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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득영 사진전 'two faces'
    치과의사 출신의 사진작가 이득영(46)은 근 몇 년 간 한강을 주제로 한 일련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2006년 한강 둔치의 간이매점 69개를 연속 슬라이드처럼 보여주는 사진 작업을 시작해 2008년에는 항공 촬영을 통해 한강의 25개 다리와 다리 진출입로 등을 찍은 사진작업 등 독특한 시선의 작업을 통해 한강과 서울을 바라봤던 작가다. 계동 송원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개인전 '두 얼굴'(two faces)전의 소재 역시 한강이다. 지난 4월 작가는 유람선부터 행정선, 청소선까지 한강을 오가는 다양한 배를 타고 강변의 모습을 찍었다. 미사리 인근에서 시작해 김포대교까지 배를 타고 오갈 수 있는 한강 줄기를 따라 편도 47km에 이르는 강의 남쪽과 북쪽의 모습을 동시에 찍은 사진들은 파노라마처럼 1~2층 갤러리 벽을 타고 길게 펼쳐진다. 위는 강북, 아래는 강남의 모습을 담아 벽을 따라 길게 가로로 걸린 사진들의 전체 길이는 87m에 이른다. 긴 사진 속 풍경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서울의 두 얼굴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풀숲이 지루하게 나타나는가 하면 어느 순간에는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듯 싶더니 갑자기 휑한 벌판이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어느 지점에선 타워크레인이 숲을 이룬다. 강 하나만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강남과 강북지역의 모습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과거에 지어진 건물들, 최근 들어선 건물들, 그리고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들은 '압축 성장 도시' 서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지나가는데 눈에 보이는 풍경들이 재미있더라고요. 지역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고 건물들이 달라져요. 교각들 모습도 얼마나 변화무쌍한데요. 아파트들도 다 달라요. 각 아파트는 지역별로 그 시대에 세워질 수 있는 가장 세련된 건물들이었거든요. 이런 경험을 좀 더 시각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구상하기 시작했죠."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처음에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에서 자동차를 타며 사진을 찍었지만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다 2008년 한강 유람선을 타고 작업을 했지만 제한된 구간만 운행하는 유람선의 한계 때문에 아쉬워 하다 이번 작업을 하게 됐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사진을 찍었지만, 이후의 작업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결과 1만 3천여 장의 사진을 일일이 잘라 이어붙인 사진들은 원래 한 장의 사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이어붙인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벽을 따라 사진 속 장소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작가의 입에서는 각 지역의 개발 역사가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치밀하게 사전자료를 조사한 덕택이다. 그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서치"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원래 서울의 역사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리서치를 많이 했죠. 도시계획이나 아파트 연구자 등 관련 분야 사람들도 많이 만났죠. 모든 작업에서 리서치가 중심입니다. '왜'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시각적인 이미지 외에도 그게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깊이 있게 들어가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작가는 앞으로 10년 단위로 같은 작업을 통해 '압축 성장 도시' 서울이 변화하는 과정을 계속 추적해 나갈 계획이다. 이미 2008년 유람선을 타고 찍은 사진들과 2년 후 찍은 사진들 속에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 2년이 이른바 '한강르네상스' 사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진 시기였기 때문이다. 2006년 찍었던 한강 둔치의 간이매점만 해도 모두 거대 프랜차이즈의 편의점으로 대체돼 이제는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게 됐다. 10년, 20년, 30년 후에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이 이득영의 사진 속에 등장하고 사라질까. 전시는 12월19일까지 계속된다. ☎02-735-9277. zitrone@yna.co.kr
