들어냈다. 그의 노래는 대중음악의 예술적 가치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아시스레코드사 전속작곡가, 지구레코드사 전속작곡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 거성레코드사 사장 등을 거치며 1950~1980년대 한국 가요계를 이끌어온 그는 국내 대중가요 개인 최다인 2천700여 곡을 작곡했고,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개인 최다인 1천152곡이 등록되어 있다. 2001년에는 영국 그로브음악대사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그도 1994년 8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모습을 감췄다. 16년간 투병하면서 거동은 물론, 언어장애로 의사표현도 하지 못했다. 고인은 '음악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래서 간병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동생 박금석(77)씨가 맡았다. KBS 방송가요대상, KBS 가요ㆍ가사ㆍ음반기획상, MBC 10대가요제 특별상, KBS 가요대상 작곡상, 제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1994), 옥관문화훈장(1995) 등을 수상했다. 지난해 그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박춘석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가 발족했다.
    2010-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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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 악녀에서 ‘오라이’녀로 변신하기 까지
    KBS 2TV 수목드라마 ‘추노’에서 좌의정 이경식의 딸이자 냉혈한 황철웅(이종혁)의 장애가 있는 아내로 등장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하시은(26)을 만났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나게 된 그녀였기에 다른 인터뷰보다 기대가 더 컸다. 한 시간여 진행된 인터뷰를 마친 후 느낀 소감은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다.이유는 이랬다. 방송 3회가 나간 후 인터뷰 제의를 건넸지만 그녀는 선뜻 응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 재차 인터뷰 제의를 건넸고 그때야 비로소 그녀는 인터뷰에 나섰다. 인터뷰를 고사한 이유를 묻자 그녀는 “깜짝 인기라는 생각에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추노’의 이선영이 주인공도 아니고 멋진 대사가 있는 인물도 아니었기에 제2의 문소리라는 시청자의 평가는 곧 수그러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하지만 한 달여 만에 다시 드라마에 등장한 그녀는 식지 않은 호평을 받았다. 용기를 얻은 그녀는 이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케이블 채널 게임 자키로 방송을 시작한 하시은은 2004년 MBC ‘두근두근 체인지’라는 드라마를 통해 연기 신고식을 치렀다. ‘김밥? 이게 평민들만 먹는다는 거?’라는 대사를 여전히 기억할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악녀 역을 표현했지만 그 이후 두각을 드러낼 기회는 쉬 오지 않았다.“오디션도 많이 보러 다녔어요. 하지만 다 탈락하고 말았죠. 연기 잘한다고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역할과 이미지가 맞지 않거나 다른 사람이 되곤 했어요. 그래서 실망도 많이 했어요.”'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온다'라는 말이 있다. 그 얘기는 포기하지 않고 준비해온 그녀에게도 통했다. 2009년 방송된 TV소설 ‘청춘예찬’은 그녀가 이제까지 숨겨둔 끼와 연기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버스가 출발할 때 ‘오라이~!’라고 외치고 버스표를 내지 않는 학생에게 눈을 흘기는 버스 차장 역이었어요. 크지 않은 역이었지만 제가 누구인지는 제대로 보여 드릴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열심히 했더니 이진서 PD가 ‘대기만성(大器晩成)형 연기자’라고 불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더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제2의 문소리’로 시선 집중 ‘추노’에서 그녀는 뇌성마비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표현하며 시청자의 안타까움을 사고있다. 이 모습은 영화 '오아시스'로 각종 상을 휩쓴 문소리와 비교될 정도다.“대사는 없지만 몸으로 표현하려고 애썼어요. 촬영이 끝나면 입도 혀도 입술도 다 아팠지만 요즘에는 시청자의 호평에 아픈지도 모르고 해요.”좀 더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것이 여배우의 욕심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배우로서의 욕심보다는 연기자로서 인정받는 것이 먼저라며 좀 더 얼굴을 찡그린다고 했다.“처음에 제의를 받을 때만 해도 주저했어요. 분명히 문소리 선배와 비교될게 뻔했으니까요. 아주 잘해야 조금 한다는 얘기를 듣거나 잘 못하면 욕만 먹고 끝날 것 같아서 더 열심히 준비했어요. ‘진짜 연기자가 돼보자’고 마음도 먹고요.” 시청자의 사랑을 자신 보다 부모님이 더 좋아한다는 그녀는 활짝 웃어 보였다.“무명이 길어서 부모님도 저만큼 마음고생이 많으셨어요. 하지만 한 번도 그만두라는 한적은 없어요. 지금까지 ‘추노’에서 나온 모습만으로도 ‘장하다 우리딸’이라고 칭찬해 주셨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노력하는 배우가 될 거에요. 지켜봐 주세요.”ljh423@cbs.co.kr
