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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40세 나이에 잇달아 자살.."남은 남매 어떡하나!
    2008년 10월2일 톱스타 최진실 자살. 향년 40세. 2010년 3월29일 탤런트 최진영 자살. 향년 39세. 2013년 1월6일 전 야구스타 조성민 자살. 향년 40세. 최진실에 이어 남동생 최진영, 그리고 이번에는 그의 전남편 조성민까지 모두 세상을 떴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믿기 어려운 비극이다. 이들의 비극적인 가족사가 충격과 함께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다. 조성민씨 아파트서 목매 숨진채 발견 (서울=연합뉴스) 고(故) 최진실씨의 전 남편인 전직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40)씨가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은 조씨가 화장실에서 허리끈으로 목을 맨 채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조씨가 지난 2008년 최진실씨의 자살 이후 양육권과 재산권 관련해 기자회견하는 모습. 2013.1.6 << 사회부기사 참조 >> photo@yna.co.kr최진실-진영 남매는 어린 시절의 가난을 이겨내고 각기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와 인기 스타가 된 성공스토리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줬다. 그러나 누나 최진실이 남편과 불화 끝에 이혼한 뒤 우울증으로 2008년 10월2일 자살한 데 이어, 1년5개월 만에 동생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들 남매의 성공신화는 슬프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최진실은 스무 살이던 1988년 한 CF에서 유명 여배우 대신 수영장에 뛰어드는 대역 연기를 펼치는 등 단역 모델을 시작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러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가 큰 성공을 거둔 가전 CF 이후 연예계의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이후 20년간 큰 사랑을 받으며 연예계의 정상에 군림했다. 최진실이 연예계에서 성공하면서 최진영이 누나의 뒤를 따랐다. '최진실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출발하기는 했지만, 그도 귀여운 외모로 호감을 사며 1990년대 다수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했다. 故 최진영, 누나 곁에서 영면 (양평=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지난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 최진영씨가 31일 오후 경기 양평군 갑산공원 자신의 누나인 故 최진실씨 묘역 옆에 안치될 예정인 가운데 고인의 영정이 장지에 도착하고 있다. 2010.3.31 xanadu@yna.co.kr최진실은 동생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고, 최진영 역시 누나의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제일 앞에 서서 해결하려 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 남매는 연예계에서 '용감한 최씨 남매'로 불렸다. 특히 최진영이 배우로서 지지부진하다가 1999년 '스카이'라는 예명으로 1집을 내고 가수 데뷔를 했을 때는 최진실이 동생의 재기를 기원하며 종횡무진 홍보활동을 펼친 일화로도 유명하다. 최진영은 당시 "누나를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고 싶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들 남매의 성공 신화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최진실이 2004년 9월 조성민과 이혼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최진영이 연예계에서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 최진실은 정점에 있던 2000년 12월 프로야구계 톱스타인 조성민과의 결혼으로 동화 같은 러브 스토리를 보여줬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일본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의 결혼은 국내외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눈물 흘리는 최진실씨 어머니 (양평=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26일 오전 故 최진실씨 유골함 절도 용의자가 검거돼 경기도 양평경찰서에서 도난당했던 최진실씨 유골을 돌려받은 최씨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09.8.26 drops@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geenang하지만 결혼 생활은 원만하지 않았다. 2004년 8월 조성민이 최진실의 집에서 폭력을 휘둘러 긴급체포되는 사건까지 불거진 후 둘은 이혼했다. 슬하에 환희와 준희 남매를 둔 상황이었다. 