    201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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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와룡동 서울과학관 자리로 이사 완료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달 말 서울 종로구 와룡동 옛 국립서울과학관 건물로 청사를 옮김에 따라 24년 만에 광화문 시대를 마감한다. 문화부는 오는 30일까지 청사 이전 작업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 1일부터 옛 서울과학관 자리에서 업무를 시작한다. 문화부는 이달 초 본부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부터 본격적인 이사에 들어가 30일 장관실을 비롯해 일부 사무실을 이전하는 것을 끝으로 청사 이전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문화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에 따라 2013년 세종시로 청사를 옮기기로 돼 있어 1986년부터 사용해 온 광화문 청사와는 완전히 작별하게 됐다. 1961년 미국 빈넬사가 현 주한미국대사관과 함께 쌍둥이 건물로 완공한 광화문 청사는 내각사무처와 국가재건최고회의, 경제기획원을 거쳐 1986년부터 문화부(당시 문화공보부)가 써 왔다. 문화부 이전으로 반세기에 걸친 정부청사의 소임을 끝내는 셈이다. 이곳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주요 정책이 결정됐으며 특히 '녹실(綠室)로 불리는 3층 장관실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사용했던 방이다. 광화문 청사는 G20 정상회의가 끝난 뒤 다음 달 25일을 전후해 착공식을 갖고 리모델링을 통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바뀐다. 정부는 수도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에 들어서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한국의 발전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종합박물관 겸 역사문화관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총 사업비 484억원을 들여 6,446㎡의 터에 연면적 9,500㎡ 규모로 들어설 역사박물관은 전시와 교육, 연구, 부대 시설을 갖추게 된다. 문화부 관계자는 24일 "광화문 청사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와 두뇌들이 중요 정책을 결정하던 곳이었다"며 "다시 돌아올 일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와 발전상을 제대로 보여 주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kong@yna.co.kr
    201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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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선정.국회처리에 시간..장기화 전망
    일본의 조선왕실의궤 등 한국 도서 반환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산케이신문은 17일, 일본 국내청이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문화재의 한국 반환을 위한 한일도서양도협정의 연내 국회처리가 절망적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 정부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조선왕실의궤 등의 궁내청 보관 도서를 연내에 신속하게 양도할 예정이었지만 협정안의 국회심의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양도 대상 문화재의 조사, 한국과의 협의 등에도 시간이 필요해 현재 열리고 있는 임시국회에 협정안을 제출하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한국에 양도할 도서의 선정과 조정에 난항이 예상된다면서 "아직까지 (양도 대상을) 확실하게 확정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궁내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정부 관계자도 '전혀 협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상황까지 이르지 못했으며 이번 국회에서는 무리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야당인 자민당 내에서는 "황실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졸속처리는 안된다. 확실히 논의해야 한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협정안이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에 국회에 제출된다 해도 통과가 곤란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연내 한국 도서 반환은 사실상 물 건너 갔으며 내년 정기국회에서의 처리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지난 8월 발표한 한일 강제병합 100년 담화에서 "일본이 통치기간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되어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인도하고자 한다"고 밝힌바 있다. kimjh@yna.co.kr