    201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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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 북한 1차사료 첫 발굴
    함경남도 함흥의 영생학교 교사이자 중하리 교회 교인이었던 이근재가 그 지역을 찾아온 다른 교사로부터 서울에 있는 민족대표들의 기미독립선언서 발표 계획에 대해 들은 것은 1919년 2월28일. 그는 같은 교회 교인인 재목상(材木商) 한영호, 전도사 조영신 등과 함께 3월3일 함흥 장날을 이용해 대규모 만세 시위를 계획했다. 마침 서울에서 배송된 1200부의 기미독립선언서가 원산에 도착했고, 조영신은 3월1일 원산에 가서 독립선언서를 받아왔다. 학생들과 함께 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만들어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비슷한 시기 함남 홍원군에서 농사를 짓던 천도교 교구장 강남섭 등 천도교인 8명은 교인들을 교당에 모아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벌일 예정이니 우리도 들고 일어나야 한다’는 취지로 시위 참여를 독려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이 3일 새벽 대규모 예비 검속을 실시, 이근재 등 기독교 지도자들과 이봉선 등 학생 지도자들이 구속됐다.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 학생과 시민 1000여명이 3일부터 함흥 거리로 뛰쳐나와 연일 만세 시위를 벌였다. 당황한 일제 경찰은 시위대에 발포했으며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민족문제연구소가 26일 공개한 일본인 검사 이시카와 노부시게의 함경도 지역 3·1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 자료는 3·1운동의 지방 확산 연구 등에 중요한 자료다. 지방의 3·1운동은 교사·종교인·학생 등 서울과 끈이 있는 지식인들이 주동됐지만, 그것이 2개월 이상 전국적으로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농민 등 일반 민중이 합세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이 실증된다. 특히 함경도 지역은 캐나다 기독교장로회와 천도교의 향촌 공동체가 대중 동원에 큰 힘을 발휘했다.3·1운동을 연구하는 이정은 수석연구원(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은 3·1운동과 관련한 북한 지역 1차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자료는 3·1운동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한다. 그는 “3·1운동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이어져온 향촌 공동체가 당시까지도 작동하면서 운동이 지식인 사회에 갇히지 않고 전국화될 수 있었다”며 지방 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경남 함안·합천, 충남 홍성 등의 지방 자료들이 남아있다.이번 자료에는 이시카와 검사가 함흥지법에 기소한 115건의 보안법 등 위반 사건에 연루된 540여명의 명단이 수록돼 있다. 이근재, 한영호 등처럼 경성고법(3심)에 상고해 판결문 기록이 남한에 남아 있는 경우에는 유족의 신청 등에 따라 보훈처 독립유공자로 포상됐다. 하지만 항소하지 않거나 태형 등으로 즉심 처리된 사람들의 명단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홍원군 천도교 교구장 강남섭의 경우 주동자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아직까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지 못했다.이 자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10대 중반~20대 후반으로 교사, 종교인, 농업 등에 종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함경도 지역은 전국에서도 학교 비율이 높아 운동의 저항성이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3·1운동 당시 전국의 일반계 사립학교(486개) 중 26.8%인 123개교가 함경남도 지역에 있었다. 또 토착 종교인 천도교 외에도 캐나다 기독교장로회가 들어와 있어 교인들 규합도 용이했다. 저항성이 강한 만큼 일제의 탄압도 가혹했다. 일제가 헌병대는 물론 소방대까지 동원해 평화적인 시위대에 총칼과 소방용 갈고리까지 휘두르며 진압하자, 캐나다 선교사 던컨 맥래가 함흥경찰서장을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승태 연구위원은 “서울의 민족대표들도 최고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는데, 함경도 지역에는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사람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한편 이번 발굴된 자료에는 서울의 보성사에서 인쇄한 기미독립선언서 원본이 첨부돼 있어 눈길을 끈다. 