이후 모든 연예활동을 접는 등 연기 인생에 큰 타격을 받았던 최진실은 2005년 KBS 2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거기에는 그의 옆을 항상 지켜주던 최진영이 있었다. 2008년 MBC TV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아줌마의 판타지를 자극하며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킨 최진실은 당시 인터뷰에서 "진영이가 아빠처럼 조카들을 너무 잘 봐줘 고맙고, 그런 진영이가 집안을 지키고 있어 너무 든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진실은 끝내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두 자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진영은 자택에서 목맨 채 숨진 누나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 누나의 목에 감긴 줄을 풀어줬다. < 2008 화제의 인물> 최진실 (서울=연합뉴스) 탤런트 최진실. 20년간 대중스타의 자리를 지키다가 10월2일 마흔의 나이로 자살했다. 1988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멘트로 유명한 CF와 함께 연예계의 신데렐라로 급부상했다. 2000년 프로야구 스타 조성민과 결혼했다가 불화 끝에 2004년 이혼하면서 연기생활도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나 2005년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올초 방송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그의 사후 자신의 성(姓)을 따랐던 두 아이의 친권과 재산관리권을 놓고 논란이 일었고, 그가 평소 앓았다는 우울증과 인터넷 상의 악성 댓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일어나기도 했다.사진은 지난 10월 4일 오전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2일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탤런트 故 최진실의 영결식.최진실은 죽어서도 편안하지 못했다. 2009년 8월4일 양평군 양수리 갑산공원에 있는 고인의 납골묘가 파헤쳐져 유골함이 도난당한 것. 유골함은 도난 21일 만에야 되찾아 원래 자리에 다시 안치됐다. 최진영은 누나가 떠난 후 남은 조카들을 돌보며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많이 했고, "밤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밤을 꼬박 새운 뒤 아침에야 잠을 잔다"고 밝히곤 했다. 그러더니 끝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며 누나의 뒤를 따랐다. 누나가 떠난 지 1년5개월 만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이번에는 조성민이 6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조성민은 탁월한 재능에도 굴곡 많은 인생 탓에 꽃을 피우지 못한 '비운의 스타'로 꼽힌다. 194㎝의 당당한 체구에서 뿜어내는 강속구를 앞세운 그는 1996년 고려대를 졸업하면서 계약금 1억5천만 엔을 받고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명문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1997년 7월 처음 1군 무대에 올라 주로 불펜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1998년 본격적으로 선발로 나서 야구 스타로 활약했다. 그러나 1999년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후 기나긴 부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재기에 실패해 2002년 요미우리를 떠났다. 화제 속에 맺어진 최진실과의 결혼도 파경으로 끝났고 그 과정에서 폭행, 외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제빵 사업가와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5년 한화에 깜짝 입단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이후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는 듯했던 그는 2011년 두산 2군 코치로 새 출발, 지난해 말까지 선수들을 지도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두산과의 재계약은 포기했다. 조성민까지 떠나면서 최진실-조성민의 자녀 환희와 준희는 부모를 모두 잃게 됐다. 환희와 준희는 그간 외할머니 정옥숙 씨가 양육해왔다. 최진실의 사망 후 조성민이 두 자녀의 양육권, 친권을 놓고 유족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2008년 12월8일 외할머니인 정씨에게 두 아이에 대한 양육권과 재산권 등 모든 권리를 넘겼다. 엄마에 이어 함께 살던 외삼촌의 죽음은 두 아이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남매는 주변의 보살핌 속에 이를 극복하고 지난해 9월 KBS 2TV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패밀리 합창단'에 출연해 엄마처럼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밝히는 등 밝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둘은 합창곡으로는 엄마의 생일이 12월24일이라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을 골랐다며 노래를 들려줬고, 최진실을 향해 "좋은 재능과 외모를 줘서 감사하다"며 "하늘에서 행복하세요"라는 메시지를 전해 애틋함을 자아냈다. 하지만 엄마와 외삼촌에 이어 아빠마저 세상을 뜨면서 이들 남매는 또다시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과 마주하게 됐다. 외할머니 정씨 역시 아들, 딸에 이어 사위까지 잃으면서 다시 큰 고통을 안게 됐다. pretty@yna.co.kr