    20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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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장일까지 350만명 웃돌 듯
    국내 최대의 역사문화축제인 '2010 세계대백제전' 입장객이 개장 22일째인 9일 오전 목표치인 260만명을 돌파했다. 세계대백제전조직위원회(위원장 최석원)에 따르면 이날 정오까지 4만2천300명이 입장하면서 지난달 18일 개장 이후 누적 입장객이 내국인 247천3천800명, 외국인 13만8천500명 등 261만2천300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11만9천명이 찾은 꼴이다. 조직위는 지난주부터 각급 학교의 수학여행단과 각종 모임의 단체 관람객 방문이 이어져 폐장일인 오는 17일까지 입장객이 350만명을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단체 관람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행사장과 주변이 극심한 혼잡을 빚고 있다"며 "단체 관람객들이 관람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행사장 주변에 주차와 안내 인력을 더 투입하고 시설물 관리에도 신경을 쓰겠다"고 말했다. sw21@yna.co.kr
    201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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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사 계약 만료 앞두고 연예기획사들 영입경쟁
    "억만금을 줘서라도 강호동, 유재석을 잡아라!"예능 MC계 양대 산맥을 차지하고 있는 강호동(40)과 유재석(38)이 소속사 전속계약 만료를 앞두면서 연예기획사 간 영입경쟁에 불이 붙었다. 현재 스톰이앤에프(옛 디초콜릿이앤티에프)에 함께 소속돼 있는 강호동과 유재석은 각각 내년 7월과 2월 전속 계약이 만료된다. 이에 연예기획사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수십억 원의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두 사람의 계약금으로는 최소 20억 원 이상이 거론되고 있다. 톱 배우들의 경우도 많아야 10억 원 정도를 계약금으로 받는 것과 비교하면 배 이상 높은 금액이다. 그러나 이들을 잡으려는 기획사들은 20억 원도 아깝지 않다는 입장이다. ◇회당 900만원 안팎의 출연료 + 프로그램 제작권 = 강호동과 유재석은 현재 업계 최고인 회당 900만 원 안팎의 출연료를 받고 있다. 강호동은 MBC TV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 SBS TV '스타킹'과 '강심장',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을, 유재석은 MBC TV '무한도전'과 '놀러와', KBS 2TV '해피투게더3', SBS TV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을 각각 진행하고 있다. 한 달 출연료 수입만 4천만 원 정도인 데다, 두 사람은 광고계에서도 인기 모델로 활동 중이다. 여기에 더해 연예기획사들이 이들에게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들과 계약하면 이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외주제작권을 따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연예기획사들이 매니지먼트만으로는 수익을 창출하기 힘든 상황에서 강호동과 유재석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은 회사에 안정적인 수익을 안겨준다. 둘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각 방송사가 가장 주력하는 프로그램이라 지원도 많을뿐만 아니라, 강호동과 유재석이라는 카드만으로 제작사의 입김이 커지기 때문에 예능프로그램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을 잡는 것이 바로 '로또'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는 3일 "강호동, 유재석은 최소 20억 원이 있어야 잡을 수 있다. 20억 원이 큰돈이지만 두 사람을 영입해서 창출할 수 있는 수익이 그보다 크다"며 "현재 둘을 영입하려는 기획사들은 자금을 마련 작업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수년째 소속사 문제로 골머리.."당분간 홀로 서기 할 수도" = 그러나 방송가에서는 두 사람이 현 소속사와 계약이 만료돼도 당분간은 홀로서기를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SBS 예능국 관계자는 "두 사람이 소속사 문제로 잇달아 골머리를 앓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어떤 회사와 계약을 하기보다는 혼자서 일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두 사람의 소속사는 지난 5월 말 채권단으로부터 80억 원 상당의 가압류 처분을 받아 소속 연예인들에게 2-3개월씩 출연료, 광고료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유재석 등은 소속사에 밀린 출연료 지급을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하기도 했다. 