독립선언서의 뒷장에는 ‘순사가 (길에서) 주운 종이’라고 적혀 있다. 김승태 연구위원은 보성사에서 인쇄한 2만1000장의 독립선언서 원본이 전국으로 배포됐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독립기념관 등에 보관된 것이 2~3점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립선언서 원본은 “오등(吾等)은 자(慈)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을” 부분에서 ‘조선(朝鮮)’이 ‘선조(鮮朝)’로 표시돼 있다. 또 이시카와 검사가 1908년 통감부 검사로 내한해 의주·전주 재판소 등에서 근무하며 검토한 악법인 ‘태형령’, ‘한국형법대전 개정초안’ 등의 원본 자료도 발견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자료를 포함,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활용한 각종 자료들을 함께 모은 자료관을 열 계획이다. 글·사진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201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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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시 수정안은 건물집합소… 국토황폐·국가재정 파탄 초래
    신도시는 왜 건설하는 것인가, 왜 기존 도시는 수십년간 방치하면서 수많은 신도시를 건설해 국토를 온통 부동산 상품전시장으로 만들고 있는가? 오늘날 선진문명사회에서 신도시 건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리적·역사적 근거도 없는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자연생태계를 파괴한다는 것 자체가 진리에 역행하는 명백한 모순이기 때문이다.도시는 거대한 사회공동체로 그 기능과 역할에 의해 만들어진다. 만일 정치적·경제적 필요로 도시를 만든다면 사회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 도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지구상에는 두 종류의 도시가 존재한다. 하나는 1998년 프로야스가 제작한 SF 영화 <다크시티>의 암흑의 도시처럼 어제와 오늘이 전혀 다른 도시다. 이 도시는 끊임없는 건설로 온통 파헤쳐져 늘 시끄럽고 불안과 혼란의 일들이 벌어지지만 사람들은 이 무질서의 자체가 비정상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변질되지 않고 늘 같은 도시로 안정과 평화로 조용하며, 때와 장소에 따라 다이내믹한 삶이 벌어진다. 다이내믹한 삶이란 돈을 벌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경제성장·국내총생산(GDP)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자유롭고 균등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계획안(조감도)은 도시가 아닌 건물집합소다. 수도권 과밀해소와 균형발전은 이런 도시의 건설로 해결할 수 없다. 저장용량 무제한 웹하드 매달 무료? 그러나 암흑의 도시는 그 자체가 모순이므로 아무리 그 형태와 기능이 비뚤어져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곳의 사람들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본유관념에서 멀어져 이기주의에 전염되어 과대망상·허세·욕구도착증 등의 고질병을 앓는다. 그리고 도시의 주 요인과 개념은 기업유치·분양의 부동산 거래 행위로 변질되어 국토 파괴의 심각한 비상사태에까지 이른다. 그렇다면 과거 신도시는 왜, 무엇을 근거로 건설되었는가? 신도시는 기원전부터 고대·중세·근세에 걸쳐 건설되었지만, 17세기 이후 식민지 시대에 유럽의 정복자들에 의해 건설된 미국과 캐나다의 맨해튼·뉴올리언스·몬트리올 등을 일컫는다. 또 남미에서는 금·은·보화의 재물을 찾아 온 에스파냐 정복자들이 고대 잉카문명의 도시를 약탈하여 멸망시키고 새로운 도시들을 마구 세웠다.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국무장관 마셜의 유럽복원계획(ERP)에 의해 1947년부터 4년간 유럽 대부분의 도시를 복원하였고, 영국은 웨스트 밀랜드·머지사이드·리버풀·맨체스터의 도시들을 재개발했다. 그런데 유럽의 재개발·신도시는 한국처럼 광대한 자연을 불도저로 확 밀어버리고 건물들을 이리저리 배치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연을 허허벌판으로 만들고 벼락치기 건설로 엄청난 이익의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무지막지한 건설을 유럽에서 유래된 신도시의 유행인 것처럼 속이고 공기업·지자체가 합법적인 자연파괴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왜 유럽은 특별한 건축양식도 아닌 19세기 시골의 하찮은 건물까지 굳이 똑같이 복원하였는가? 왜 한국처럼 주상복합·고층아파트, 번쩍거리는 수백층을 지어 떼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들에게 도시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만들어진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프랑스는 1970년대 이후 심각한 주택 부족으로 파리 외곽 싸구려 빈민가 ‘비동빌(bidonville)’을 허물고 신도시를 개발했지만 결국 수백년의 과거가 현재와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깨끗하고 밝은 현대식 도시를 만들면 언젠간 도시와 시민이 서로 조화를 이룰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수백명의 한국 관료들이 신도시 모델로 방문했던 파리 근교의 신도시들은 수십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성숙하지 못하고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늙어가고 있다. 