    201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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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미술ㆍ강세황ㆍ이슬람ㆍ도교 특별전 등 준비
    국립중앙박물관이 준비하는 특별기획전은 계사년 뱀의 해인 내년에도 중단없이 이어진다. 새해 첫 테이프는 전시과가 주관하는 '미국 미술 300년'(Art Across America) 전이 끊는다. 미술을 통해 건국 이래 현재에 이르는 미국 문화를 탐구한다는 취지에서 마련한 대규모 전시(2.5-5.19)다. 필라델피아미술관과 휴스턴박물관,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박물관(LACMA)에서 대여한 168점가량을 선보인다. 자유를 찾아 떠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면서 그리기 시작한 초상화에서 출발해 유럽과 동양 등의 외부 세계 영향이 짙은 작품을 거쳐 앤디 워홀이 대표하는 현대미술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이 온다. 미술부는 탄생 300주년을 맞이하는 강세황 특별전을 마련한다. '예술로 꽃피운 조선 지식인의 삶'(A Painter’s Life: Kang Sehwang and Literati Culture)을 주제로 내건 이번 전시(6.11-8.11)에는 중앙박물관 소장품을 비롯해 강세황 작품 50점 정도를 내걸 예정이다. 시(詩)ㆍ서(書)ㆍ화(畵) 모두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강세황을 추모하는 열기는 비단 미술계뿐만 아니라 한문학계와 서예계에서도 거셀 전망이다. 전시과에서는 미국미술 전 외에도 '이슬람 문명의 미술'(Art from the Islamic Civilization - From the al-Sabah Collection, Kuwait)을 준비한다. 7월2일 개막해 10월13일까지 계속될 이 기획전에는 쿠웨이트 알사바 공주가 수집한 구석기시대 이래 이슬람문화에 이르는 다종다양한 고고미술품 300점가량이 온다. 전시과는 '중앙아프리카의 예술, 콩고강'(Congo River, Arts of Central Africa) 특별전(10.22-2014.1.19)도 마련한다. 프랑스의 아프리카 전문박물관인 케브랑리박물관에서 대여하는 관련 유물 72점이 선보인다. 중국 상하이박물관을 먼저 돌고 오는 순회전 일환이다. 고고역사부에서는 '한국의 도교: 신(神)과 선(仙)의 문화'(The Taoism in Korea: Deities and Immortals)를 연말인 12월10일 개막해 2014년 3월2일까지 연다. 한국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비해 제 대접을 받지 못한 도교를 처음으로 정리한다는 점에서 통사 위주로 꾸미되 조선시대 수련도교의 측면을 부각한다는 방침이다. 아시아부에서는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The Peranakan World: Cross-Cultural Art from Singapore and the Straits) 특별전을 3월19일부터 5월19일까지 개최한다.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 소장 230점을 대여하는 인류학 전시회다. 페라나칸은 중국인 이민자와 동남아 원주민이 혼혈이 된 사람들을 말한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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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크리스마스' 24일 방송
    KBS 1TV는 24일 밤 11시40분 성탄특집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방송한다. 다큐멘터리는 서울발레시어터 발레단원 20여 명과 노숙자 10명이 함께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하며 겪는 변화를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 제임스전은 노숙인 생활에서 벗어나려 잡지 판매에 나선 이들에게 지난해 7월 발레를 제안했다. 다큐멘터리는 노숙인들이 발레를 접하는 순탄치 않은 과정을 진솔하게 그렸다. 이들은 지금껏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다뤄 본 적이 없기에 박자를 맞추기는커녕, 똑바로 걷는 것조차 어려웠던 것. 이에 제임스 전은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달라"며 불을 끄고 자유로이 움직여보라고 주문했다. 제임스전은 더 나아가 이들을 무대에 올리겠다고 마음먹고, '특별 훈련'에 들어갔다. 제작진은 "노숙인들이 자신의 가장 '아픈 이야기'를 체념한 듯 털어놓자, 그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며 "자신을 지켜보고, 믿어주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이들은 한 마리 새처럼 무대를 누볐다"고 설명했다. tsl@yna.co.kr