경영권분쟁으로 디초콜릿이앤티에프에서 스톰이앤에프로 사명이 바뀌고 사주도 바뀐 이들의 소속사는 경영 악화로 외주제작하던 '황금어장'의 제작사에서도 손을 뗐다. 평소 이미지 관리에 누구보다 철저했던 두 사람은 회사 사정이 복잡해지면서 본의 아니게 안 좋은 일로 계속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남모르는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연예 관계자는 "강호동과 유재석은 본인을 비롯해 주변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들이다"며 "사실 사태가 이 정도면 다른 연예인은 벌써 회사에 계약해지 통보를 하고도 남았을 텐데 두 사람이 안 한 것도 이미지 관리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유재석의 경우는 이번 사태에 앞서 과거 속했던 DY엔터테인먼트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디초콜릿이앤티에프에 합병되는 일을 겪었기 때문에 더욱더 새로운 소속사를 찾는 데 신중을 기할 전망이다. ◇"강호동.유재석 합칠 가능성은 거의 없어" = 그렇다면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일 가능성은 없을까. 이에 대해 연예가에서는 "강호동과 유재석은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사이지만 함께 회사를 만들거나 특정 회사에 나란히 소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 방송국 관계자는 "둘 다 몸집이 워낙 큰 특급스타라 한 소속사에서 관리하기는 이제 힘들다. 두 사람의 프로그램이 모두 경쟁 관계일 수밖에 없는 데다, 두 사람 역시 일적으로는 알게 모르게 부딪힐 수밖에 없는 위치"라고 말했다. pretty@yna.co.kr
    2010-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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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17여자월드컵 > 여민지, 한국 축구 `새역사' 썼다
    '17세 태극소녀'들이 연장전 혈투 끝에 승부차기에서 '영원한 라이벌' 일본을 꺾고 역대 남녀 태극전사를 통틀어 사상 첫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에서 우승하는 금자탑을 완성했다. 최덕주 감독이 이끄는 U-17 여자대표팀은 26일 트리니다드토바고 포트오브스페인의 해슬리 크로퍼드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일본과 2010 FIFA U-17 여자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장전을 포함해 120분 동안 벌인 혈투 끝에 3-3으로 승부를 내지 못한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했다. 이로써 태극소녀들은 1882년 축구가 한국 땅에 처음 선보인 지 무려 128년 만에 역대 남녀 대표팀 선수들이 단 한 차례도 오르지 못했던 FIFA 주관대회 첫 결승 진출과 더불어 첫 우승이라는 최고 성적표를 받아들며 세계 정상을 포효했다. 특히 여민지는 이번 대회 6경기를 치르면서 총 8골 3도움을 달성해 국내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대회 득점왕(골든부트)과 대회 최우수선수상인 골든볼까지 차지하는 영광을 맛보며 대회 우승과 더불어 '트리플 크라운'을 완성했다. 전후반 90분과 연장전 30분에 승부차기까지 120분이 넘는 혈투를 펼치면서 끝까지 집중력을 지켜낸 태극소녀들의 정신력이 빛난 승부였다. 4강전과 마찬가지로 여민지(함안대산고)와 주수진(현대정보과학고)을 투톱으로 좌우 날개에 김나리와 이금민(이상 현대정과고)를 배치한 한국은 그동안 교체멤버로 힘을 비축한 요코야마 구미가 왼쪽 날개로 선발출전한 일본과 대결을 시작했다. 하이파이브하는 U-17 여자축구 대표팀 (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각) 트리니다드 토바고 수도 포트 오브 스페인의 해슬리 크로퍼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U-17 여자월드컵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김아름(오른쪽)이 2번째 골을 성공시킨 뒤 임하영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전반 시작과 함께 일본의 위협적인 외곽포에 잠시 위기를 맞았던 한국은 전반 6분 미드필드 지역 중앙에서 김나리(현대정과고)의 패스를 받은 이정은(함안대산고)이 페널티아크 부근에서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일본의 골 그물을 힘차게 흔들며 앞서갔다. 그러나 일본의 추격도 만만치 않았다. 전반 11분 왼쪽 코너킥 상황에서 후방으로 볼이 흐르자 나오모토 히카루가 미드필드 지역 오른쪽 부근에서 중거리슛으로 만회골을 넣으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나오모토의 슛은 골키퍼 김민아(포항여전자고)의 손끝에 걸렸지만 그대로 골대 안으로 빨려들었다. 동점골을 넣고 기세가 오른 일본은 전반 17분 미드필드 지역 오른쪽에서 다나카 요코의 중거리슛이 한국 골대 오른쪽 앞에서 한 차례 바운드 되며 그대로 빨려 들어가 역전에 성공했다. 