도시는 역사적 가치에서 성숙해야 하는데, 늙으면 헐고 교체해 잠시 반짝거리다 죽는 별똥별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에 마구 건설되는 한국 신도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사회적·문화적·인류학적으로 심각한 미래가 보인다. 도시는 건물과 자연의 배치가 아니라 인류의 운명을 책임지고 결정하는 장소이다. 고층아파트·상가·빌딩의 부동산 신상품으로 처음에는 각광 받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낡아 비참해지는 암흑의 도시가 된다. 그런데도 한국 정치가들은 암흑 도시를 놓고 원안 고수·수정 관철을 외치며 격렬하게 충돌한다. 그들에게 신도시는 기술주의의 레고 쌓기, 자유주의의 도박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운명이 달린 도시를 정치권력 쟁취를 위한 대용물로 착각하고 있는 한 한국은 엄청난 국고 낭비·재산 유실로 국토 황폐와 국가재정의 파산을 겪게 될 수 있다.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계획안은 다른 신도시와 마찬가지로 도시가 아닌 건물집합소다. 수도권 과밀해소·균형발전은 이런 도시 건설로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국토를 재벌기업에 헐값으로 넘겨 원형지 개발을 하는 것이나 터무니없는 행정수도를 운운하는 것 모두 국토를 황폐하게 만들고 차별을 조성하며 땅값만 치솟게 만드는 결과는 똑같다. 테오도르 폴 김 theodorepaul@naver.com
    2010-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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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 “방통심의위, 공익적 글 삭제 요구는 위법”
    행정소송 대상 인정…‘여론통제’ 소송 이어질듯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의 인터넷 포털업체에 대한 블로그 게시물 삭제 요구는 행정처분이기 때문에 행정소송 대상이라는 첫 판결이 나왔다. ‘강제력이 없어 행정처분이 아니다’라고 한 기존 판결들과는 다른 판단으로, ‘인터넷 여론 통제’에 대한 법적 대응의 길이 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장상균)는 환경운동가 최병성(47) 목사가 국산 시멘트의 유해성을 지적한 블로그 게시글의 삭제를 요구한 방통심의위를 상대로 낸 시정요구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방통심의위 위원 9명은 대통령이 위촉하고 위원장 등 3명은 공무원 신분이 보장되며, 삭제 요구를 받은 업체는 조처 결과를 방통심의위에 통보할 의무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삭제 요구는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행정처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삭제 요구가 적법한지를 법정에서 다툴 수 있어야 온라인에서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어 “최 목사가 연구소에 의뢰한 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공익적 목적의 글을 쓴 사실이 인정된다”며 “비방 목적의 명예훼손으로 보고 삭제를 요구한 방통심의위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방통심의위 쪽은 포털업체에 대한 ‘시정 요구’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민간 독립기구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행정청이 아니며, 삭제 요구는 단순히 권고적 효력만 있을 뿐”이라는 이유로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이번 판결에 대한 성명에서 “방통심의위의 권고는 사실상 국가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져 온 만큼, 판결을 계기로 자의적 게시물 삭제와 국가 검열이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국산 시멘트의 유해성 문제를 지적해온 최 목사는 정부의 대책 마련에 기여한 공로로 2008년 ‘교보생명환경문화상’을 받은 바 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해 4월 한국양회공업협회의 신청을 받아 ‘국산 시멘트 공장들이 산업폐기물을 원료로 발암물질이 포함된 시멘트를 만들고 있다’는 등의 글 4건을 삭제할 것을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요구했다. 최 목사는 글이 삭제되자 방통심의위에 이의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201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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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속에 든 새를 병을 깨지 않고 꺼내야 하는 상황” 등...