    201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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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월 금성리 해안사구서 인골 잘 남아..백합조개도 같이 묻어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 고려말기 혹은 조선시대 초기에 어린아이, 혹은 영ㆍ유아를 집중적으로 매장한 공동묘지가 제주도 해변에서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제주고고학연구소(소장 강창화)는 지난해 하수관 설치 공사 중에 인골이 발견된 제주시 애월읍 금성리 436-11번지 일원 200㎡를 지난 7월30일 이래 발굴조사한 결과 땅을 파고 시신을 묻는 토광묘로 판단되는 14기의 무덤과 석곽묘로 추정되는 분묘 1기를 확인하고, 이들 내부에서 15개체에 이르는 인골을 수습했다고 18일 말했다. 앞서 지난해 9-10월에 실시한 긴급 발굴조사에서는 무덤 12기와 11구에 이르는 인골, 그리고 분청사기 대접 및 접시, 청동수저 등의 유물을 확인했다. 출토 자기를 볼 때 이들 무덤은 고려말 조선초(14-16세기)에 집중 조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따라서 올해 조사까지 금성리 고분군에서는 총 26개체에 이르는 인골을 찾았으며, 이 중에서도 성별 구분이 가능한 것은 여성이 5개체, 남성 3개체로 나타났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조사단이 고인골 전공인 김재현 동아대 교수에게 의뢰해 실시한 인골 분석 결과 놀라운 점은 연령대별로 성인은 5개체에 불과한 반면 영아, 유아, 어린이는 13개체에 달한다는 점이었다. 올해 조사에 국한할 때 15개체 인골 중 성인은 3개체이며 나머지 12개체는 영ㆍ유아나 어린이로 추정됐다. 백합조개 인골의 머리가 놓인 방향은 크게 북동쪽과 동쪽, 남동쪽의 세 가지로 구분됐지만 14호 무덤은 북쪽을 향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덤 출토 유물로는 도자기류와 청동제 비녀, 청동숟가락, 골제 장신구 등이 있으며, 4호분에서는 팔찌로 추정되는 구슬 9개가 확인됐다. 유아묘로 추정되는 1호 분묘에서는 특이하게도 너비 11㎝ 안팎인 백합조개 4점이 포갠 상태로 시신 오른쪽 허리 부근에서 발견됐다. 조사단은 "올해 조사한 묘역은 지난해 발굴한 묘역과 같은 공동묘지로 판단되며 만든 시기는 14-16세기를 중심으로 한다"면서 "김재현 교수 평가로는 우리나라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고려말-조선초에 해당되는 다량의 인골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 매장분묘는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어른과 어린이, 유아, 영아 등의 인골이 집단 매장된 공동묘역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형질학적ㆍ유전자학(DNA) 분석에서도 중요한 자료가 검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김 교수는 평가했다고 조사단은 덧붙였다. 이번 공동묘지는 해발 12m 안팎의 해안 저지대인 곽지리 해안사구 내에 위치하며, 바다와의 직선거리는 200m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이곳에서 인골이 발견되자 4.3사건 당시 피해자의 유골이 아닌가 하는 말도 있었다. 인골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은 이유는 이곳이 인골 보존에 적합한 알카리성 토양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9호분 인골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201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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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시대 금서 '어느 돌멩이의 외침' 유동우氏 첫 인터뷰
    '학림사건' 고문 후유증으로 노숙…트라우마 치료로 안정 "누군가 총을 쏘며 달려드는 느낌에 방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럴 때마다 집과 처자식을 두고 서울역, 신촌 등에서 노숙해야 했어요. 80년대 말부터 반복된 이 생활은 작년까지 계속됐죠." 유동우(63)란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가 쓴 '어느 돌멩이의 외침'은 유신시대 노동현장 수기이자 대표적인 금서로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이 책은 1970년대 중반 인천의 한 섬유기업에서 일하던 유씨가 인권 유린과 노동 착취를 일삼는 회사와 맨몸으로 싸운 투쟁기를 수필 형식으로 기록한 글이다. 1977년 '월간대화' 1~3월호에 처음 연재되면서 노동자와 학생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듬해에는 단행본으로도 출간돼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과 함께 197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꼽히기도 했다. "몰래 책을 제본해서 팔던 대학생들이 수익금이라며 돈을 건네기도 했어요. 