일본의 중원 장악에 고전한 한국은 반격을 시작했고, 전반 26분 미드필드 지역 중앙에서 시도한 김아름의 프리킥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는 안타까운 광경도 연출했다. 몇 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한국은 전반 추가 시간 1분이 주어진 가운데 미드필드 지역 오른쪽 부근에서 프리킥을 얻었고, 주장 김아름이 강하게 찬 볼이 골대 앞에서 뚝 떨어지며 골 그물을 흔들었다. 20분 전 골대 불운을 깨끗하게 씻어낸 값진 동점골이었다. 후반 시작과 함께 한국의 최덕주 감독은 주수진을 빼고 발목 부상에서 회복한 공격수 김다혜를 교체투입해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승부차기 골에 환호하는 시민들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17세 태극소녀'들이 연장전 혈투 끝에 승부차기에서 일본을 꺾고 사상 첫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가운데 26일 오전 서울 중구 봉래동 서울역에서 경기를 지켜본 시민들이 두 팔을 번쩍 들며 기뻐하고 있다. 2010.9.26 kane@yna.co.kr 조별리그 3차전 이후 처음 그라운드를 밟은 김다혜는 후반 6분 오른쪽 측면에서 멋진 크로스로 여민지(함안대산고)의 헤딩슛을 배달했지만 아쉽게 볼이 골대로 향하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 초반 잠시 웅크리고 있던 일본의 반격이 시작된 것은 후반 12분이었다. 왼쪽 날개로 나선 일본의 에이스 요코하마 구미가 페널티지역 왼쪽 엔드라인 부근까지 치고 들어와 땅볼 크로스를 올리자 쇄도하던 가토 치카가 골 지역 정면에서 한국 수비수 2명 사이에서 발을 뻗어 재역전골을 터트렸다. 후반 18분에는 일본의 다나카가 페널티지역 왼쪽 구석에서 감아찬 볼이 골키퍼 김민아의 손을 맞고 왼쪽 골대를 때려 한국 수비진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최덕주 감독은 후반 33분 지친 김나리 대신 이소담(현대정과고)를 투입했고, 이소담은 감독의 선택에 동점골로 부응했다. 이소담은 투입된 지 1분여 만에 미드필드 지역 중앙에서 기막힌 하프 발리슛으로 한국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승부를 연장전으로 이끌었다. 체력이 소진된 한국과 일본 선수들은 연장 전후반 30분 동안 이렇다 할 공세를 펼치지 못한 채 결국 승부는 '11m 룰렛'으로 불리는 피 말리는 승부차기로 접어들었다. '차세대 골잡이' 여민지 골든볼 수상 (포트오브스페인<트리니다드토바고>=연합뉴스) 양정우 특파원 =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대표팀의 골잡이 여민지(17)가 대회 최우수상격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2010.9.26 <<국제뉴스부 기사참고>> eddie@yna.co.kr 한국은 일본의 선축으로 시작된 승부차기에서 1번 키커 다나카의 슛이 성공하고 나서 1번 키커로 나선 이정은의 슛이 골키퍼 선방에 막히며 위기를 맞았다. 일본의 2번 키커 와다 나오코의 슛이 크로스바를 넘고 나서 곧바로 여민지의 슛이 골대를 파고들어 균형을 맞췄고, 한국과 일본은 5번 키커까지 나란히 골을 주고받으며 4-4가 됐다. 이제부터는 한번의 실수가 승부를 가리는 서든 데스. 일본의 6번 키커 무라마츠 도모코의 슛이 크로스바를 때리며 기회를 잡은 한국은 마지막 키커로 나선 장슬기가 우승을 결정하는 마지막 승부차기 골로 FIFA 주관대회 첫 우승이라는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롭게 장식했다. horn90@yna.co.kr
    201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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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불교 세계화를 지구촌 평화와 공동선을 위한 노력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뉴욕 맨해튼의 유엔 본부 앞. 회색 승복의 한국 스님들이 줄지어 이동하자 뉴욕 시민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쏟아졌다. 이들은 '한국불교 세계화'를 내걸고 지난 14일부터 열흘 일정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을 방문해 한국불교 알리기에 나선 대한불교 조계종 대표단이다.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주요 과제로 조계종은 ▲해외사찰 활성화 및 해외교구 설립 ▲사찰음식 세계화ㆍ템플스테이 홍보 ▲지구촌 평화와 공동선을 위한 노력 ▲종교 갈등 해소 등을 선정했다. ◇해외교구 설립 = 세계 144개 한국 사찰 중 미국 지역에는 80여개의 조계종 사찰이 있고, 한국스님 130여명이 활동 중이다. 한국 불교는 1970년대 숭산스님이 미국 현지인 포교에도 힘을 쏟아 많은 '푸른눈의 스님'들을 제자로 배출했지만 대체로 1960년대부터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애틀 지역 등의 교민사회를 중심으로 교민 포교에만 치중해왔다. 반면 티베트불교는 1970년대 달라이라마가 하버드 대학생 3천명에게 불교 철학을 가르치면서 미국 지역에 진출한 이후 미국 주류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잇따라 티베트 불교에 귀의했다고 밝힌 것도 포교에 큰 역할을 했다. 