    문화체육관광부 신재민 1차관은 4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한 지붕 두 위원장’ 사태와 관련, “오는 8일 예술위 위원들이 모여 전체회의를 하는 만큼 그 논의 결과를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신 차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태를 “전례가 없는 일” “병속에 든 새를 병을 깨지 않고 꺼내야 하는 상황” 등이라고 표현하며 난감해했다. 그러나 “병속에 새를 집어넣은 게 정부인데 무책임한 태도 아니냐”는 질문에는 “무책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나 김정헌 위원장이나 서로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 제기되는 유인촌 장관의 책임론과 이에 따른 사퇴 주장에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 파문을 낳은 유 장관의 “재미있지 않겠어”라는 발언과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신 차관은 “재판에서 진 것은 부실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책임을 인정한다”며 “변호인단 교체를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또 “법원의 판결은 김 위원장의 직위를 인정한 것으로, 권한까지 인정한 것이냐는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항고심에서는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주도로 재착공이 추진되는 예술인회관에 대한 정부의 예산 지원 논란과 관련, 그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 차차선을 찾는 차원에서 이뤄졌고, 국회가 동의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예술위원회는 8일 오후 4시 김 위원장의 직무수행 범위와 예우, 보수 등에 대한 논의를 위한 전체회의를 열 예정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도재기 기자
    201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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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500명 규모..현 정부 들어선 처음
    남한 예술인들이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대규모 평양 공연을 추진하고 있다. 사단법인 통일문화예술인협회(이사장 홍성덕)는 28일 문화예술인들이 앞장서 남북 관계의 화해와 협력을 강화하고 통일문화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오는 4월께 평양 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예술인 500명이 참가하는 '통일 예술제' 공연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 공연이 성사되면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처음으로 남한 예술인들이 평양에서 공연하는 사례로 기록된다. 이 협회는 이미 북한 측과는 공연을 개최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며 곧 통일부에 방북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홍성덕 이사장은 "문화예술인들이 앞장서 경색된 남북관계에 화해 무드를 조성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면서 "우리 정부가 행사의 좋은 취지를 감안해 신청서를 승인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2003년 8.15 행사 당시 평양을 방문하고 그해 10월 정주영 체육관 개관 기념공연을 성사시키는 등 수차례에 걸쳐 북한에서 공연한 바 있다. 이 협회는 판소리와 민요 등 전통문화 공연단과 실무팀을 포함해 250명에 달하는 대규모 대표단의 방북을 추진 중이며 북한 측도 똑같이 250명의 참가단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행사는 씨름, 제기차기, 투호,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를 함께 즐긴 뒤 남북 예술인이 함께 대규모 강강술래를 하고 '옹헤야' 등 민요를 함께 부르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통일문화예술인협회는 남북 예술인이 함께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2004년 출범한 단체로 홍 이사장은 대통령 표창을 받고 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이사장을 맡는 등 여성국극계를 대표하는 예술인이다. jsa@yna.co.kr
    2010-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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