책을 다시 내자는 제의도 있었지만 공부도 제대로 못 한 노동자가 쓴 글이라 부끄러워 거절했었지요." 사측과의 싸움은 유씨가 해고되는 것으로 끝이 났고, 그는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79년 신군부가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자 유씨는 전국민주노동자연맹(전민노련)에 가담해 민주화 운동을 시작했다. 이 활동으로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 그는 1981년 6월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민병두 민주당 의원 등과 함께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이른바 '학림사건'의 시작이었다. "두 눈을 가린 천을 풀어보니 사방이 빨간색으로 칠해진 방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냐'라고 묻기에 아니라고 했더니 '그러면 사회주의자네'라며 구타가 시작됐죠. 그 방이 7년 뒤 박종철 열사가 숨을 거뒀던 바로 그 509호입니다." 고문은 한 달여간 계속됐다.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이듬해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지만, 그 반년 남짓한 시간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구속 이력 때문에 정규직 취직은 불가능했다. 공사장일, 모텔청소원, 주차관리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지만 고문 후유증 탓에 적응이 쉽지 않았고, 잦은 노숙으로 주변으로부터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유씨는 지난해 말 지인의 권유로 인권의학연구소에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치료를 받으면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치료 과정에서 그는 개인의 문제로만 여겼던 여러 증상이 대부분 고문의 후유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올해 초 고(故) 김근태 의원 추모식 등 공식석상에 스스로 참석할 정도로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그는 9일 "70년대 노동운동의 경험을 살려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외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쌍용차 사태에서도 나타나듯 노동운동은 노동자에게 절박한 생존의 문제예요. 이는 학생운동과 분명히 다른 노동운동만의 특징이죠. 이 절박함은 70년대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노동운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rock@yna.co.kr
    201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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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3-7일 파리 개최
    우리 민족의 대표 가락 아리랑의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6일께 최종 확정된다. 문화재청은 3-7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는 제7차 무형유산위원회의 셋째 날인 5일 오후(현지시각) 아리랑의 등재 심사가 진행된다고 2일 밝혔다. 따라서 한국과 프랑스간 시차를 고려하면 심사 결과는 5일 자정에서 6일 새벽께 국내에 전해질 것으로 보인다. 24개 위원국으로 구성된 무형유산위원회는 산하 심사소위원회인 심사보조기구(Subsidiary Body)의 평가을 토대로 '아리랑'의 가치를 심사한다. 앞서 심사보조기구는 아리랑이 세대를 거쳐 계속 재창조되고, 한국민의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높이 사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다. '등재권고'는 해당 신청 유산이 인류무형유산으로 선정될 충분한 가치를 가진다는 검증의 의미로, 큰 이변이 없는 한 위원회가 최종 심사에서 기구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것이 관례다. 이번에 위원회가 아리랑의 등재를 최종 확정하면 우리나라는 총 15건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hrseo@yna.co.kr
    201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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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진도 오류리 해저발굴