또 틱낫한 스님의 미국 활동으로 베트남 불교도 미국 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어 조계종이 하루빨리 해외사찰들을 조직화ㆍ체계화해 적극적인 포교에 나서지 않는다면 한국불교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1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있었던 교민 법회<조계종 제공>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종교법인법이 있는 만큼 해당 사찰들의 정관을 개정해서 공찰화하는 문제에 대해 여론을 들을 예정"이라며 "해외교구 설립과 관련한 입법은 빠르면 내년 3월 마무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민 대상이 아닌 현지인 대상 포교를 담당할 인력 확보도 어려운 문제다. 현지인과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인력을 당장 조달하기는 어려워 조계종에 귀의한 외국출신 스님들을 재교육시켜 파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자승스님은 아울러 "상급자의 명령에 순명하는 가톨릭 등 다른 종단과 달리 우리 스님들은 내키는 대로 걸망을 지고 훌쩍 떠나거나, 선방에 들어가서 몇년간 수행하거나, 외국에 가도 아무런 제어를 받지 않는 풍토여서 해외에서 포교하라며 강제로 파견하는 것은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해외교구 설립문제의 실무를 맡은 무애스님은 "미국 내 사찰 스님들이 겪는 애로사항이나 요구를 종단이 수용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라고 말했다. ◇사찰음식 세계화 =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의 주요 관광상품이 된 템플스테이에 이어 사찰음식은 조계종이 해외무대에 새롭게 내미는 한국불교의 얼굴이다. 친환경ㆍ채식이라는 세계적인 트렌드와도 맞는 한국사찰음식이 국제적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20일 맨해튼 소호의 연회장 스카이라이트(Skylight)에서 320여명을 초청해 개최하는 '한국사찰음식의 날(Experience Korean temple cuisine)' 행사의 초청대상은 현지 한인이 아닌 뉴욕 문화계, 음식업계 관계자들이다. 사찰음식시연단 11명을 이끌고 조계종 대표단의 일원으로 뉴욕을 찾은 조계종 문화부장 효탄스님은 "이번 행사는 종단 차원에서는 사상 최초로 벌이는 사찰음식 홍보행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효탄스님은 "이번 행사에 참석했던 미국 유명 셰프나 주요 언론방송 음식담당에디터, 기자들에게 앞으로 메일링 서비스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우리 사찰음식을 홍보하겠다"고 말했다. 또 "더 나아가서는 한국사찰음식을 테마로 한 템플스테이를 개발하며,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에 한국사찰음식 전문점을 오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연단에는 한국사찰음식연구회 회장 적문스님을 비롯해 선재스님, 대안스님, 우관스님, 정관스님 등 사찰음식계를 대표하는 스타스님들이 총출동해 사찰음식 40여가지를 뷔페식으로 제공한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남방 불교의 경우 탁발을 원칙으로 하루 한끼만 먹기 때문에 '사찰음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한마디로 아궁이가 없는 불교"라며 "중국도 불교의 명맥이 사실상 끊어졌다고 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사찰음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라고 설명했다. ◇지구촌 공동선 참여와 종교갈등 해소 = 지난 17일 맨해튼의 조그마한 채식식당 '캔들79'에서는 세계 여러 종교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뉴욕 유대교단의 랍비 조셉 포태스닉, 미국 성공회 클로 브라이어신부, 이슬람 여성모임의 아이샤 알 아다위아, 천주교 뉴욕대교구의 케빈 설리번 신부, 그리스정교회의 알렉산더 카루소 신부 등을 비롯해 시크교, 힌두교 지도자 등 뉴욕다종교협의회 임원 10여명이 조계종 방미단 스님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총무원장이란 어떤 직책인가?"부터 최근 9.11기념일을 전후해 미국사회를 달군 개신교-이슬람간의 갈등을 언급하며 "한국에서는 종교적 갈등이 일어났을 때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가"등의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대화를 마친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특정 종교가 갈등의 소지가 될 행위를 하면 함께 모여 시정을 요구하는 문화, 종교의 차이에 의한 범죄를 막기 위한 증오범죄법 등은 한국사회에서도 종교간 갈등을 해소하는데 참고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한국불교가 세계적인 이슈에도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공동선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기로 한 것은 국내에서는 화쟁위원회를 통해 사회갈등 해소의 장을 만들겠다고 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자승스님은 이번 방미 기간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2013년 세계종교지도자포럼을 한국에서 열고 2012년에는 세계불교도우의회를 여수에서 개최하는 등 국제적인 행사의 호스트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또 20일에는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세계불우아동과 이재민을 돕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아이티 지진구호자금도 전달한다. chaehee@yna.co.kr