    최고급 청자도 쏟아져, 기린형·오리형 향로뚜껑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1597년 명량대첩(鳴梁大捷)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 3점이 최상급 고려청자와 함께 진도 오류리 해저에서 발굴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성낙준)는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이 일대에 대한 수중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임진왜란(1592)이 일어난 지 7주갑(420년)이 되는 올해 임진왜란 때 사용했을 총통 3점과 석제(石製) 포환을 발굴했다고 28일 말했다. 총통 3점은 모양과 크기가 길이 58㎝, 지름 3㎝로 거의 같으며 모두 다음과 식의 명문이 확인된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萬曆戊子/四月日左營/造小小勝字/重三斤九/兩/匠尹□永"(만력무자/사월일좌영/조소소승자/중삼근구/량/장윤□영 : 만력 무자년 4월에 전라좌수영에서 만든 소소승자총통. 무게는 세 근 아홉 냥임. 만든 사람은 장인 윤□영) 연구소는 "명문은 제작월과 무게를 적은 부분에서 약간 차이가 있을 뿐 다른 내용은 똑같다"면서 "만력 무자년(1588)에 전라좌수영에서 제작했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총통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명칭. 3점 모두 '小(소)'와 '勝(승)'자 사이에 각각 'エ'와 'マ'라는 부호가 발견됐다. 연구소는 이런 부호가 "한자에서 같은 글자를 표시하는 부호로서 '소소승자(小小勝字)' 총통이라고 적은 것"이라면서 "승자총통류는 조선 중기의 개인용 화기로 이번에 발굴된 소소승자총통은 전하는 기록이 없는 최초의 발견 사례"라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개인용 화기로는 승자(勝字), 차승자(次勝字), 별승자(別樣字), 소승자총통(小勝字銃筒)이 문헌에 보이며, 실제 유물도 전하거나 발굴됐지만 '소소승자총통'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총통을 발굴한 지점 주변에서 돌 포탄인 석환(石丸)도 발견됐다. 지름 8.6cm, 무게 715g인 이 석환 역시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소는 말했다. 총통 명문 부분 성낙준 소장은 "오류리 해역은 명량대첩이 일어난 울돌목에 인접해 있는 곳으로 이번 수중발굴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해역에서 임진왜란 관련 유물이 발굴됐다"면서 "앞으로 임진왜란과 우리나라 무기 발달사, 해전유적지인 전라우수영의 역사적 성격을 밝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들 총통은 제작 시기와 장소가 임란 직전 전라좌수영이며, 더구나 발견된 장소가 명량대첩의 격전장과 인접한 곳이라는 점 등을 볼 때 이순신 및 명량대첩과 관련한 유물임이 거의 분명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소승자총통은 조선 중기에 제조된 화기 중 하나로 불씨를 손으로 점화해 발사하는 유통식(有筒式) 구조다. 승자총통을 개량한 것으로 신기비결(神器備訣)이라는 문헌에 의하면 이런 화기는 대승총(大勝銃), 차승총(次勝銃), 소승총(小勝銃)으로 구분되지만 소소승자총통이라는 명칭은 알려진 바가 없다. 현재까지 파악된 소승자총통은 모두 24점이다. 오류리 수중 문화재는 지난해 11월 이 해역에서 고려청자를 도굴한 일당이 붙잡히면서 존재가 드러났다. 이에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수중탐사를 시작해 고려청자 파편과 닻돌을 확인하고 올해 본격 조사를 시행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임진왜란 관련 유물 외에 양질의 순청자(純靑磁)와 상감청자(象嵌靑磁), 조질(粗質) 청자가 기종별로 다양하게 발굴됐다. 청자와 총통류 가장 주목을 끄는 청자는 기린형 향로뚜껑. 국보 65호로 지정된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靑磁 麒麟有蓋 香爐)에 못지않은 최고급품이며 기존과는 다른 특징도 보인다고 연구소는 말했다. 나아가 오리형 향로뚜껑도 발견됐다. 이 청자는 뚜껑 바닥까지 꽃 모양으로 장식했다. 이들 양질 청자는 맑은 비색(翡色)을 띠며 규석을 받쳐 구웠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연구소는 덧붙였다. 연구소는 이들 양질 청자는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전반까지 강진에서 왕실이나 귀족층이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12세기 전반부터 14세기 대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한 다른 도자기도 발굴됐다. 이런 성과에 따라 문화재청은 수중발굴조사 해역을 중요문화재(사적)로 가지정해 보호하고, 2차 수중발굴 조사는 수온이 상승하는 내년 5월부터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기린형 향로뚜껑 오류리 해역은 고려시대에는 주요 청자운반 항로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의 해전 장소 중 한 곳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201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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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액 연봉 때문인 듯…세종시 이전 기피도 한몫