    2010-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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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교 일부 구간 남기자'는 여론 속 연말 철거
    한국전쟁 당시 폭격 맞은 임진강 철교를 옮겨 세운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전남 완도대교(철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한 때 남북을 연결했던 임진강에서, 또 한반도 최남단에서 섬과 육지를 이어준 소통의 임무를 다한 이 철교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인 올해 말 철거된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상흔과 연륙의 기쁨을 안겨준 이 다리 일부라도 남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박정순 완도문화원장은 12일 "완도를 뭍으로 연결하는 첫 다리이자 한국전쟁의 상흔을 간직하는 등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이 다리를 완전 철거 대신 한 부분이라도 남겨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주민들도 이 다리 개통으로 완도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고 수많은 섬사람과 동고동락해 왔는데 철거해 고철로 처리해 버리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니냐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완도군과 관련기관은 철교가 낮아 선박 통항에 지장이 많아 철거한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선박 통항 지장은 물론 역사성을 입증할 자료가 빈약하고 관련 예산이 없어 예정대로 철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완도군 군외면 원동리와 달도를 잇는 이 철교는 지난 1963년 4월 착공해 5년 만에 완공됐다. 차도 4.7m, 보도 2.9m, 총 길이 189m로 한강 철교와 같은 구조로 건설됐다. 상부 철구조물이 새빨갛게 녹스는 등 지금은 낡았지만, 완도를 뭍으로 이어준 첫 다리인 이 철교는 임진강 다리를 옮겨 재조립해 탄생한 한국전쟁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임진각 철교는 한국 전쟁 당시 미군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고자 폭격, 폭파했던 철골 구조물로 전쟁이 끝난 지난 1963년 분해해 육로로 이송한 뒤 재조립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이 철교가 사라지는 대신 그 옆에 최신 공법의 튼실한 다리가 연말 완공 예정으로 건설되고 있다. chogy@yna.co.kr
    201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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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대를 초월하여 살다간 실학의 산실...
    한 시대를 초월하여 살다간 실학의 산실,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85-2 다산 유적지를 찾아보았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762년(영조38년) 6월 16일(음력) 정재원의 4남으로 태어났으며 1776년(15세)에 풍산홍씨 홍화보의 따님과 혼인을 하고,서울에서 살면서 16세에 이승훈, 이가환 등과 만나면서 성호 이익의 유고를 읽고서 실학에 뜻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전라도 화순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과거공부를 계속하게 되고 그의 나이 22세(1783년)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여 공부를 계속하게 된다. 그후 큰형(악현)과 처남인 이벽으로 부터 천주교에 관한 말을 듣고서 큰 감명을 받고 천주교에 빠져들게 되고, 28세(1789년)에 문과 시헙에 합격하여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선생은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발탁이되어 31세때 수원하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녹로 등을 고안하여 축성공사비를 절약하고 공사 기간도 7년이나, 단축 시키는 업적을 쌓고, 33세때는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아가 백성들의 고통을 목격하고 수령의 비정함을 고발하기도 한다. 선생의 36세에 승정원 동부승지에 제수되었으나, 사직상소를 올려 천주교와는 거리를 두었음을 밝힌다. 그 후 황해도 곡산 부사로 제주되어 목민관으로서의 인격과 능력을 보이고, 38세에는 3농정책을 밝히고 '응지론농정소'를 올리게 되고, 39세인 1800년(기묘년) 봄 고향으로 돌아와 당호(堂號)를 여유(與猶)라 하고 은둔를 하게 되고 그해 여름 정조가 승하 하였다는 소식를 접하고 슬퍼하게 된다. ▲ 정약용 선생 생가 다산 선생 40세인 1801년(신유년) 2월, 책롱사건으로 다산의 3형제가 체포되어 의금부로 끌려가 투옥이 되면서 시련이 시작이되고 셋째형 약종은 사형을 당하고, 둘째형 약전은 신지도로 다산은 경상도 장기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러던 그해 10월 황사영 백서 사건이 일어나 다시 서울로 압송이되어 조사를 받고, 11월에 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또 다시 유배를 떠나게 된다. 다산의 거처를 '사의재'라 이름하고, 훗날 보은 산방과 이청의 집에서 지내다 47세 되던 해(1808년) 봄, 처사 윤단의 산정(다산초당)으로 옮겨, 이곳에서 10년을 보내며 다산학을 이룩하고, 55세(1816년)때 나주 율정에서 생이별한 둘째형 약전이 유배지 흑산도에서 죽었다는 소식를 접하게 된다. 다산를 구하고자하는 해배가 몇 차례 움직임이 있었으나, 반대파에 의해서 저지되다 마침내 57세되던 해(1818년)8월에 이태순의 상소로18년만에 유배에서 풀려나 9월 초에 강진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게된다 그리하여 다산은 해배를 전후하여 '경세유포',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완성하게 된다. 그후 다산은 58세 가을 용문산을 59세때는 춘천 천평산을 유람하며 61세 회갑을 맞아'자찬묘지명'을 짖고 봄에 대산 김매순과 경의에 관해, 여름에 석천 신작과 주례에 관해 토론하면서 지내다 75세때인 (1836년)2월22일 고향(마재) 집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해 4월1일, 고향집 뒷동산에 안장이되고 1910년 (순종4년) 7월18일 정이품 정헌대부 규장각 제학으로 추증이 되고 시호를 문도(文度)라고 하였다. 이렇듯 다산 정약용 선생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떠났지만은 후세길이 실학과 학문, 목민관이는 존경과 귓가에 들려온다. 이번 취재를 위해 도와주신 박물관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01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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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병합' 100년 맞아 을사늑약.병합현장 행진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29일 오전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을사늑약과 강제병합 현장을 차례로 침묵 행진하는 행사를 가졌다. 지난 5월과 7월 한일지식인 공동선언을 주도했던 김영호 유한대 총장과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아라이 신이치 일본 이바라키대 명예교수 등 한일 지식인 20여 명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 모였다. 이들은 중명전에서 전시된 을사늑약(1905) 관련 자료들과 고종의 옛 집무실을 둘러보고 곧이어 한일강제병합이 공표된 현장인 서울 남산 옛 통감부 관저 터로 향했다. 남산 유스호스텔 앞 공원에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실행위원회'가 개최한 옛 통감부 관저 터 표석 제막식을 참관한 이들은 곧이어 인근 세종호텔 로비에 모여 식사를 겸한 본행사를 가졌다. 한일지식인들, 강제병합 현장 등 침묵행진 (서울=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지난 5월과 7월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을 주도했던 김영호 유한대 총장,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한일 지식인 20여명이 29일 오전 최근 복원된 덕수궁 중명전에 모여 전시실을 살펴보고 있다. 이들은 중명전을 살펴본 뒤 한일강제병합이 공표된 남산 옛 통감부 관저터까지 행진했다. 2010.8.29 << 문화부 기사참조 >> jihopark@yna.co.kr 고은 시인은 이날 행사 자리에서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오늘 아침에 오면서 쓴 단상(斷想)"이라며 "무효!/ 이것이 100년의 말이다/ 말은 길이다 세계이다// 병합 무효!"라는 기념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와다 교수는 "한일지식인들이 공동성명을 내놨음에도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담화내용이 불충분했던 것은 일본 쪽의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인사말과 함께 "특별한 날에 여러분과 함께 행사에 참여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는 감회를 밝혔다.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이뤄진 이날 침묵 행진은 비 때문에 일부 구간은 자동차를 이용해 진행됐다. comma@yna.co.kr
    201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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