    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이 최근 법무법인(로펌)과 대기업 등으로 잇따라 이직하고 있다. 이직 당사자들은 고액 연봉을 약속받고 공정위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연쇄 이탈에는 세종시 이전을 피하려는 내부 분위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사자들은 대기업들의 불공정거래 관행에 최근 전방위 조사를 벌인 `저격수'란 점에서 이들의 이직으로 공정위 조사 능력이 훼손될 것으로 우려된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김모 공정위 서기관은 이달 초 사직하고 대기업 계열사 상무로 옮기기로 했다. 김 서기관은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된 유통 분야의 불공정거래 행위 조사 등을 담당했던 베테랑 직원이다. 소비자 분야에서 오랜 조사 경험을 쌓은 지모 사무관도 대형 법무법인으로 이직하기로 했다. 이 분야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와 제재가 한층 강화되는 상황에서 지 사무관이 이탈하자 내부 분위기가 동요하는 듯하다. 공정위의 핵심 업무로 꼽히는 담합 조사를 맡은 정모 사무관도 대형 법무법인으로 옮긴다. 이 법인에는 하도급거래 분야의 불공정행위를 조사해온 이모 사무관도 합류한다. 담합 조사를 담당해온 모 서기관은 대형 법무법인으로 옮기기로 마음을 굳히고 이직 절차를 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직 당사자들은 현재 급여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로펌이나 대기업에서 약속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직원들의 잇따른 이직에는 올해 말 세종시로 청사를 옮기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공정위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직원들은 주거지를 세종시로 옮기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열악한 이주 지원책 등도 공정위 사직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과 로펌이 고액 연봉을 내세워 `러브콜'을 보내 유능한 인력을 쉽게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정위가 대기업 담합이나 유통업체 불공정 거래행위 조사를 대폭 강화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이들은 앞으로 `방패막이'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예산안으로는 공정위가 벌금ㆍ과태료 수입을 올해 4천35억원에서 내년 6천43억원으로 49.88%(2천8억원)나 올렸다. ssahn@yna.co.kr
    201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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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명 언론인 카파로스, 화보 형식 '빨리빨리' 출간
    우리나라와 중남미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지 50년을 맞은 올해, 한국과 한국인에 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엮은 한 권의 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출간된 화제의 책은 중남미 스페인어권에서 대표적인 오피니언 리더이자 지성인의 한 명으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마르틴 카파로스(Martin Caparros)가 쓴 '빨리빨리(Pali Pali). 카파로스는 17박 18일간 우리나라를 직접 방문해 얻은 체험과 느낌을 화보 형식으로 담아냈다. 그는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스페인어판 칼럼니스트와 아르헨티나 최대 일간지 클라린의 특임기자, 심층분석기사 전문 주간지인 페르필의 뉴욕 특파원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다. 우리나라에서 2007년에 번역, 출판된 소설 '나는 모나리자를 훔쳤다'의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룬 배경과 과정, 최첨단 인터넷 환경, 케이팝(K-Pop) 등 한류 확산, 높은 교육열, 한식과 한옥, 템플스테이와 찜질방, 제주 해녀와 부산 자갈치 시장, 인천공항, 청계천 등 카파로스의 발길이 닿은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저자가 방문 기간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나눈 대화는 220여 장의 사진과 함께 한국 사회를 꼼꼼하게 조망한다. 그는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5개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이 지금과 같은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원인을 '빨리빨리' 정신에서 찾았다. 아르헨 언론인 카파로스, 한국 여행기 '빨리 빨리' 출판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 중남미 스페인어권에서 대표적인 오피니언 리더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마르틴 카파로스가 13일(현지시간) 한국 여행기 '빨리빨리(Pali Pali)'를 출판,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중남미 한국문화원에서 출판 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2012.11.14 << 국제뉴스부 기사 참조 >> fidelis21c@yna.co.kr삼성전자의 불량 휴대전화 전량 소각 사건을 예로 들어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한국의 기업 문화를 소개하고, 일을 중심으로 생활하는 한국 근로자들의 부지런한 모습을 담담하게 묘사했다. 한국의 거리가 청결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고민한 흔적도 엿보인다. 카파로스는 독자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을 주문했다. 그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극동의 역동적인 국가 한국의 존재감에 대해 중남미 스페인어권 사람들이 무관심한 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하면서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 아름다운 자연, 높은 교육 수준, 한국인의 근면성과 일에 대한 열정, 도전정신에 중남미인들이 주목해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아르헨티나 언론도 큰 관심을 나타냈다. 유력 일간지 라 나시온은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거쳐 세계적인 엘리트 국가로 발돋움했다"고 강조했다.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클라린은 "한국인은, 차갑고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일본인과 다르고 시끄럽고 독단적인 중국인과도 다른 특별함을 갖고 있다"면서 "혁신과 연구, 발명 등이 한국 모델의 핵심"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저녁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중남미 한국문화원(원장 이종률)에서 열린 '빨리빨리' 출판 기념회에는 영화감독 출신의 페르난도 솔라나스 연방하원의원을 비롯해 정계와 언론계, 문화예술계 인사 70여 명이 참석했다. fidelis21c@yna.co.kr
    201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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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ㆍ안철수 후보도 참석 '눈길'
    제14대 경산 장응철(張應哲) 종법사의 취임을 축하하는 추대식이 4일 전북 익산의 원불교 중앙총부 반백년 기념관에서 봉행됐다. 이날 추대식에는 불교, 개신교, 가톨릭 등 각 종교계의 지도자, 최광식 문화관광부 장관, 원불교 재가, 출가 교도 등 2천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이날 문재인, 안철수 대선 후보도 나란히 추대식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추대 법장 받은 경산 종법사 (익산=연합뉴스) 임 청 기자 = 원불교 제 14대 종법사로 추대된 경산 종법사가 4일 추대식에서 법장을 전수받고 대중을 향해 들어보이고 있다. <<원불교>> 2012. 11. 4 lc21@yna.co.kr추대식은 식전행사인 원음 오케스트라, 원음 국악관현악단의 공연으로 시작됐다. 본식은 종법사의 취임 고유문 낭독, 취임설법, 종법사 직위의 상징물을 올리는 봉헌의식, 중앙교의회 의장의 종법사 추대사, 내빈 축사 순으로 진행됐다. '봉헌 의식'은 종법사에게 원불교 종법사장과 종법사 법의, 소태산 대종사로부터 전수되어 오는 법통의 상징인 법장을 봉헌하는 의식. 경산 종법사 추대식 (익산=연합뉴스) 임 청 기자 = 원불교 제 14대 종법사로 추대된 경산 종법사가 4일 추대식에서 법문을 낭독하고 있다. <<원불교>> 2012. 11. 4 lc21@yna.co.kr경산 종법사는 이날 "앞으로 6년간 원불교를 이끌어갈 종법사에 추대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대임을 수행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법문에서 "대사회적으로 문명 발달에 따른 생태계 파괴와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경제위기가 큰 과제로 주어졌다"며 "중대한 변화 시기에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혼신의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원불교의 종법사(宗法師)는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로부터 이어져 오는 법통을 계승한 주법(主法)으로서 교단의 최고직위다. 교단을 주재하고 교헌에 의하여 대외적으로 원불교를 대표하는 최고지도자의 의미를 갖는다. 앞서 경산 종법사는 지난 10월 24일 익산 중앙총부에서 열린 임시수위단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의 득표로 새 종법사로 선출돼 중임을 하게됐다. 오는 2015년은 원불교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lc21@yna.co.kr
    201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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